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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마키아벨리의 촌철살인, 감탄하면서도 내심 불편한 이유
[역사 속의 인물] 마키아벨리의 촌철살인, 감탄하면서도 내심 불편한 이유
  • 곽차섭 부산대·사학과
  • 승인 2010.05.03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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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상가들을 나누는 좀 색다른 방법이 있다. 사상의 可塑性에 따른 분류법이 그것이다. 여기서 ‘가소성’의 크고 작음은 사상의 내용이 얼마나 유연하게 해석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만일 어떤 인물의 사상이 후세에 아주 다양하게―때로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도―해석될 여지가 많다면 그 사상은 가소성이 아주 크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식 분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541년 전 오늘 피렌체에서 태어난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5.3~1527.6.21)다. 그에게는 각종 이데올로기 진영에서 붙여준 수십 가지 별칭들이 따라다닌다. 그를 가리켜 절대왕정의 옹호자라 비난하는가 하면 고대의 시민정신을 되살리려 한 공화주의자라는 항변도 만만찮다. 정치를 도덕과 분리함으로써 근대 정치학의 길을 연 선구적인 사상가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자신이 마키아벨리주의자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정치인은 없는 역설을 낳기도 한다. 역사에서 한 인간의 사상이 이렇게 상반된 평가를 받는 경우도 찾기 힘들다.


마키아벨리의 삶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첫 시기는 그가 태어난 1469년부터 29세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국 제2서기장으로 들어간 1498년 이전까지다. 두 번째 시기는 메디치가의 복귀로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그 여파로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 1512년까지로써 주로 외교관으로 활동한 때다. 세 번째 시기는 강제로 관직에서 밀려나 노심초사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난 1527년까지다. 이때는 그에게 비운의 시기였지만, 역설적으로 『군주론』, 『리비우스 논고』, 『전재의 기술』, 『피렌체사』, 『만드라골라』 등 후세에 명성을 드높인 주요 저작과 문학 작품들을 썼던 매우 생산적인 시기이기도 했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군주론』이다. 이 책을 읽을 때 우리가 특히 눈여겨봐야 하는 측면은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합니다’는 식의 언명들이다. 사람들은 도덕과 종교를 칭송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간과하면 정치에서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흔히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에 대해 많이 얘기하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정치적 행위란 통상적인 사람들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군주론』 후반부의 章들에서 나타나는 ‘악명 높은’ 권고들도 바로 이러한 현실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군주는 신민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돼야 하며(사랑받기를 원하다가는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니까) 신의는 반드시 지킬 필요가 없다(상대방이 지키지 않을 것이므로)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마키아벨리식 가정이 깔려 있다. 여우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자의 힘과 여우의 책략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가치에 표피적으로 얽매이지 말고 그 본질을 직시해 운명과 상황 변화에 따라 어느 쪽으로든 바람 부는 대로 자신의 행동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것이야말로 마키아벨리적 처세술의 핵심이다.

그런데 『군주론』의 독자라면 이러한 촌철살인에 감탄하면서도 내심 무언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제시한 ‘마키아벨리주의적’ 행위 윤리란 것은 그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날카롭게 관찰해 그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독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우리 모두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성공의 처세술을 원하는 사람들, 정치의 본질과 작동원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 혹은 마키아벨리즘을 비난하며 당위의 삶을 주장하는 사람들까지도 읽어볼 만한 책이 된다. 그 누구도 마키아벨리가 예리하게 파악한 인간의 욕망과 정치 간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곽차섭 부산대·사학과

주 관심 분야는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지성사와 미시문화사 및 미술사이다. 『마키아벨리즘과 근대 국가의 이념』등을 냈고 『마키아벨리언 모멘트』, 『군주론』 번역서가 곧 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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