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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역사, 남아공 축구의 역사] 월드컵을 향한 머나 먼 여정
[남아공의 역사, 남아공 축구의 역사] 월드컵을 향한 머나 먼 여정
  • 장용규 한국외대·아프리카학부
  • 승인 2010.06.14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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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았던 ‘2010 남아공 월드컵’이 개최됐다. 불안한 치안과 경기장 건설 지연 등을 문제 삼아 월드컵 개최에 의구심을 갖던 외부의 시선은 이제, 남아공이 어떻게 월드컵을 치를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 외부의 우려와 달리 남아공은 국제사회에 문호를 개방한 1990년 이후 많은 국제회의와 스포츠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뤄왔다. 아프리카 월드컵인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크리켓 월드컵’과 ‘럭비 월드컵’ 등 굵직굵직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냄으로써 남아공이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치를 능력이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

남아공의 축구사는 남아공의 어두운 정치사를 반영한다. 남아공에 축구가 처음 소개 된 것은 19세기 중반. 영국의 식민지였던 피터마리츠버그(지금의 크와줄루-나탈 주 수도)에 살던 유럽 이주민들이 ‘피터마리츠버그 카운티’라는 클럽을 결성해 영국군 병사들과 경기를 한 것이 시초였다.

1882년에는 백인들만의 리그를 위한 남아공축구연합(FASA)이 결성됐고, 뒤이어 남아공인도인축구연합(SAIFA, 1903), 남아공반투축구연합(SABFA, 1933), 남아공컬러드축구연합(SACFA, 1936) 등 인종별로 다양한 축구연합이 결성됐다.

1946년에 ‘인종 간 축구위원회’가 결성되기는 했지만 1948년 남아공이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실시하면서 법적으로 인종간의 축구경기를 금지했다. 1958년 FIFA는 백인들만의 축구연합인 FASA를 남아공의 대표기관으로 공식 인정했다. 하지만 3년 뒤인 1961년, FIFA는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제재조치로 남아공이 국제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금지하게 된다. 남아공 축구는 이후 30년 동안 국제무대에서 미아로 남게 된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공식적으로 폐지된 이듬해인 1991년에야 명실 공히 모든 인종을 아우르는 ‘남아공축구연합’이 발족되고 FIFA의 인정을 받았다.

남아공에서 축구는 인종 간의 화합을 보여주는 스포츠가 될 수 있을까. 남아공 정부는 지난 1995년 럭비 월드컵과 2003년 크리켓 월드컵에서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축구월드컵을 유치해 ‘월드컵 3종 세트’를 완성했다. 남아공에서 스포츠는 국가를 통합하고 인종 간의 화합을 일궈내려는 정치적 이벤트이다. 지난 럭비 월드컵과 크리켓 월드컵은 이런 정치적 이벤트가 절반의 성공이었음을 보여준다.

섞이지 못하는 인종의 벽, 월드컵으로 넘어설까


남아공에서 럭비와 크리켓은 여전히 백인들의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 치열하게 땅을 뺏어야 하는 럭비경기는 남아공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 왔던 아프리카너(네덜란드계 정착민)들이 열광하는 스포츠이다. 맥주를 마시고 파티를 즐기며 관람하는 크리켓은 영국인들이 즐기는 귀족취향의 스포츠이다. 관람석에 빈자리가 있더라도 흑인들이 끼어들 여유는 없어 보인다.

반면 흑인들은 축구경기에 열광한다. 과거와 달리 여가시간을 보낼 곳이 없던 흑인들에게 축구경기장은 백인 정권에 대한 분노와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떨칠 수 있는 한시적인 공간이었다.
인종마다의 특정 스포츠에 대한 애착은 경기장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럭비나 크리켓 경기장의 관중석은 하얗다. 축구 경기장의 관중석은 까맣다. 물론 남아공 백인들도 축구를 즐긴다. 하지만 이들은 대체로 위성 TV를 통해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을 시청한다. 남아공에서 인종간의 벽을 실감할 수 있는 광경이다.

남아공에서 축구는 여전히 흑인들의 경기이다. 그렇다고 남아공 축구에 백인 선수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1996년 아프리카 대륙 축구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남아공 대표팀의 주장 닐 토비는 백인이었다. ‘마코코’로 알려진 닐 토비는 남아공 유명 클럽인 ‘카이져 칩스’의 주장으로 흑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선수였다.

이 외에도 한스 봉크, 마크 피쉬 등 국내 클럽에서 활동하던 백인 축구 선수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예외일 뿐 축구는 여전히 ‘흑인의 운동’이라는 것이 남아공 백인들의 인식이다.

이번 월드컵은 어떨까. 축구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스포츠이다. 남아공 국민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이들이 모두 힘을 모아 남아공 국기를 흔들며 자국 대표팀 ‘바파나 바파나’(‘남자 중의 남자’라는 뜻으로 남아공 축구 대표팀의 별명)를 환호할 것인지, 아니면 붉은 장미를 가슴에 담고 출전할 영국 대표팀을 응원할지, 그것도 아니면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를 응원할지 두고 볼 일이다. 아마도 남아공 흑인은 ‘바파나 바파나’를, 영국계 백인은 ‘붉은 장미’를, 네덜란드계 아프리카너는 ‘오렌지 군단’을 환호하지 않을까. 이것이 인종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남아공의 한 단면이다.  

장용규 한국외대·아프리카학부

필자는 남아공 나탈대에서 인류학을 전공으로 석·박사를 했다.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소장을 지내고 있다. 「남아공의 언어정책과 국가통합」, 『아프리카 종교와 철학』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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