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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3종맨, 그 남자가 사는 특별한 방식 … 죽기 전에 해야할 일들? “일단 뛰어!”
철인3종맨, 그 남자가 사는 특별한 방식 … 죽기 전에 해야할 일들? “일단 뛰어!”
  • 이규봉 배재대·전산수학과
  • 승인 2010.04.12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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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공 교수의 연구실 탈출기 ‘나는야, 피리부는 사나이’

우리 학교엔 공 교수가 있다. 그의 전공은 이학 분야이지만 하는 일을 보면 영 딴판이다. 그는 자신의 전공과 사뭇 다른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환경에 관심이 많다. 실제로 관련 시민단체에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간혹 시위에도 잘 나선다. 또한 자전거 타기에도 수준급인 그는 마라톤을 완주했고, 철인삼종경기(트라이애슬론)도 완주한 경력이 있으며 방학 때면 자전거로 세계여행에 나서고 있다. 요즘은 우리 전통악기인 피리에 빠져 산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기 전에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가부좌를 틀고 정악 한 곡조를 피리로 분다. 말이 한 곡조이지 거의 한 시간이 걸린다. 옛 선비들이 즐긴 대로 느릿느릿한 선율에 마음을 가다듬고 출근한다.


그가 피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3년 전이다. 미술학과의 우 교수가 함께 하자고 꼬드기고 학창 시절에 밴드부를 하며 오랫동안 클라리넷을 다루었던 그였기에 구미가 당겼다. 우선 피리를 구입했으나 가르쳐 줄 사람을 찾지 못해 혼자서 연습하고 있던 그가, 트라이애슬론 대회에서 완주에 실패한 이후 시합을 포기하면서 남는 시간에 대신 피리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 일러스트 : 이재열


공 교수는 6년 전에 뉴질랜드로 안식년을 갔었다. 유달리 등산을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했던지라 뉴질랜드의 원시적인 자연을 매우 즐기며 살았다. 그러면서 뉴질랜드 사람이 서두르지 않고 자연과 벗하며 스포츠를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몸소 보았다. 공 교수는 아들의 친구의 아버지를 알게 되고, 자신과 연배가 비슷한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보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자신과의 경쟁이다”


그는 토목공학도로 철인삼종경기(아이언맨)를 완주한 사람이었는데 뉴질랜드에서 열린 카약과 달리기 그리고 자전거를 이용하여 서부해안에서 높은 산맥을 지나 동부해안까지 1박2일에 걸쳐 일주하는 익스트림삼종경기를 완주했던 것이다.


공 교수는 결심하게 된다. ‘앞으로는 남들과의 경쟁은 가능한 피하고 자신과 경쟁하는 삶을 살자’고. 그래서 계획 세운 것이 ‘50이 되기 전에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을 완주하고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첫 결심이 마라톤 완주였고, 안식년을 보내며 100일간의 준비 끝에 처음으로 마라톤을 완주했다. 나는 물어 보았다.


“아니, 그 힘든 백리 길을 달리는 마라톤을 어떻게 완주할 수 있어, 난 남들 얘긴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까운 데에도 있었네.” 그러자 그는, “내가 한국에 있을 땐 10km는 달려 봤잖아. 그런데 어느 날 시내에 나갔더니 하프마라톤대회가 있다는 광고물이 붙어있는 거야. ‘한 번 달려봐?’하는 오기가 생기는 거 있지. 그래서 한 달을 준비했어. 집 주변을 아침, 저녁으로 매일 뛰었지. 결국 하프마라톤 완주에 성공했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러니 또 도전 의식이 발동하는 거야.


내친김에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해볼 필요가 있다는 마라톤을 뛰어봐?’”그는 그 긴 42.195km를 달리며 세 번 울었다. 처음은 마라톤에 도전했을 때다. 달리고 있는 자신이 흡족해서 저절로 눈물이 났고, 두 번째는 너무나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서 고통의 눈물을 흘렸다. 세 번째는 완주했다는, 자신을 이겼다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마라톤 완주를 하지 않은 자, 인생을 논하지 말라’며 으스댔다.  귀국한 후 다시 한 번 마라톤을 완주했고, 다음 해에 산악자전거를 구입해 산과 도로를 달리고 수영을 시작하여 몸을 단련하며 트라이애슬론대회에 처녀 출전하여 완주했다. 그리고 지리산 종주를 시작으로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했다.

 

이것으로 자신이 자신에게 약속한 ‘50이 되기 전에 해야 할 일 세 가지’를 모두 이루었다. 공 교수는 50이 넘어서도 트라이애슬론에 빠져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 그리고 수영을 꾸준히 연습하며 다음 해 경기를 준비했는데 지난 번 경기에서 두 번이나 연속 실패했다. 통영대회에서는 물에 뛰어 들자마자 심장이 방망이질을 해대서 포기했고, 그 다음 달 속초대회에 다시 도전했는데 두 바퀴를 도는 수영에서 한 바퀴를 줄을 잡다시피 돌아 결국 실격 당하고 포기했다. 이후 삼종경기를 포기하고 택한 것이 바로 피리 부는 것이다. 밖으로는 달리고 자전거를 타며 몸을 단련하고, 내면으로는 피리를 불며 내공을 다지는 그의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그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다.


