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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34. ] ‘경상도 토종’, 강의중에도 학생들 ‘영어’ 눈치 살펴
[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34. ] ‘경상도 토종’, 강의중에도 학생들 ‘영어’ 눈치 살펴
  •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 승인 2010.06.14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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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 대학에는 마틴 스쿨이라 불리는 행정학 전문대학원 (Martin School of Public Policy & Administration)이 있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나름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아 오던 차에 작년 가을 학기부터 한국을 비롯한 다른 여러 나라의 공직에 몸 담고 있는 분들을 위한 1년짜리 연수 프로그램이 생겨서 공기업 쪽의 여러 분들이 연수에 참가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분들 중의 한 분과는 미국으로 오기 전부터 우연히 연락을 하게 돼 이 쪽 사정에 대한 안내를 하고 정착도 돕고 하느라 친하게 지내게 됐다. 그리고 며칠 전, 그 가족이 일 년 간의 켄터키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면서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자리라서 그런지 평소에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

그 중의 하나가 아이들의 영어 교육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딸아이와 고학년의 아들이 있는데, 특히나 아들 아이는 말하기와 듣기는 이제 막 가속도가 붙어서 빠르게 입이 열리고 귀가 트이고 있는데 한국에 돌아간다고 하니 그렇게 섭섭해 했다는 것이다. 혼자라도 남게 해 달라고 아들이 엄청나게 졸랐지만 정서적, 경제적 부담 때문에 설득해서 데려가게 됐단다. 게다가, 가뜩이나 이런 저런 명목으로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엄청난데 이제는 그간 익힌 영어 실력이 줄지 않도록 영어 회화 학원까지 추가해야 하니,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남는 게 없다는, 농담 같은 얘기가 그다지 즐겁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일전에 ‘영어 강의’ 문제를 다룬 칼럼에서 밝혔듯이 ‘경상도 토종’ 출신인 나는 한국 사람이 영어로 인해 겪을 수 있는 온갖 어려움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유학 초년병 시절, 짧게는 두 세 페이지부터 많게는 스무 페이지까지 적어 내야하는 에세이나 리서치 페이퍼들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내용보다는 빨리 초안을 만들어서 네이티브 스피커에게 영어 교정을 봐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미국인 동기들은 별다른 내용도 없이 30분이나 한 시간씩 좌중을 휘어잡는 발표를 하는 반면에 나는 밤새도록 준비했건만 혀가 꼬여 단어 발음 하나 엉뚱하게 하는 바람에 머릿 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져서 발표를 망친 적도 많았다.

교수가 된 후로는 수업을 잘 하다가도 이상하게 학생들 눈치가 보이고 왠지 내 말을 이해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꼭 칠판에 글로 적어서 확인을 해 준다. 어눌한 발음으로 인한 오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과제물를 낸다든지, 중요한 공지 사항을 전달할 때면 일일이 문서로 만들어서 배포를 해야 하니 동료 미국 교수들에 비해서 수업 준비가 배로 힘들다. 그리고 강의 평가 결과가 나올 때면 내 영어 실력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해주는 항목(Spoken Understandably)의 점수부터 확인하는 게 습관이 돼 있다.

이렇게 악전고투를 하다 보니, 조기 영어 교육으로 아이들의 영어 실력을 가능한한 네이티브에 가깝게 만들려고 애쓰는 한국 부모님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기도 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경제적, 정서적 고통과 희생이 너무나 크다 하니 그 가족들을 보내는 마음이 그리 가볍지는 않았다.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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