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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을 읽는 네 가지 방식 …巨匠에 대한 예의가 필요한 이유
로댕을 읽는 네 가지 방식 …巨匠에 대한 예의가 필요한 이유
  •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10.05.10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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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신의 손 로댕전’(4.30~8.22)

말이 필요 없는 걸작이 있다. 온 몸으로 마주 대하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과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이 필요 없는 작품일수록 분석가와 해석가를 자극한다. 그렇게 쏟아져 나온 분석가와 해석가의 말들은 작가와 작품 주변을 맴돌면서 담론을 만들고 신화를 만든다. 그 담론과 신화들은 때로 작품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야기하지만 또 때로는 생산적인 대화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조각 작품들 역시 이런 걸작의 반열에 올라 있다. 과연 이 작품들에 대한 말들도 무성하다. 그 말들의 틈새에서 우리는 생산적인 대화와 성찰을 도모할 수 있을까.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큰 규모의 로댕 회고전이 진행 중이다.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신의 손 로댕’展(4.30~8.22)이 바로 그것. 전시와 관련해 로댕의 작품에 관한 몇 가지 의미심장한 논의들을 일별해 보기로 하자.

‘전체적인 운명’과 초시간적 인상

먼저 로댕과 동시대를 살았던 독일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1858~1918)의 논의를 살펴보자. 짐멜은 일찍이 로댕에 관한 글을 발표해 프랑스 조각가 로댕이 독일에 알려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둘은 1905년 파리에서 조우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짐멜은 로댕에 관해 몇 편의 글을 남겼다. 그 가운데 일부를 카셀 대학 김덕영 교수가 번역해 『예술가들이 주조한 근대와 현대: 미켈란젤로·렘브란트·로댕』(길, 2007)에 실었다. 짐멜에 따르면 로댕은 빈번히 모델에게 임의로 다양한 자세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면 갑자기 어떤 신체 부분에 발생한 방향 전환, 휨이 조각가의 관심을 끈다. 허리의 특정한 비틂, 들어 올린 팔, 관절의 角 같은 것들 말이다.

이제 조각가는 다른 부분을 제외하고 이 부분만 본을 떠서 고정시킨다. 짐멜이 전하는 로댕의 말에 따르면 종종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이러한 특징적인 포즈로부터 인간 육체 전체에 대한 내적 직관이 나타난다. 짐멜은 이 과정을 “개별적인 몸짓 동작이 의심할 여지없이 무의식중에 지속적으로 자라나 자신에게 속하는 육체를 생산한 것”으로 묘사한다. 짐멜에 따르면 로댕의 동작은 물론 한 순간을 보여주지만 그 순간은 ‘전체’이고 ‘전체적인 운명’이다. 그것을 짐멜은 ‘초시간적인 인상’, ‘무시간적인 인상’이라고 부른다. 이로써 로댕은 지배적인 관행과 인습을 탈피해 자신의 시대적 체험에 적합한 새로운 예술형식을 주조했다. 로댕이 직면한 근대적 ‘변화’란 “확고한 시발점과 정지점이 없는 연속적 배회이며, 긍정과 부정 사이의 교체라기보다는 긍정과 부정의 동시성”인 것이다.

또한 짐멜은 로댕의 작품에서 미완성으로 보이거나 완전한 형식을 갖추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점에 주목한다. 예컨대 로댕은 자주 돌로 像의 부분을 에워싸서 마치 상이 돌에서 막 나오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짐멜에 따르면 이로써 상은 인식하기 어려운 윤곽을 통해서만 다른 상으로부터 두드러지게 된다. 이는 분명히 감상자의 능동적인 행위를 요구할 것이다. 즉 그는 상상력을 통해 불완전한 것을 완성해야 한다. 그렇게 그는 ‘생성’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로댕이 의도적으로 미완성을 끌어들인데 주목한 또 다른 논자로 독일 미술사가 요셉 간트너(1895~1988)가 있다. 그에 따르면 로댕은 미켈란젤로의 미완성(non-finito), 또는 先형상(pra ¨figuration)의 이념을 계승했다. 간트너의 해석에 의하면 미켈란젤로는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상과 외적 수단에 의해 그 상을 실현하는 것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을 구하는데서 그의 심적 갈등이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그 갈등으로부터 先형상의 상태에서도 좀 더 예술적인 형상을 구할 수 있음을 감지하고 일부러 미완성 작품을 남겨놓았다. 간트너에 의하면 로댕은 이를 계승해 ‘운동하는 것, 떠도는 것, 사라져버리는 것’을 테마로 추구하고 그 객관적 묘사에서 미완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는데 그것은 완전히 의도적인, 말하자면 양식으로서의 미완성이다.

