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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아웃 오브 아프리카’
[學而思] ‘아웃 오브 아프리카’
  • 교수신문
  • 승인 2010.05.2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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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전 파릇파릇한 젊음으로 아프리카를 공부하겠다고 뛰어 든 대학생활을 뒤로 하고 모교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시절에는 ‘타잔과 식인종이 싸우는’ 아프리카를 배워 무엇을 하겠냐는 비아냥과 ‘앞으로 뜰 대륙’을 선택했다는 주위의 격려 속에서 갈등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대학을 졸업하고 인도와 남아공에서 유학을 한 뒤 안정적으로 연구와 강의를 할 수 있게 됐으니 개인적으로는 성공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얼마나 아프리카를 사랑하고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아프리카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고 강해졌다는 점이다. 인류학에서 강조하는 문화적 상대주의를 통해 아프리카 사회가 단순한 ‘원시인의 세계’라는 덜 떨어진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는 상대적이다.’ 참 쉬운 말인 것 같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제이다. ‘상대를 통해 나를 배운다’는 인류학 슬로건도 쉽게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우리가 타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은 견고한 성과 같다. 그 대상이 우리에게는 무관심한 아프리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낯설고, 신기하고, 기괴한 아프리카의 문화를 그들의 시각,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환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변해보지만 여전히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느낌을 받는다. 학기 초, 신입생들에게 아프리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말해 보라면 여전히 ‘원시부족, 전통사회, 동물과 초원, 가난과 전쟁’이라는 판에 박힌 대답이 돌아온다. 해마다 반복되는 연례행사다. 다행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고난은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계속된다.

아프리카에 대한 비정상적인 인식은 학생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 학계에서도 아프리카연구는 항상 ‘자투리’ 연구 영역이다. 아프리카는 학문적 소외지역 또는 희소지역이라고 표기된다. 물론 아프리카를 연구하는 학자의 수가 다른 학문지역에 비해 일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질적 소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프리카는 소외지역이다.

2007년에 시작된 인문한국 해외지역연구 사업만 해도 그렇다. 인문한국 사업은 길다고 볼 수 없는 내 교수경력에 큰 기억으로 남을 사업이다. 지난 3년 동안 아프리카연구소 소장직을 맡으면서 사업을 위해 숱한 밤을 지새웠다. 개인적으로 보면 소모적인 시간들이었다. 오죽하면 자조적으로 ‘HK폐인’이라고 불렀을까. 하지만 체계적인 아프리카학을 세워보겠다는 의지는 열망은 좋지만 소수지역이라는 이유로, 연구계획서는 훌륭한데 기반이 약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이 소외학문분야라고 강변했지만 아프리카연구는 그 중에서도 변방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자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은 일반인 이상으로 견고했다.

10년 전, 아프리카 유학을 마치고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하면서 아프리카를 향한 나의 학술여정이 시작됐다. 지금까지는 쉽지 않았다. 앞으로도 아프리카를 소외된 희소지역에서 끄집어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위에 든든한 반석이 있어 외롭지만은 않다. 학문적으로 존경할만한 동료학자들, 열성적인 후학들, 학계에 아프리카연구 풍토를 조성해 보겠다는 이들이 있기에 외롭지 않다. 이들과 함께 앞으로 지향하고픈 학문적 목표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지역 간 통합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학제간 연구가 우리 학계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아프리카학계에도 학제간 연구를 표방하는 프로젝트가 꾸준히 진행돼 왔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아프리카 대륙은 시간과 공간, 사람을 통해 외부와의 교류를 가져왔다. 아프리카연구를 하는데 문화의 교차와 혼성이 중요한 이유다. 아프리카 문화의 교차와 혼성은 대륙 내부에서도 진행돼 왔지만 외부와의 교차와 혼성도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키워드다.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인도를 아우르는 ‘인도양 문명’연구,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유럽을 잇는 ‘대서양 문명’의 연구는 아프리카 연구에 있어 피해갈 수 없는 연구 분야다. ‘아프리카의 세계화’는 이미 천 년이 넘는 현상이며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연구자 뿐 아니라 인접 지역연구자들의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장용규 한국외대·아프리카학부
필자는 남아공 나탈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논문으로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문헌고찰을 통한 비판적 유형분류」, 저서로는 『춤추는 상고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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