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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짖는 꽃잎 또는 조각난 유령같은 이미지들
울부짖는 꽃잎 또는 조각난 유령같은 이미지들
  •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10.06.14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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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전쟁의 기억을 어떻게 간직할까

현대미술에서 ‘전쟁’은 여러모로 중요한 주제다. 예컨대 현대미술의 중요한 원천인 미래파, 입체파, 표현주의, 다다, 초현실주의는 모두 세계대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가령 아놀트 하우저는 ‘다다’를 ‘전쟁 현상’으로 이해하며 스티븐 컨은 제2차 세계대전을 ‘입체파 전쟁’이라 명명한다. 전후 현대미술을 주도한 추상표현주의 역시 전쟁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렇게 미술은 전쟁을 반영하며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다.

전쟁터를누비며 전쟁화를 제작해낸 후지타 쓰구하루와는 달리 도미야마 다에코는 가해국 일본의 국민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전쟁의 상처를 그린다. 그녀는 직접적인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의 고통과 슬픔을 형상화하는 데 뛰어났다. 그의 작품 「터진 봉선화」(1984)가 이러한 비극과 슬픔을 껴안고 있다(그림 위). 독일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키퍼는 금기시돼왔던 나치와 2차세계대전의 이미지를 작품 속에 차용함으로써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안젤름 키퍼의 작품 「성상파괴 논쟁」(1980)은 나치와 전쟁의 이미지를 조각난 이미지, 파편의 기억으로 호명해낸다.(그림 아래).

전쟁과 현대미술의 관계를 살필 때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전쟁을 일으킨 가해 당사국 일원으로서 미술가들이 그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반영하는가 하는 문제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일본과 독일 미술가들의 경우다. 제2차 세계대전, 또는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과 독일의 현대미술가들은 전쟁(의 기억)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이 문제는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로서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먼저 일본 전쟁화의 대가 후지타 쓰구하루의 경우를 보자. 주지하다시피 후지타는 1920년대 에콜 드 파리의 일원으로 피카소, 마티스, 모딜리아니 등과 교류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날렸다. 이 시기 그의 여성 누드화는 예의 ‘경이로운 깊은 백색’, 동양의 감수성을 부각시킨 독특한 붓질과 더불어 서양화단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런 그가 중일전쟁을 계기로 귀국해 중국 양자강 지역에 종군하게 된 때는 1938년 10월이다. 그는 계속해서 1941년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에도 종군해 전쟁화를 제작했다.

이 시기 그의 최대 관심사는 충성심과 애국심으로 충만한 ‘세계사상 유례가 없는 전쟁화’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12월 8일의 진주만」(1942), 「솔로몬 해전 미군병사의 최후」(1943), 「아투섬 옥쇄」(1943) 같은 대작들이 이 시기 대표작이다. 후지타 전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그의 최후의 전쟁화 「사이판 동포 황국신민의 절개를 다하다」(1945)이다. 김용철 성신여대 교수의 표현을 빌면 이 작품에서 이미 죽은 시체들과 곧 죽을 사람들의 결연한 표정은 당시의 긴박한 사정을 드러낸다. 죽창을 든 여성,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성, 단검으로 자결해 황국신민의 절개를 지키려는 여성, 서서 조준사격을 하는 부상병의 모습들이 그것이다.

일본 전쟁화의 재현과 부재하는 것들

게르하르트 히리터, 「루디 삼촌」(1965). 지워져 흐릿해진 나치 군인의 이미지는 유령과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영원히 용서될 수 없는 전쟁범죄의 은유인 셈이다.

일본 미술사가 다나카 히사오는 이 비극적인 그림이 사이판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의 혼을 달래려는 의도로 제작된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좀 더 중요한 주제는 외세(!)에 굴하지 않는 일본인의 애국심과 충성심을 찬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여기서 황국신민의 희생을 애도하고 찬양할 때, 그것은 카미가제 특공대를 찬양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희생, 그 자살은 실상 강요받은 죽음이다. 그들은 서경식의 표현을 빌면 ‘자기 생명의 주권자’가 아닐 것이다. 국가가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전장을 종군하면서 전쟁화를 그려낸 후지타 쓰구하루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쟁으로 희생된 민간인을 애도하는 그림을 그린 일본 화가들이 많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가장 주요한 주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 희생자들의 애도다. 이런 작품들은 전쟁의 참화를 고발하며 평화를 갈구한다. 그러나 이런 그림들에서 전쟁 가해자로서 일본과 일본인들의 이미지는 슬며시 소거되며 오히려 피해자로서 일본과 일본인의 이미지가 부각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도미야마 다에코의 그림은 각별하다.

1921년 일본 고베에서 출생한 도미야마 다에코는 전쟁 가해국 일본의 국민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전쟁(의 기억)을 그린다. 특히 그녀는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의 고통과 슬픔을 그림속에 형상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가 황석영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과거를 회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소녀 때 풀지 못한 의문이 있었다. 차차 말하겠지만 그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내 인생이 되고 말았다. 식민지시대를 산 일본인으로서 여전히 심한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만주국이 망하는 것도 보았고 혁명으로 중국이 탄생하는 것도 보았다. 특히 중국공산당의 대장정은 일본 쪽에서 보자면 공략이나 다름없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거꾸로 화가로서의 출발점이 되었다. …한국에 대한 내 관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70년 처음 한국에 와보았는데, 나로서는 대장정의 꼬리를 따라간다는 마음으로 한 여행이었다.”

독일 화가들의 경우는 어떤가. 현대 독일미술, 나아가 현대미술 전체를 대표하는 화가가 된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안젤름 키퍼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가들은 젊은 시절 당시 독일 사회에서 금기시되던 나치와 제2차 세계대전의 이미지를 작품에 끌어들여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치유될 수 없는 상처, 지연되는 용서

이들의 작품들은 곧장 권위적 형상으로의 퇴행적 복귀 내지는 나치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업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반면 앤드류 벤저민처럼 이들의 작업을 옹호하는 비평가도 있다. 벤저민이 보기에 리히터와 키퍼의 작품에서 보이는 나치와 전쟁의 이미지는 영원히 독일인 곁을 떠나지 않고 시시 때때로 출몰하는 유령과 같은 것이었다. 리히터의 그림에서 그것은 지워져 흐릿해진 나치 군인의 이미지로, 키퍼의 그림에서 그것은 조각난 이미지 파편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조각난 유령같은 이미지들은 아우슈비츠를 포함해 독일인들이 전쟁 기간 중에 범한 죄가 영원히 용서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상처는 결코 봉합되거나 치유될 수 없고 용서는 계속해서 지연될 것이라는 게 벤저민의 생각이다.

가해국 일원으로서 일본과 독일 미술가들이 전쟁을 기억하고 형상화한 작품 앞에서 우리는 때로는 분노를, 때로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 그 전쟁의 기억과 상처가 아직도 생생하게 우리 몸과 정신에 각인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분노, 그 슬픔이야말로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의 기초다. 우리는 그것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각별한 의미를 지닌 2010년의 6월. 한국전쟁 60주년의 달이다. 여전히 전쟁의 경계에서 ‘휴전’을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평화’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있는가.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67@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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