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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공계 위한 비전이 없다
[대학정론] 이공계 위한 비전이 없다
  • 오재응 논설위원 /한양대·기계공학부
  • 승인 2010.05.0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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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응 논설위원 /한양대·기계공학부
“이렇게 가다간 우리나라 이공계 분야가 완전히 황폐해질 거야. ‘의학전문대학원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똘똘한 제자의 푸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꽉 막혀오는 기분이야!”

언젠부터인가 동료 교수를 만날 때마다 자주 듣는 걱정과 하소연이다. 그렇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유난한 이공계 기피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결코 아니다. 이공계 인재들이 경쟁이나 하듯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가 하면, 각종 고시공부를 하느라 수업을 소홀히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공계중에서도 기초과학 분야의 엑소더스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이공계 학생들의 이러한 엑소더스를 어떻게라도 막아볼 뾰족한 도리가 없다는게 답답하다. 과학 보국이라는 오랜 덕목을 다시 꺼낸들 먹혀들리 없는 세상이다. 아니 학생들 스스로가 세파를 어떻게 뚫고 나가야할지 이미 대학시절부터 처절하게 체득하고 있는 시절 아닌가. 

최근 미국의 애플사가 출시해 세계인들이 열광하고 있는 '아이패드'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이 우리 기업의 제품이라는 소식에 뿌듯해 한 적이 있다. 반도체와 정보기술(IT)은 대한민국의 먹거리를 만들어 왔던 성장동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선진국보다 늦게 출발해 빠른 속도로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 응용기술 분야의 과학기술 투자에 주력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해 왔지만, 이 같은 ‘추격형’ 성장전략만으로는 한계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응용기술 위주의 선진국 추격형 모델로는 독자적인 기초과학의 발전과 원천기술 창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기초과학 분야의 투자규모에 비해 절대 열세인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의 집중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축 사업이 기초과학 부흥의 계기와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구축의 성공을 위해서는 단순히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성장 잠재력과 능력이 무엇인가를 파악해 중점 투자 분야를 선별하고 중장기적인 발전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이 로드맵은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응용과학과 산업과의 융합과 연계 차원에서 설계돼야 한다. 과거의 테크노파크와 산업클러스터의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반영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그런데 이것은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내세운 실용경제를 통한 국가경쟁력 향상과 국민소득 증대라고 하는 정책 기조와는 다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수많은 젊은이들은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농담에 쓴 웃음을 지으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다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기 위해서는 결국 산업기술 현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고, 문화ㆍ예술과 함께 성장하는 서비스업 등과 IT가 결합하는 방안에 대한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이태백 을 양산하는 청년실업에 더불어, 설상가상으로 젊은이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안타까운 현상 속에서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문제점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인식이 요구된다. 기초과학의 메카가 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또한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신 성장동력사업 및 녹색뉴딜정책과도 연계해 고급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산업과 기초과학의 하모니는 올바른 국가경쟁을 제고하고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이공계와 기초과학분야를 기피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맘껏 연구하고 그에 걸맞은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왜 이공계를 기피하고 과학자가 되기를 주저하겠는가. 지금의 기성세대가 어렸을 때는 장래희망이 대부분 대통령 아니면 과학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어린이들이 연예인이 되기를 희망한다. 청소년과 대학생들은 의료인과 법조인을 꿈꾸다가 공무원과 교사 등 안정적인 직업만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자가 되겠다는 어린이를 찾기 힘든 나라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오재응 논설위원 /한양대·기계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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