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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기 자료 체계적으로 발굴·소개 … 대안사회이념 이론적 모색
해방기 자료 체계적으로 발굴·소개 … 대안사회이념 이론적 모색
  • 북학 기자
  • 승인 2010.05.17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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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근대서지>·<레프트 대구> 창간호

전문 잡지나 계간지를 새롭게 낸다는 것은 모험적인 일이다. <당대비평>, <사회비평>, <계간 비평>의 소리 없는 퇴장을 지켜봐 왔던 작금의 시간의 흐름에서 본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두 권의 창간호가 ‘야심만만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반가운 일이다. <근대서지>(근대서지학회, 소명, 2010.5.10)와 보수적 색채가 짙은 대구 지역에서 ‘좌파 잡지’를 표방하면서 기치를 올린 <레프트 대구>(메이데이, 2010.5.1)다.

<근대서지>는 근대시기 관련 書誌를 다루는 전문반년간지다. 구체적으로는 근대시기 관련 문서와 문헌의 서지를 다루는 잡지이다. <근대서지> 편집진들은 창간사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근대 서지자료를 체계적으로 발굴·소개·해석하고 사회적으로 소통시킴으로써, 보다 더 폭넓고 정확한 자료의 토대 위에서 근대에 대한 이해와 연구에 일조하는 것을 발간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근대시기의 문헌정리를 통해 근현대사 연구가 더욱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다.

그러나 국내에 서지잡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근대시기를 대상으로 <서지학보>, <서지학연구>, <한국서지학보> 등 몇몇 학술지가 있지만, ‘근대시기’를 다루는 서지잡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더욱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인문사회과학계가 한국의 ‘근대성’을 새롭게 주목하면서 근대시기 자료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것을 생각한다면, 근대시기 서지 전문저널의 출간은 때늦은 감이 있다.

동호회에서 싹튼 직업적 전문성

<근대서지>는 2009년 7월 창립한 근대서지학회(회장 전경수 서울대·인류학)가 모태다. 근대서지학회는 그동안 곳곳에 흩어져 존재하던 광범위한 근대시기 관련 문서와 문헌들의 가치와 중요성을 일찍이 눈여겨보았던 몇몇 수집가들과 국문학, 역사학, 사회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 연구자들이 모인 동호회에서 시작된 모임이다.

이들은 다양한 문서와 문헌들이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정리되지 않은 채 사회적, 학문적 공유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취향에서 ‘직업적 전문성’으로 관심사를 전환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근대서지>는 전형적인 학술지 스타일 대신 보다 다양한 열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경수 회장도 창간축사에서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기존의 매너리즘에 빠진 자료의 한계가 극복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자료들이 발굴되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강조하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은 근대서지 수집과 연구에 관련된 경험들을 자유롭게 다룬 ‘文苑’, 주요 인물들을 심층적으로 다룬 경험적 리뷰인 ‘人物’, 그리고 다양한 논설과 수상이 섞인 ‘硏究와 斷想’, 근대서지의 실질적인 관심사인 자료의 발굴과 해제 등을 소개하는 ‘發掘’, ‘解題와 目錄’, ‘資料’로 나뉜다. 근대서지에 대한 학술적 연구 결실로는 식민지기 일본에서 간행된 한국어출판물처럼 기존 서지자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연구 뿐 아니라, 출판미술 목판화나 근대 초기 잡지 영인현황 등 그동안 소홀히 지나쳤던 분야의 서지와 정학한 서지 파악의 기초가 되는 연구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외 1912년 신문관이 출간한 초기 번역소설의 하나인 『자랑의 단추』 해제와 자료를 제공했으며, 1942년 『매신사진순보』에 실린 비공개 백석의 시와 1949년 평양에서 간행된 소련군 환송 기념 시집, 그리고 해방공간 북쪽에서 발행된 민속학 잡지를 발굴, 소개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학계에서 지적하길 꺼리는 문화재청이 만든 「근대문학유물목록」을 비판적 안목에서 수정한 목록 등이다. 책의 말미에 두툼하게 실린 ‘자료’는 <근대서지>의 백미라 할 수 있는데, 식민지시기부터 해방 후 여러 잡지에서 새로 찾은 근원 김용준의 글, 그리고 한일병합 초기 일본이 구상한 경찰 개념과 조선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희귀본으로 한글판 『조선경찰실무요서』(1910)가 눈길을 끈다.

<근대서지> 창간호의 표지는 월북시인 임화가 디자인한 표지 사진으로 꾸며졌다. 임화의 활동영역을 짐작할 수 있다. 편집위원은 오영식, 유성호, 윤대석, 김수진, 박성모 등이다.

좌파의 실천적 연대를 위한 목소리


<레프트 대구>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좌파’ 색채를 분명하게 내건 종합 무크지다. 이는 “대구지역운동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를 복원하는 잡지. 좌파의 시각과 대안 사회 이념을 담아가는 잡지. 착취와 차별, 빈곤의 현장과 투쟁을 연결해 주는 잡지로 서 있고자” 한다는 창간사에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좌파의 이념을 세워내고, 그 이념이 현실운동과 만나고, 지역사회를 새롭게 설계해 나가는 광장으로서 ‘레프트 대구’는 자리잡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를 위해 <레프트 대구>는 노동운동을 중심에 놓고 다양한 ‘이데올로기 논쟁’, ‘좌파의 실천적 연대’를 높여간다는 구상이다. 잡지 자체가 워낙 색깔이 분명하다.

사실 그동안 대구에 종합지 성격의 잡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구사회비평> 같은 잡지가 있었다. 문학 쪽에서는 <사람과 문학>이 있었고, 지금도 <시와 반시>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레프트 대구>는 이러한 잡지들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구 지역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을 담고자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계급으로 치닫는 시대에서 노동자 대중이 처한 현실을 토대로 대구만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변혁을 목적으로” 창간된 무크지다.

창간호의 구성은 특집좌담-21세기 좌파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 정세와 전망-정당정치의 역사적 변천과 한국 진보운동의 전망(정병기), 세계 경제위기는 끝났는가?(박하순), 이슈와 쟁점-최저임금투쟁 평가와 2010년 과제(박찬희), 노동조합과 최저임금투쟁(박진강), 반빈곤운동으로 본 최저임금투쟁(아요), 현장의 목소리-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노동자 농민에게 미치는 영향(레프트대구 편집위원회), 마르크스 21- 정치의 종언인가, 종언 없는 정치인가?(에티엔 발리바르, 번역 최원), 인터뷰, 만평·시·수필, 대구21, 문화비평-대구의 재발견과 문화연구(이득재)로 채워졌다. 

편집위원은 김용철, 이득재, 노태맹, 임순광 등이며, 편집주간은 임순광, 편집장은 이득재다.편집진들은 “어려운 때일수록 이론에 대한 탐험이 필요하다는 공통된 인식이 잡지 창간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이론에 대한 학습의 부재가 노동자계급의식의 부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하고 조심스럽게 진단하지만, 둘을 인과관계 안에 묶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지 않을까. 아무튼 노동운동 등 시민사회운동의 전반적 쇠퇴 속에서 이들이 어떻게 전열을 정비해 변화의 기폭제 역할을 할지 궁금하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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