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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성찰] 민중 현실의 ‘중심에서’ 신학하기
[자기 성찰] 민중 현실의 ‘중심에서’ 신학하기
  • 이정희 한신대
  • 승인 2002.04.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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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현실 속에서 복음 성찰…탈식민담론의 한 갈래
이정희 / 한신대 강사·신학

신학 담론으로서의 민중신학은 언어·담론의 역사성을 오히려 선택하면서, 민중 현실의 중심에서, 역사의 주체로 자신들을 해방해 나가는 그들의 말-사건을 통해 신학담론을 생산하려는 극히 당파적·계급적인 신학이다.

가난한 청년노동자가 당대의 악과 그 악이 드리운 어두움을 제 몸에 불을 질러 밝힌 사건 앞에서 교회는 신을 예배할 수 있고 신학은 신을 말할 수 있을까. 자본과 권력의 폭력에 의해 살해당한 주검 앞에서는? 어떻게? 한때 서구 기독교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신학이 가능한가 물었다. 히로시마 원폭 이후에도 신학은 가능한가. 2001년 9·11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 학살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격 이후에도 신학은 가능한가. 아니 1980년 5월 광주 이후에도 신학은 가능한가. 황석영이 ‘손님’에서 재현하고 있는 기독교인이 저지른 신천 대학살 이후에도 신학은 가능했던가.

민중신학은 이 물음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하나의’ 대답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신의 의로움에 대한 기독교적 담론, 神正論 아닌가. 아니 전통적인 신정론은 인간의 魔性을 변증하면서 오히려 그것에 기대어 기독교 프로파간다에 이용하려는 서구 기독교의 이데올로기적 담론의 한 갈래일 뿐이다. ‘신의 의로움’이란 개념에서 신의 속성으로서의 ‘의로움’은 추상명사일 뿐이고, 그 의로움이 어떤 인간의 행위를 신이 의롭다고 인정하는 행위명사라 해도 추상성을 벗어날 수 없다. 신앙인은 오직 그가 믿는 신을, 정의로운 실천을 통해 그의 의로움을 증언할 수 있을 뿐이며, 그러기에 신정론은 실천론으로 전화된다. 그렇다면 기독교적 정의론인가. 그렇다/아니다. 정의로운 삶의 질서를 향한 신앙의 실천 없는 기독교 예배는 “눈물의 골짜기인 이승에 대한 성스러운 가상”으로서의 ‘민중의 아편’(맑스) 주입일 뿐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인 정치경제적 형평론이나 분배론이 아니다. 안병무는 “하늘도 땅도 公이다”라고 선언한다. 私有를 바탕으로 한 모든 삶의 질서는 反신적인 것이라는 선언이다. 그러기에 민중신학은 혁명론이다(김용복은 종됨의 정치체제와 나눔의 경제질서를 내세웠다). 이 관점에서 서구 신학에서 혹은 제3세계 신학에서 ‘기독교와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대화’는 기만적 쟁점에 가깝다. 대화가 필요한 것은 反신적 삶의 질서인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하늘도 땅도 公이다”

