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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강화의 함정, 획일적 ‘논문 數’ 평가 불렀다”
“공정성 강화의 함정, 획일적 ‘논문 數’ 평가 불렀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0.04.20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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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임용제도 개선 위한 설문조사’ 결과 대학가 반응

<교수신문>이 교수 지원자 515명의 의견을 들어 발표한 ‘교수임용제도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4월 12일자)는 고질적인 ‘내정자 임용’의 실태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제도는 개선됐지만 실제 운영은 달라진 게 없다”는 의견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 걸 보면, 깊은 불신도 다시 확인했다.

대학마다 교수임용제도를 개선해 온 것은 사실이다. 특히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때마다 제도 정비에 나섰다. 지난 2002년에 실시한 설문조사와 비교해 보면, 교수임용 불공정 인식은 79.3%에서 54.6%로, 금전적인 요구를 받았다는 응답도 16.5%에서 8.5%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설문조사 수치상으로 비율이 낮게 나왔다고 해서 현재 교수임용 실태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내정자 임용’에 대한 불신은 더 깊어졌다.


설문조사 결과 발표 이후 대학 관계자와 교수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교수임용 불공정 사례는 대학별 ‘편차’가 크고, 공정성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은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성 강화의 함정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정성 시비를 없애기 위해 정량평가를 강화하면서 전공별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획일적인 ‘논문 수’ 평가가 늘었다는 점이다. 연구업적의 질 평가 보다는 얼마나 많은 논문을 썼느냐는 ‘양적 평가’에 치우쳐 학문적 깊이는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심사가 까다롭고 기간도 비교적 오래 걸리는 학술지에 싣는 것보다 ‘만만한’ 학술지에 실어 논문 편수를 늘리는 일이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 문제는 해외 박사들이 ‘국내외 학위에 따른 차별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답변이 이전보다 더 많아진 것을 보면, 교수임용 심사의 ‘양적 평가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지역 한 대학의 국어국문학과 신규임용 심사 방식의 변화도 이 같은 문제가 드러난다. 전공 관련 저술도 주요하게 고려하던 방식에서 ‘학진’ 등재지 논문수가 실적평가의 관건이 됐다. 공정성 시비를 줄이고 객관적인 평가 제도라고 했지만 과연 발전된 형태라고 볼 수 있을까. 공정성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 오히려 학문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도 개선만으로는 지금의 교수임용 실태를 바꾸기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조사 결과 “연구업적 심사 시 외부 심사위원이 내부 심사위원보다 더 공정할 것”이라는 응답이 85.6%를 차지했는데, 어떤 경우는 외부 심사위원이라고 해서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반응도 있었다. 한 대학의 교무처 관계자는 “외부 심사자가 더 공정하게 보이지만, 우리 대학의 경우는 내부 심사자가 대학의 인사정책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더 엄격하다. 본부에서 외부심사위원풀을 활용해 심사를 맡겨도 심사 전에 해당 학과 교수에게 연락해 ‘학과에서 누구를 미느냐?’고 묻는 일도 많다. 외부 심사자에게 맡겨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의 교무처장은 “외부 심사위원 수가 많기 때문에 일부가 불공정하게 심사를 해도 반영되기 힘든 구조”라며 “공정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있지만 너무 공정성을 강조하다 보니 오히려 제도적인 맹점도 생기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대학 민주화가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학마다 ‘공정성’ 강화만을 위해 제도 개선에 그쳐서는 교수임용비리는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학문 자율성을 침해하며 정치적 결정으로 실력없는 내정자를 임용하는 것이 문제다. 암암리에 ‘연줄’을 동원한 청탁이 여전히 존재한다. 민주화가 안 된 대학일수록, 족벌 사학이나 비리 재단은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능력과 상관없이 ‘만만한’ 사람을 교수로 뽑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대학의 의사결정구조를 민주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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