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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 (3) 민중신학 : ‘민중사건’에 바탕한 현재진행형 신학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 (3) 민중신학 : ‘민중사건’에 바탕한 현재진행형 신학
  • 최형묵 대표
  • 승인 2002.06.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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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의 세대론과 다양한 민중신학들
 ◇ 서남동 박사와 더불어 민중 신학의 1세대로 꼽히는 안병무 박사


“고문당하다가 이제 시체가 돼 관속에 넣어진 채 그대로 매장터로 달리는 길을 가족과 동료들이 몸으로 막고 아옹다옹 싸우는 현장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보았다. 그에 참여해 맨주먹으로 불의한 세력과 맞서 싸우다가 피투성이가 돼 절규하는 저들에게서 나는 꼭 같이 그 양을 보았다. 그 양은 바로 고난의 역사 한복판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지나가는 예수를 가리킨다.” 안병무 박사의 말이다.이정희 박사의 글은 민중의 ‘중심에서’ 학문을 해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주고 있다. 어쩌면 이는 오늘의 시점에서 민중신학을 다시 거론하려는 편집자의 숨은 의도이기도 하다. 최형묵 씨는 민중신학의 역사를 짚으며 그 변화과정을 추적한다. 그에 따르면 민중신학은 현재진행형이다. 최미화 통신원은 미국에서의 평가를 들려준다. 특히 화제가 됐던 인물인 정현경에 대한 비판이 매섭다. 세 글의 무시 못할 차이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민중신학은 우리 이론 지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형묵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대표

민중신학의 역사와 그 유형을 이해하는 한 방법으로 ‘세대론’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신학자들’이 아닌 ‘신학의 경향’을 분류하는 이 세대론은 민중신학의 연속성과 차별성을 분별해주는 유용한 방편이다.
제1세대 민중신학은, 1960∼70년대 돌진적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민중의 발견에서 촉발됐다. 1970년 전태일 사건의 충격과 더불어 기독교 신학은 자신의 시좌를 새롭게 설정한다. ‘민중사건’을 증언하려는 신학은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더불어 그 사건을 증언하기에는 부적합한 기존의 기독교와 신학 전통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서구적 합리성에 기초한 지배적 담론에 대한 저항으로서 당시의 민중신학은 예언자적 통찰에 가까웠다. 그것은 민중신학자들 스스로의 표현처럼 ‘증언의 신학’이었으며 ‘반신학’·’탈신학’이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과 더불어 제2세대 민중신학이 전개된다. 1980년대는 한국적 근대화의 대안으로 반자본주의적 전략과, 미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민족해방 전략이 전면에 부상했고, 급진적인 학생운동의 폭발적 성장 및 노동자 계급운동의 형성과 더불어 대안적 이념으로서 맑스주의의 수용이 본격화됐다. 이 시기의 민중신학은 민중운동과의 연대를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고 그 연대를 위한 대안적 이론 모색에 치중했다. 정치경제학적 인식과 신학적 인식을 결합한 ‘物의 신학’이 형성된 것은 그 결과였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에 접근한 제2세대 민중신학은 제1세대 민중신학의 다양한 가능성을 협애화시킨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당대의 시대인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불가피한 결과였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지구화로 특징 지워진 1990년대 이후 역사적 지평은 제3세대 민중신학을 태동시킨 배경이 된다. 국가 내지는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 경계화가 해체되는 가운데 보다 다양하고 정교한 지배의 양식을 구현하고 있는 지구화의 현실은 새로운 해방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제3세대 민중신학은 그러한 현실에 대응해 정치경제학적 인식을 보완하는 인식틀로 문화정치학적 인식을 수용한다. 아울러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의 통합을 추구하고 권력의 다양한 지배 양식에 주목하여 민중신학의 권력 해체적 특성을 강조한다. 탈서구신학 기획으로서 ‘반신학’ 내지는 ‘탈신학’의 계보를 형성하고 있는 세대별 민중신학은 한국사회의 위기에 대한 개입 언어로서 신학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세대별 구분법으로 포괄되지 않는 다양한 민중신학‘들’ 또한 있다. 예컨대 세대별 구분 범주에 들지는 않으나 반신학의 계보로 분류할 수 있는 민중여성신학 및 민중종교신학 등이 있다. ‘민중 가운데 민중’으로 일컬어지는 여성의 시각을 강조하는 여성민중신학은 가부장적 텍스트로서 성서 자체의 재구성까지 주장하는 급진성을 띠고 있다. 민중종교신학은 흔히 ‘토착화신학’이라 일컬어진 신학의 전통에서 급진화된 한 갈래로서 종교간 대화의 근거를 민중 해방사건에 두고 있다. 대개의 종교간 대화의 신학 모형이 선교론적 차원에 머물러 사실상 오리엔탈리즘의 한계 안에 있는 반면 민중종교신학은 창조적 한국신학으로서 민중신학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반신학’의 계보와 대별되는 경향을 이름한다면 ‘신학적 재구성’ 시도라 할 것이다. 반신학의 계보로 이어지는 민중신학과 달리 ‘신학적 재구성’의 시도는 신학의 장으로서 교회를 강조함과 아울러 전통적 신학과의 대화를 중시한다. 이러한 ‘신학적 재구성’의 시도는, 서구신학과의 차별화 전략을 취하는 경향과 동일화의 전략을 취하는 경향으로 다시 나뉜다. 차별화 전략은 사실상 서구신학의 주요 교의들을 전제하면서도 한국의 전통에서 재발견된 가치들의 의미를 재조명하려는 방식으로, 동일화의 전략은 서구신학의 교의에 비춰 민중신학을 순화하려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경향들이 여전히 민중신학인 것은, 스스로 민중신학의 유산을 폐기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명시적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계보학적으로 보나 그 밖의 여러 경향들로 보나, 이제 민중신학은 단일한 색조를 지닌 신학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신학은 현재진행형의 신학으로서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 특성은 ‘민중사건’을 신학적 성찰의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 한국적 맥락에서 발견된 ‘민중사건’의 지평은 이제 폐쇄된 시·공간으로서 한국에 제한되지 않는다. 자본의 지구화 현실에서 지역적이며 동시에 지구적인 ‘민중사건’들이 봇물 터지듯 펼쳐지고 있다. 이제 한국의 민중신학은 전지구적 민중연대를 향한 신학적 성찰로서 그 지평을 확장해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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