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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서평 : 2] 국내외 과학 대중서 진단
[기획서평 : 2] 국내외 과학 대중서 진단
  • 교수신문
  • 승인 2002.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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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22 15:43:13
최근 언론의 과학관련 보도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말이 ‘이공계열 기피현상’이다. 이공계열 지원자가 인문계열 지원자 수의 절반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게 된 현실은 기초과학이 점차 대중으로부터 괴리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위로부터의 노력’이 정부의 사기진작책과 대학의 지원 유도책이라면 ‘아래로부터의 노력’은 기초과학자들이 기본적인 연구 이외에도 난해한 과학의 개념과 흐름을 풀어서 글쓰기를 하는 것.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난 과학관련 대중서적들은 단순히 학자와 대중이라는 간극뿐만이 아니라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기술과학이라는 두 문화 사이의 벽을 넘어서게 해주는 대화의 촉매로써도 의미를 지닌다.
과학 대중서의 흐름을 가장 먼저 주도한 것은 생태환경 분야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 이 책은 출간 당시 DDT를 비롯한 유독성 화학물질이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보고해 농약업체, 농민단체 등의 반발에 부딪치고, ‘낭만적이며 비과학적인 우화로 가득 차있다’는 언론의 비아냥을 샀지만 오늘날에는 생태환경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고전이 됐다. 최근에는 과학자는 아니지만 ‘오래된 미래’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의 존 로빈스 등이 ‘학제를 넘어선 사유’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밀과학이 추구하는 ‘경험주의적’인 연구를 통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도 많다. 탄자니아의 숲 속에서 30년 동안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 르완다의 공원에서 멸종 위기의 고릴라를 지키다 살해당하기까지 18년 동안 고릴라와 함께 생활한 다이안 포시, 보르네오의 열대우림에서 지금도 오랑우탄과 함께 있는 비루테 골디카스 등은 생생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인간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메세지로 재현한 저작들을 남겼다.
그러나 과학 대중서가 환경이나 생태학적인 주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시간의 역사’의 스티븐 호킹, ‘가이아’의 제임스 러브록, ‘이중나선’의 제임스 왓슨 등과 같은 과학서적은 그 깊이와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과학 대중서의 반열에 올랐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나 ‘코스모스’는 천체물리학자가 시간, 공간, 유한성 등 인간이 맞닥뜨리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성찰을 담은 책으로 어떤 철학서나 에세이 못지않은 깊이를 자랑한다. 이와는 좀 다른 경우이지만 ‘로봇’의 아이작 아시모프나 ‘쥬라기 공원’의 마이클 크라이튼도 각각 화학, 의학을 전공, 전문적인 기초과학지식을 과학소설(SF)로 펼친 작가들이다.
한국의 경우 아직 상대적으로 자생적인 과학기술의 이력이 짧은 탓인지 외국의 경우처럼 커다란 족적을 남긴 과학서적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과학자들이 질적 연구작업보다는 계량적 연구결과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풍토에서는 글쓰기가 연구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기 때문. 물리학회에서 과학대중화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포항공대 김승환 교수는 “연구실적 평가가 논문 등재와 같은 가시적인 결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최근 들어 계량적인 연구는 SCI 논문 인용 횟수 등에서 보듯 향상되는 추세이지만, 과학 대중서들은 감상적인 에세이 수준에서 겉도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과학자들의 글을 대중매체나 출판 등을 통해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가장 먼저 대중에게 과학을 소개하는 작업을 벌인 것은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강건일 의사과학연구소장,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등의 과학칼럼니스트들. 이제는 ‘삶과 온생명’의 장회익 서울대 교수(물리학), ‘첨단의학시대에는 역사시계가 멈추는가’의 황상익 서울대 교수(의학), ‘과학콘서트’의 정재승 고려대 교수(물리학),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의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 등 다양한 과학자들이 활발하게 저작활동을 펼치면서 점차 내실을 찾아가고 있다. 가장 특기할만한 사실은 과학에세이가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점. 위에서 열거한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맛깔스런 문체로 생물학, 물리학 관련서를 쓴 권오길 강원대 교수(생물학), 최상일 전 포항공대 교수(물리학) 등 원로과학자들도 과학에세이 단골고객이 됐다. 이 밖에도 홍성욱 토론토대 교수(과학사), 김동광 과학세대 대표, 김훈기 과학동아 편집장, 박병상 인천생태환경연구소장 등의 ‘변방의 과학자’군들도 논리정연한 글솜씨를 뽐낸다.
MIT 앞 서점에서 수십 년 동안 베스트셀러를 유지해온 책은 기초과학 서적이 아니라 작문법에 관한 책이다. 우리에게 생경한 이 현실은 과학기술이 기능적인 연구는 물론 인문사회과학의 비판적인 성찰을 받아들이고, 전공을 불문하고 제도교육에서도 이해와 표현능력을 강조한 토양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던 결과이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났다고는 해도 대부분은 한정된 주제와 필자에 머무르고 있는 한, 국내의 과학대중서는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뒤집어본다면 이제야 비로소 과학 전문가와 여타분야 종사자들이 대화의 말문을 텄으며, 이제 막 시작하고 개척하는 분야로써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박소연 객원기자 shant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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