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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그림 속 풍경과 실경을 추적했더니 …
30년 동안 그림 속 풍경과 실경을 추적했더니 …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0.06.14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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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이태호 지음,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생각의나무, 2010)

2008년, 조선 후기 초상화와 카메라 옵스쿠라를 연결시킨 독특한 연구서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생각의나무)를 펴내 화제가 됐던 미술사가 이태호 명지대 교수(미술사학과)가 30년 연구 생활을 아우른 또 하나의 力作을 내놓았다. 조선 후기 독자적인 회화 양식으로 자리 잡았던 眞景山水畵를 다룬 예술 역사서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는, 저자가 1980년대부터 30년 동안 금강산에서부터 남도까지 직접 발로 찾아 다니며 조선 후기 산수화와 실제 풍경을 비교하고 연구한 기록이다.

이태호 교수는 이번 신작에서 중국 문화와 산하를 동경하던 조선시대 사람들이 언제 비로소 우리 것으로 눈을 돌려 스스로 발 딛고 사는 이 땅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산과 들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또 어떤 관점으로 조선 땅을 바라보고 비경과 흐름을 묘사했는지를 시기별, 작가별로 설명했다.

책의 특징은 풍부한 도판과 더불어 저자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사진을 수록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산수화 속 풍경을 찾아가 수차례나 오르내리면서 실제로 화가들이 붓을 들었음직한 위치를 찾아내고, 이렇게 찍은 사진들을 도판 150여 점과 나란히 배치했다. 진경산수화를 다룬 기존 책들과 차별화를 이룬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진경산수화는 새로운 미학적 사유의 결과였다. 이태호 교수가 사진에 담은 박연폭포 실경(왼쪽)과 이를 그대로 사생한 강세황의 「박연도」(오른쪽), 1757년경, 지본수묵담채, 32.8x54cm,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이를 관념미로 해석해서 그려낸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아래).1750년대, 지본수묵, 119.5x52cm)의 일부.

저자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던 땅을 그린 시점은 조선시대 전·후기로 가를 수 있다. 15~17세기 조선 전기 문인들은 중국에서 소동파가 그랬던 것처럼 한강을 양분해 마포 서쪽은 ‘西湖’, 동쪽은 ‘東湖’라 불렀을 만큼 江南烈 에 빠져 있었다. 조선 초·중기 산수화풍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안견은 「몽유도원도」를 그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도원을 형상화했는데, 동아시아 산수화의 이념과 형식을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이 작품 역시 중국 華北 지방의 험준한 지세처럼 뭉게구름 형태로 雲頭을 구사한 것이었다. 특히 17세기 중반은 전란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시기였으며 명에서 청으로 교체한 중국의 영향이 컸다. 만주족이 대륙을 차지하자 명 문화를 숭상하던 조선 문인들은 충격을 받았고, 비로소 조선 안으로 눈을 돌려 우리 땅, 우리 현실에 관심을 보이게 됐다.

저자 이태호 교수의 시각에 잡힌 진경산수화, 우리 땅을 그린 우리 그림의 범위는 겸재 정선에서부터 1960년대 이상범·변관식에 이르기까지 통사적으로 방대하다. 그러나 이들 작가군들의 특색은 확연하게 구분된다. 실경을 닮게 그려내기 위해 寫生에 충실했던 작가들과, 변형을 모색한 작가들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겸재와 단원이 그 선두에 서 있다.

감명과 기억에 따라 대상 공간을 연출한 정선은 ‘진경’이 지닌 ‘참된 경치’라는 의미에 신선경이나 이상향을 일컫는 ‘仙境’의 의미를 부여했다. 형태를 닮게 그리는 形似보다는 정신성을 강조한 스타일인 것이다. 이태호 교수는 “겸재가 그린 진경 작품의 현장을 답사하다 보면 과연 실제로 그곳을 보았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닮게 그린 예가 거의 없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교수는 겸재를 가리켜 “겸재가 실경을 닮지 않게 그렸다는 점은 중국 산수화풍의 관념미에서 조선 땅의 현실미로 전환하는 과도기 현상”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정선과 달리 눈에 보이는 실경을 강조한 화가가 바로 김홍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실경 대상을 닮게 그리는 것을 강조한 이들이 정치에서 소외된 윤두서나 이익, 강세황 등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형상을 닮지 않고 어찌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저자 이태호 교수는 바로 이 대목을 중시, 단원의 진경화법을 ‘근대성’으로 호명해낸다. “성리학 이념이 아닌 인간의 눈에 비친 풍경을 정확하게 그렸다는 점” 때문이다.

이 책은 사실 전작 단행본은 아니다. 1981년부터 2009년까지 저자가 발표한 글들을 속아낸 책이다. 그렇지만 책 곳곳에 진경산수화의 족적을 남긴 조선시대 화가들로부터 현대의 화가들의 발자취와 땅의 풍요로운 냄새가 스며들어있다. “나는 진경산수화 덕택에 땅 밟기를 실컷 만끽하며 살았다. 지난 30년 간은 옛 그림을 따라 발로 밟은 국토기행이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 산, 내, 들, 바다의 암벽과 계곡과 숲과 물, 곧 자연이 삶과 어우러진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눈에 넣고 마음에 담는 안복을 누림에, 그저 옛 화가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라는 그의 말 속에, 먼 곳 자연의 길을 따라 옛 화가를 다시 만나러 가는 미술사학자의 모습이 겹쳐진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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