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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7.] 꼴찌들을 위한 교육
[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7.] 꼴찌들을 위한 교육
  •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 승인 2010.03.02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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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새해가 시작되고, 미국에선 학기가 이미 시작된 지라 여유있게 즐길 시간은 없지만, 밴쿠버에서 열리고 있는 동계 올림픽 열기는 그래도 느끼고 있다. 그런데, 미국 언론과 한국 언론에서 소개되는 소식들을 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언론에서 메달을 집계해서 국가별로 순위를 매기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은데, 순위를 산정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는 전체 메달 수가 아니라 금메달의 숫자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금메달의 숫자가 아니라 금,은,동메달을 모두 합한 숫자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이 글을 적고 있는 날짜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은 금메달 3개로, 금메달이 2개인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보다 앞선 순위로 한국 언론들은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언론에서는 한국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보다 아래 순위로 나오고 있다. 금메달과 은메달 2개를 더한 전체 메달 수가  5개로 전체 메달 수가 7개인 두 나라보다 아래라는 얘기다. 큰 차이는 아니겠지만, 한국에서는 은메달 여러 개보다는 금메달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논리이고 미국의 경우는 최선을 다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메달을 딴 것이니 메달, 그 자체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는 논리인 것 같다. 결국, 이런 차이가 어쩌면 모든 분야에서 '엘리트'만을 인정해 주는 한국의 문화를 보여주는 단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으로 갓 유학을 와서 포토 저널리즘 수업을 듣던 때가 생각난다. 20명 남짓한 수강생들 중에는 이미 현장에서 프로페셔널 사진 기자로 일하다가 석사 과정으로 온 학생들도 있었지만, 아무런 경험도 없고 포토 저널리즘의 기초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도 제법 있었다. 한 강의실에 모여 앉아서 같이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수준차는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수준의 그 학생들이 짧은 한 학기 동안에 과연 얼마 만큼이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담당 교수는 프로페셔널 출신의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수업 내용을 가르치는 와중에 포토 저널리즘이 낯선 학생들도 같이 챙기는 꼼꼼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어느덧, 학기말이 되고 나니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던 아마추어 학생들이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서 나름 세미 프로의 수준에 오르는 것을 봤고, 내심 놀랐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흘러서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수준 차이가 많이 나면 날수록 힘이 드는 걸 느끼게 된다. 하지만, 못하는 학생일수록 더 관심을 가지고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수업 시간 외에도 따로 만나서 내용을 한 번 더 설명해 주기도 한다. 리서치도 해야 하고 다른 할 일도 산더미같은 지라, 그런 과외 시간들이 부담도 되지만, 학기말에 자기가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뤘는가를 가늠해 보고 뿌듯해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나 역시 성취감을 느끼는지라, 그런 시간들을 앞으로도 쉽게 포기하기는 힘들 것 같다.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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