짐멜이나 간트너와는 다소 다른 방향에서 해석하는 논자도 있다. 미국 비평가 로잘린드 크라우스(1941~ )가 그렇다. 크라우스는 자신의 주저 『현대조각의 흐름』(윤난지 역, 예경, 2009)에서 로댕이 작업과정에서 야기된 흔적들로 얼룩진 표면을 빈번히 매끄럽게 다듬지 않고 내버려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예컨대 로댕은 주조과정에서 우연히 생긴 공기구멍들을 땜질하지 않고 남겨두거나 접합선들을 줄로 다듬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또는 흙 성형 과정에서 칼로 베어진 근육 일부를 점토로 메우지 않고 남겨 둔다. 그렇게 로댕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재료의 변화 과정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이런 양상이 극히 두드러진 작품이 바로 유명한 「발자크」상이다.


「발자크」상에서 주목을 요하는 것은 로댕이 이 인물에게 긴 가운을 입혔다는 점이다. 이 옷은 발자크의 몸을 완전히 감싸고 있다. 안쪽에서 옷을 여미고 있기 때문에 팔과 손, 다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천이 어깨에서 발끝까지 곧장 흘러내려 수직성이 부각되는 까닭에 가운의 표면에서는 신체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다. 우리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신체 부분은 머리(얼굴)뿐이다. 그래서 시인 릴케는 발자크의 머리가 “분출하는 물 위에서 춤추는 공처럼, 형상의 꼭대기에서 살아있는 듯” 보인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렇게 흔적들로 얼룩진 표면, 또는 거칠게 묘사된 가운의 표면은 우리로 하여금 작품이 형상하는 인물, 주인공 발자크가 아니라 그 표면 자체에 주목하게끔 한다. 크라우스의 표현을 빌면 그것은 “해부학적인 형태를 평면화시키고 지워버리며 작품의 표면에서 그 위로 어떤 것이 끌려갔다는 사실만을 목격하게” 한다.

ⓒ Mus´ee Rodin, Paris
‘발자크’상과 의미 생성의 비밀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크라우스에 따르면 로댕은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표면 자체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계속적으로 관람자로 하여금 작품을 과정의 결과로서,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상을 이루는 행위의 결과로서 인식하게” 만든다. 그것은 제작과정에서 조각가의 손놀림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의미는 경험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과정 자체에서 발생한다는 자각으로 이끌어질 것이다. 그것이 펼쳐지는 場은 표면이다. 그곳에서 외부로 드러난 인물 곧 발자크의 자세와 제작과정에서의 작가의 행위 흔적이 만난다. 후설 또는 메를로-퐁티의 영향을 짙게 드러내는 크라우스의 로댕 해석은 오늘날 크라우스로 대변되는 주류 현대조각가나 미술비평가들이 로댕을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하는지. 또는 그들이 어떻게 조각 작품의 의미를 헤아리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로댕의 조각 작품에 대한 또 다른 주목할 만한 논의는 작품의 받침대에 관한 것이다. 예컨대 이화여대 박숙영 교수는 로댕이 「칼레의 시민」을 지면과 거의 동일한 높이에 세운 것에 주목한다. 이는 받침대를 없애는 현대조각의 원천으로 평가할만한 혁신적인 시도다. 이렇게 되면 관객은 자신의 신체에 비례해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지각하게 된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대중으로 하여금 실제로, 또 심리적으로 작품에 접근하게 만들고 이로써 작품과 관람자를 확연히 갈랐던 전통적인 경계는 소멸된다. 그것은 “주변환경과 무관한 독립적인 오브제로서의 조각이라는 전통적인 조각 개념을 전복시킨 중요한 예”라는 것이다.

위에서 간단히 열거한 여러 논의들은 서로 입장을 달리 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 공통적이다. 즉 이 논의들은 공통적으로 작품을 지각, 인식하는 관람자의 능동적인 태도를 강조한다. 그것은 로댕 자신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러니 로댕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어떤 단단한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거장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우리 자신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67@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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