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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학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 많던 학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 승인 2010.05.0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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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551호 ‘학술출판’ 기사를 읽고 ③

희한한 일이다. 캠퍼스 안에선 인문학이 위기라는데 캠퍼스 밖의 인문학은 활황이다. 도서관, 문화센터, 시민단체 등 다양한 곳에서 인문학 강좌 개설이 늘고 있다. 수강생들의 열기 또한 예사롭지 않다. 강좌에 가보면 40~50대 아줌마, 아저씨는 물론 중고생이나 60~70대 어르신들도 자주 볼 수 있다.

반면, 이들의 갈증을 풀어줄 강사와 텍스트의 빈곤을 호소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저서를 쓴 저자들이 대부분 강사로 나서고 있는데 사회적 요구에 비해 그 수가 턱없이 모자라 겹치기 섭외가 일쑤다.

강좌만이 아니다. 자발적인 인문학 읽기와 토론 모임도 늘고 있다. 20년 전에 그랬듯이 몇 사람씩 둘러앉아 철학, 인문, 예술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소모임 활동이 곳곳에서 활발하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국내 전공자가 쓴 제대로 된 입문서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그 많던 학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작금의 캠퍼스 밖의 인문학 열풍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그저 ‘쉽고, 흥미롭고, 친절한 교양서나 입문서’를 기대하지 않는다. 이렇게 파악하는 것은 게으른 시선이다. 지금의 독자들은 장하준 교수의 경제학 관련 저서들에 열광한다.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국가의 역할』이 어디 쉬운 책인가. 독자들은 정민 교수의 『한시미학산책』을 읽으며 한시의 세계에 빠지고, 『미쳐야 미친다』에 흠뻑 젖고, 논문집인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을 공부하듯 읽는다. 지식의 깊은 바다로 안내하는 기초 교양서, 입문서에 대한 갈증을 수준 낮은 독자들의 유행성 관심 정도로 치부하는 풍조는 이제 시대착오적이다.  

이러한 캠퍼스 밖의 인문학 열기에 캠퍼스 안의 학자들이 주목하고 그들의 요구에 답해야 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곳을 찾는 이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40~50대 주부들이 남편과 자녀들과 나란히 강좌를 찾고 또 오순도순 서점에 들른다. 그 주부들은 가정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중고생인 그 자녀들은 주체적, 성찰적인 고민 끝에 자기에게 맞는 학과를 고르며, 그 아버지들은 사회와 직장에서 겪는 문제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유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이 모두가 캠퍼스 밖 강좌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토론한다. 중고생 시절 『미학 오디세이』를 읽고 미학을 전공한 이들이 속출한 것은 이제 가상이 아닌 현실이다.    

하지만 캠퍼스 안의 학자들이 연구, 강의, 저술의 영역에서 모두 탁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탁월한 연구는 수많은 명저로 이어진다. 열정적인 강의는 훨씬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역작으로 담길 수 있다. 출중한 저술은 뛰어난 청소년, 대학생 들을 지식과 학문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다.

더 이상 빛나는 강의와 연구, 저술이 탁월한 교양서, 입문서와 대립, 상충해서는 안 된다. 그 둘 사이의 드높은 벽이 제거되고,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고 적극적으로 넘나드는 풍토가 절실하다. 학자들의 저술을 진작하기 위한 교수업적평가제의 개혁, 학술 출판과 인문학 출판의 진흥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지원에 대한 목소리가 캠퍼스 밖에서만이 아니라 안에서도 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전공을 넘나드는 기초교양 커리큘럼의 신설과 학문간 통섭의 흐름도 반길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학문 간 교류와 통섭의 장이 열리듯, 캠퍼스 안과 밖의 소통을 촉진하는 강의와 저술에도 학자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싶다.

실제로 많은 대학에서 인문학을 지원하는 학부, 대학원생의 유치를 위해 교수들까지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권의 훌륭한 저작이 얼마나 많은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생의 길을 결정하는지 경험해왔다. 언제까지 역사학의 입문서 영역을 카(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에 머무르도록 방치할 것인가. 제대로 된 인문학, 사회학, 사회과학 입문서 목록을 갖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누가 청소년 시절 그 미지의 세계를 꿈꾸려 하겠는가.

캠퍼스 안의 학생만이 아니라 캠퍼스 밖의 학생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그들은 지금 스스로 찾아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질문하며 깨어있는, 우수한 학생들이다.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인문사회과학출판을 전문으로 해왔다. 『대담』 『노마디즘』 『미학오디세이』 등 인문분야 문제작을 다수 펴냈다. 『편집자란 무엇인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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