민중신학은 고난받는 민중의 ‘중심에서’(‘민중을 중심으로’가 아니다) 신을 예배하기, 그리고 신학하기다. 민중이 해방되는 삶의 질서를 질문하기이며, 바로 그들의 해방을 향해 도래하고 있는 하느님의 통치(나라)를 성찰하기이다. 역사의 불의와 고난은 기독교인의 신앙 실천을 깊이 성찰하게 했고, 그것은 한국 기독교사에 한 분기점을 이룬 1973년 5월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앙선언’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의 확고한 기초는 역사의 주이신 하나님, 메시아 왕국의 포고자이신 예수, 민중 속에서 활발히 살아 움직이고 있는 성령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눌린 자와 약한 자와 가난한 자의 최후의 옹호자임을 믿는다. 또한 하나님은 역사에서 악한 세력을 심판하셨음을 믿는다. 우리는 주 예수가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선포하신 것을 믿는다. 메시아 왕국은 악한 세력을 꺾고 재산 없는 자와 거부당한 자와 짓밟힌 자의 안식처가 될 것을 믿는다. 우리는 성령이 새로운 역사와 우주를 창조하며 또한 각 개인을 부활하고 성화할 것을 믿는다.”
한국 기독교인이 민중에 눈을 떴다. 이 선언은 물론 역사적·종교적 문서다. 신앙인의 눈으로 역사를 읽은 문서다. 뒤집으면 역사의식으로 자신의 신앙을 성찰한 문서다. 이제 신은 인간의 실존적 유한성에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신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억압, 경제적 수탈, 사회·문화적 소외에 의해 고난당하는 인간 민중의 중심에서 말을 건다. 민중의 자기 성찰과 해방운동의 중심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신에 대한 성찰과 증언이 민중신학이다. 신은 도그마크라시(교권지배체제)와 교회 예배, 그리고 교리로 위장되고 독점된 담론을 통해 자신을 믿으라고 계시하는 것이 아니다. ‘금관의 예수’, 부활의 광배를 휘두르고 있는 예수가 ‘가시관을 쓴 예수’,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로 전위된다. 그러나 그것은 전위가 아니라 본래 모습의 회복이다. 민중신학은 고난받는 민중의 중심을 가로지르지 않는 어떤 구원의 길도, 신성한 숲에 이르는 길도 없음을 말한다.
안병무는 민중(종교·정치)운동으로서의 예수 사건의 모태가 바로 로마제국의 식민지 민중인 고대 팔레스타인의 오클로스(민중)였음을 신약성서의 복음서들을 분석해 민중신학의 뿌리를 밝혔다. 기독교의 신은 고대 근동의 도시국가에서 땅없이 유랑하는 사람들, 농노와 노예집단인 하삐루(히브리)의 중심에서, 그들과 더불어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질서를 창조하려 했고, 예수 또한 그 신의 뜻을 역사화하는 길을 걸었다. 로마 군사제국과 팔레스타인 매판세력의 폭력으로 고난당하는 오클로스의 중심에서 그들과 더불어 그들을 통해서 낡은 삶의 질서를 파하고 새로운 삶의 질서(하느님 나라)를 희망했다. 그 희망의 실천이 ‘원시 사랑의 공산주의’(엥겔스·사도행전 2장과 4장)였다. 민중신학은 그 예수운동, 민중사건의 전승 맥을 붙잡고 오늘의 자본주의와 군사독재, 분단의 폭력에 저항하는 민중해방운동의 중심에서 신의 뜻을 읽었다. 오늘 서구의 비판적 지식인의 말을 빌면 민중이란 지상의 신이다.
“모든 시대에 유일하게 국지화할 수 없는 순수한 차이의 ‘공통 이름’(common name)은 가난한 자(빈민)라는 이름이다. 가난한 자는 빈곤하며 배제되고 억압받고 착취당한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 있다! 가난한 자는 삶의 공통분모이며 대중의 토대이다. 가난한 자는 지상의 신이다.”(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제국’)
전통 신학은 시비를 걸었다. 민중이 메시아인가, 신앙의 대상인가. 안병무는 말한다. 오클로스의 중심에서 그들을 통해 신은 새로운 삶의 질서를 창조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중심으로 연대하지 않는 구원의 길은 없다. 그들은 죄가 없는가. 서남동은 “너희들이 말하는 죄의 정체가 무엇인가. 인간의 유한한 실존인가, 아니면 역사적 폭력인가” 말하라고 외친다. 그 민중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안병무는 말한다.
“민중이 역사의 담지자라고 선언했으나 민중에 대한 정의는 끝까지 내리지 않았다. 개념에 대한 정의없이 어떻게 이론을 전개할 수 있느냐 다그침도 있었으나 끝끝내 응하지 않았다. 개념이란 어떤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틀인데, 그것을 앞세우면 개념 싸움 때문에 그것이 말하려는 실체에는 접근도 못하고 마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으며, 설사 그럴듯한 개념이 설정된다고 해도 그 개념이 실체를 박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민중이란 집단체이다. 그것은 산 실체이다. 그러므로 개념화해서는 안 된다. 민중은 관조의 대상일 수 없다. 민중은 구경꾼에게는 언제나 가려져 있다. 민중은 민중사건에 참여할 때에만 비로소 그 실상을 보여 준다.”
안병무는 말한다. 민중사건, 민중해방운동의 중심으로 연대해 보라, 거기에서 우리는 신을 만날 것이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인 시대는 지나갔다고, 시민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시민운동론자들은 민중신학의 폐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민중교회운동 일부 주체들도 ‘생명선교연대’로 이름바꾸기를 감행했다. ‘민중’의 큰 이야기와 ‘시민’의 작은 이야기를 하나의 망으로 짜집는, 연결시키는 긴장, ‘배제하고 통합하는 제3’이 갖는 긴장 또는 변증법적 사고(송두율)가 제안되기도 했다. 이제 우리 시대에 ‘민중’은 없는가. 창조해야 할 새로운 삶의 질서는 없으며,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은 결국 승리한 것이고, 그 승리 주장은 정당한가.
한국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은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을 비롯해 여러 해방신학(흑인해방, 여성해방, 그리고 인도의 달릿, 일본의 부락민, 동남아의 민중불교와의 대화)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신학했다. ‘해방’이라는 주제에서는 민중신학이 한국신학으로서의 독창성을 변별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없지 않다. 다만 분단의 민족현실과 전통 민중문화를 가로지르면서 당대의 정치경제를 ‘계시의 하부구조’(서남동)로 견인해내고 있는 점에서 한국신학으로서의 독창성이 있다. 나아가 한국신학을 모색한 토착화신학이 전통적인 ‘복음’을 축으로 해 우리의 문화·사상 전통에 접근한 것(일종의 오리엔탈리즘)과 달리, 우리의 역사·문화적 민중전통과 당대적 문화·정치·경제적 현실을 축으로 복음을 성찰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탈식민지 담론의 한 갈래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를 굳이 빌어 쓰지 않는다 해도, ‘theos + logos’로서의 ‘신학’이란 개념은 어불성설이다. 신‘의’ 말은 없다. 있는 것은 신에 ‘관한’ 말, 인간의 삶 속에서 신의 힘의 개입을 읽어낸 인간의 말일 뿐이다. 그러기에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노고의 진솔함은, 인간의 말로 붙잡을 수 없는 것이지만(離言), 인간의 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依言) 원효의 和諍적 상상력 속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러기에 신학 담론으로서의 민중신학은 언어·담론의 역사성을 오히려 선택하면서, 민중 현실의 중심에서, 역사의 주체로 자신들을 해방해 나가는 그들의 말-사건을 통해 신학담론을 생산하려는 극히 당파적·계급적인 신학이다. 여기서 민중이 ‘역사 주체’란 말은 역사 변혁을 태동시키고 밀고/끌고 가는, 새로운 삶의 질서를 희망하는 ‘태풍의 눈’으로서의 인간 고난의 가장 구체적인 담지자라는 의미에서다.