“달리는 것 너무 재미없고 무릎도 상하는데 왜 하나?” 그는 답했다. “직접 달려 보게. 그러나 천천히 자신의 능력에 맞게 말이야. 그러면 무릎이 상할 일도 없고, 달리고 난 후의 그 쾌감은 달리면서 느낀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네.”


그는 자전거 마니아이다. 산악자전거동호회도 만들어 운영했지만 지금은 주로 자전거 여행을 자주 한다. 피리도 작기 때문에 택했다. 해외에 갖고 다니면서 길거리 연주를 한다. 우리 문화를 알리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우리나라 해안을 따라 자전거로 한 바퀴를 돌았다. 2년이 걸렸단다. 내가 물었다.


“힘들지 않아, 도로를 달리는 건 위험한데 왜 위험을 자초해?” 그의 말이 걸작이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 봐도 우리나라 한 바퀴가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는 곳이 없어, 그래서 내가 직접 알아내자고 한 것이 완주까지 하게 됐지. 그리고 위험? 집 밖에 나가면 다 위험한 거 아닌가?”

지성인으로 살기위해 내딛는다


그는 2년 전에도 막 제대한 아들과 함께 타이완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돌았다. 그 이유 역시 ‘타이완 둘레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하필 왜 타이완인가?” 하고 물었더니, “타이완은 우리나라와 현대사가 너무 비슷해, 그리고 강대국 중국 때문에 세계에서 따돌림 당했어. 연민의 정을 가진 거지.”그가 말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타이완이 겪은 군사독재정권과 그 아래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등이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이완이 자전거 세계여행의 첫 발자국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 다녀온 나라도 역시 우리와 현대사에서 얽혀져 있는 베트남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20일에 걸쳐 완주했다. 그 이유 역시 우리와 얽힌 베트남의 아픈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자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지?”하니, “우리가 딸린 대학원생이 있나, 그렇다고 젊을 때처럼 연구에 패기가 있나. 이젠 종신 재직권도 받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연구를 좀 덜 하게 되고. 그렇다고 맡은 보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을 열심히 준비해도 시간이 좀 여유가 있잖아. 그 시간에 뭘 하나? 교수가 해야 할 일이 연구 그리고 교육 다음엔 뭔가? 사회봉사 아닌가!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이 사회에 도움이 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무리 이념이 달라도 근본인 인본주의는 벗어나면 안 되는 거잖나. 인본주의의 기본은 생명 존중이라고 봐. 하지만 우리 현대사에는 이것이 상실돼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역사를 들추려 하면 빨갱이 소릴 듣지. 그러면서 꼭꼭 감추려 하지, 절대 사실을 밝히려고 안 해. 그래서 난 사실만이라도 그대로 밝히고 싶은 거야.

 

그래야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거든.환경도 그래. 개발 이익은 거의 개발자가 가져가지. 그 과정에 엄청난 생명이 없어지네. 나중에 파괴된 환경의 책임은 아무도 안지네. 그 주변 주민을 비롯해서 아름다운 경관을 보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피해가 가네. 이 얼마나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인가! 이러한 일을 하려면 우선 내가 알아야 하기에 그쪽 관련 공부를 하는 것이고, 또 이것이 다른 분야에 대한 연구가 되는 것 아닌가. 교수는 지식인으로 그치면 안 된다고 보네. 지성인이 돼야지.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J'Accuse!)」를 <로로르(L'Aurore)>지에 발표하면서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힐 수 있지 않았는가. 교수들은 옳은 소리를 내야 하는 걸세. 비록 그것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다 할지라도. 이것이 사회에서 교수들에게 바라는 것 아닌가. 지난 4ㆍ19혁명 때도 교수들이 한몫 했지. 교수들은 대우를 받는 만큼 이 사회에 뭔가 나누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나마 신분이 가장 잘 보장되는 직장이지 않은가.”


오늘도 공 교수는 퇴근하면 피리를 불 것이다. 피리를 인생의 벗으로 삼고 퇴임 후에는 전통음악을 국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공 교수. 이번엔 민중의 소리가 애절하게 담긴 산조를 구슬프게 그리고 기교를 부려가며 뱉어 낼 것이다.


“나니르~리르~리라라, 니라리라리~라리라라…”

 

이규봉 배재대·전산수학과

Virginia Tech에서 박사를 했다. 배재대 과학기술바이오대학 학장을 지냈고, 현재는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 대전국악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학의 산책』등 총 11편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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