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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8.] 立春大吉
[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8.] 立春大吉
  •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 승인 2010.03.1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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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한국은 이제 막 새학기가 시작돼서 학기초의 분주함이 가득하겠지만,  1월에 개강을 한 이곳은 이미 학기의 반이 지나버렸다. 학교에 따라서는 벌써 봄방학이 시작된 곳도 있고 켄터키 대학은 3월 15일부터 일주일 동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나 수업을 하는 교수들 모두에게 짧지만 요긴한 봄방학이 시작된다.

미국과 다른 학제에서 공부를 했던 20년을 포함해서 총 30년의 세월을 살다가 유학을 온 지 9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추운 한겨울에도 이렇다 할 겨울 방학 없이 학교를 가야 하는 미국 시스템이 아직도 편하지만은 않다. (물론, 긴 여름 방학이 다가올 때면 미국 시스템이 참 좋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에서도 이미 뉴스를 통해서 알려졌겠지만, 올 겨울은 ‘혹독’하리만큼 추위가 거세었다. 연일 폭설로 도시 기능이 마비됐던 워싱턴이나 보스턴 같은 동부 지역 만큼은 아니었지만, 미국에 와서 내가 겪었던 아홉 번의 겨울 중에서 이 곳 켄터키의 이번 겨울이 가장 추웠다.

켄터키주가 한국과 위도가 비슷한 지역이어서 보통 한국의 날씨랑 그다지 다르지 않은데도, 올해 들어서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영하의 날씨가 계속됐다. 그래서 더욱 며칠 춥다가도 다시 한 며칠은  날이 따뜻해져서 짧게나마 온기를 느끼게 해 주는 한국의 ‘삼한사온’같은 날씨가 무지하게 그립기만 했다.

눈도 제법 와서 초중고등학교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아이들이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학교에 가고 나머지 닷새는 집에는 쉴 정도로 휴교가 잦았다.
그러나, 초중고등학교와는 다르게 대학의 경우는 학교가 완전히 문을 닫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에 아침 9시에 수업이 있는 나는 ‘내 코가 석자’인 경우가 종종 생겼다.

눈이라고는 구경도 잘 못 해보고 살았던 부산 출신이다 보니, 물론 요즘은 조금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눈길 운전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래 전의 일이지만, 켄터기 대학에서 재직 중이시던 한 한국인 교수님이 강의 때문에 학교에 나오셔서 눈으로 덮인 캠퍼스를 걸으시다가 미끄러져 여러 군데 골절상을 입었고 오랫 동안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도 있어서 궂은 날씨에 아침 이른 시간부터 학교로 출근하는 일이 그다지 상쾌하지만은 않았다.  

만약, 여전히 학생이었다면 하루 정도 수업을 빼 먹어도 나 스스로에게 그다지 부끄럽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도, 가르치는 입장으로서는 학교를 안 나갈 수가 없다. 그렇게 이런저런 위험이나 갈등과 싸우면서 막상 학교를 와 보면 출석률이 평소에 비해서 아주 저조한 경우가 다반사이니 이럴 거면 그냥 수업을 안 하는 게 서로 서로에게 낫지 않을까 하는 푸념을 안 할 수가 없게 된다. 한 술 더 떠서 차라리 개학을 한국처럼 봄이 온 뒤에 하는 게 낫지 않냐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겨울이 깊어도 봄은 어김없이 온다더니 이제 제법 봄기운이 완연하다. 또 다시 다가온 학회 원고 마감때문에 봄방학을 여유롭게 즐길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봄이 와도 봄이 오지 않은 것 같다는 春來不似春이 아니라 봄을 맞아 좋은 일만 가득한 立春大吉이라는 고사성어가 맞아 떨어지는, 그런 봄이 내게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교수님들에게도 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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