廻光反照, 뿌리를 다시 일군 신학

진정한 역사·사회 변혁은 결코 고난받는 민중의 현실 중심을 비켜 갈 수 없으며, 안병무는 이 민중(해방)사건의 역사를 민중사건의 (화산)맥으로 읽었다. 서남동은 민중 고난의 중심에서 신은 자신을 해방의 힘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거기에서 계시의 사회 경제적 하부구조를 읽었다. 그것은 나아가 성령의 세속성·물질성이었다. 현영학은 한국 전통 민중문화 속에서 민중의 자기초월(해방과 구원)의 힘을, 김용복은 민중의 집단 전기를 성찰했다. 문동환은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 담론의 매트릭스인 주기도문을 입에 올리지 말라고 역설했다.
민중신학은 ‘역사적’ 신학이다. 그러나 그 모태인 민중성(당파성·계급성)의 중심에서 신의 해방의 힘을 성찰한다는 점에서 廻光反照, 뿌리를 다시 일군 신학이다. 굳이 카우츠키나 엥겔스의 초대 기독교 연구를 눈여겨보지 않더라도, 기독교의 뿌리와 모태는 민중이다. 이후의 기독교의 역사가 민중의 종교(박해받는 자들의 종교)에서 지배자의 종교(박해하는 자들의 종교)로 전락하고, 2천년 역사 속에서 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지른 범죄의 역사의 두께가 태산이라 하더라도, 기독교는 언제나 고난받는 민중의 현실 중심에서, 바로 그들에 의해, 그들이 희망하는 새로운 삶의 질서에 의해 그 죄를 어느 정도나마 용서받을 수 있었다.
키에르케고르는 무엇보다 신학의 영역에서, 신의 말씀이 신에 대한 학설로, 신의 체험이 신에 대한 학문적 지식으로 뒤바뀐 것을 속임수라며 그 정체를 폭로하고, 예수가 가난했고 멸시받았으며 살해당했다는 것을 ‘구원의 복음’으로 알리는 사람들이 부유하게 살며 존경받고 인기 속에서 산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물음을 던졌다. 오늘도 민중신학은 묻는다. 고난받는 민중 현실의 중심을 벗어난 신학이 과연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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