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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조치없이는 지방대 못 살린다”
“혁명적 조치없이는 지방대 못 살린다”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2.04.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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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방대 육성 특별법’ 제정 운동 벌이는 윤덕홍 대구대 총장
윤덕홍 대구대 총장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방대 육성 특별법(안) 마련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이후 각종 토론에 참석 요구가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대 문제와 관련된 토론회가 있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그는 일단 참석하고 본다. 그 만큼 지방대의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윤 총장으로부터 지방대의 현실적 어려움이 무엇인지 얘기를 나눠보았다.

△ 지방대가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학생유출로 인한 어려움이겠지요. 우리대학을 예로 들어보죠. 대구대는 규모로 따지면 전국에서 20위권 안에 드는 큰 대학입니다. 그런데 올해 57명의 학생을 모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성적입니다. 신입생 정원의 1백~2백명을 채우지 못한 대학이 수두룩합니다. 편제정원이 5천명이 안되는 중·소대학에서 1백~2백명의 학생을 모집하지 못한다는 것은 재정상의 엄청난 압박을 의미합니다. 심지어 정원의 절반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들 대학이 겪을 재정난은 학교의 존립기반을 흔드는 수준일 것입니다.”

△ 근래 들어서는 교수들조차 지방대를 등지고 있습니다. 교수들의 이탈로 인한 어려움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우리대학에서도 해마다 7~8명의 교수들이 서울로 자리를 옮깁니다. 문제는 그들이 옮기는 동기가 월급이 많다거나 연구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단지 서울에 있는 대학이기 때문에 옮긴다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연구환경이나 급여수준은 수도권 대학보다 나은 지방대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실 수도권 대학의 교수임용 방식에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우수한 교수를 자체적으로 양성할 생각은 않고 지방대 교수에게 눈을 돌립니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한 교수가 학교생활에 적응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쯤 쏙쏙 뽑아가는 것은 해당 대학에 큰 타격을 줍니다. 노력없이 열매만 따먹는 격입니다.”

△ 지난해 윤 총장님을 비롯한 지방대 총장들이 직접 국회를 찾아 벌인 ‘지방대 육성 특별법 제정’ 토론회는 지방대가 처한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특별법 제정까지 요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방대가 맞고 있는 위기는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구조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정책을 통해 권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습니다. 혁명적 변화 없이는 지방대를 위기에서 구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로써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 것입니다.”

△ 지방대의 위기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큽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지방대 육성보다 사회·문화적 수도권 집중현상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그 지적은 옳습니다. 다만 수도권 집중의 가장 주요한 요인은 바로 교육입니다. 교육부문에 의한 수도권의 흡입력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지방의 위기 또한 복합적입니다. 지방 정치도, 문화도, 경제도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폐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복합적이기 때문에 단번에 해결하기는 힘듭니다. 이 복합적인 문제를 풀어가는 첫 단추는 바로 교육이며, 그중에서도 대학을 살리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재입니다. 지역에서 길러진 인재가 지역에 봉사할 수 있을 때 지방의 경제도, 정치도, 문화도 되살아 날 수 있습니다. 결국 수도권 집중을 깨고, 지역분권을 실현하는 첫 단추가 지방대를 육성하는 것이란 얘기입니다.”

△ 지방대를 육성해야 한다는 데 누구나 동의합니다. 하지만 특별법으로 정해 지원하는 것은 역차별적인 요소가 없지 않다는 견해도 적지 않습니다.
“행정자치부에서 여성채용목표제를 이미 실시 중에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큰 논란은 없습니다. 그 취지에 공감하는 것이겠지요. 지방대 육성 특별법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차별이라고 해도 다 같은 차별이 아닙니다. 이는 상생하기 위한 ‘합리적인’ 차별입니다. 그리고 이 법을 영원히 유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10년 한시법으로 제안했습니다. 10년 정도의 시간이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지방대가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 지방대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점도 없지 않습니다. 특단의 육성책을 요구하기 전에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만.
“물론입니다. 지방대 총장들이 요구하고 있는 ‘지방대 육성 특별법’은 지적하신 내용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문을 닫아야 할 지방대는 문을 닫아야겠지요. 지방대 나름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합니다. 도태돼야 할 대학을 지원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지방에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과 피해를 받는 부분은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지방대의 자구노력을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 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되긴 했지만 아직 이렇다할 진전이 없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정말 지방대 총장들은 할만큼 했습니다. 직접 법안을 만들었고, 지역을 순회하며 법안의 취지를 하나하나 설명했고, 국회의원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작업까지 벌였습니다. 문제는 누구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데 있습니다. 법안은 현재 국회 법제실을 거쳐 교육위원회에 상정돼 있습니다. 하루빨리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아울러 지방대의 요구를 모아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방대 교수들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지방대학은 노력할 만큼 했다고 봅니다. 이제 행정당국과 국회가 성의있는 답변을 해야 할 때입니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약력 : 1947년 대구生. 서울대 사회교육과 졸업. 동경대 사회학 박사. 영남전문대 교수. 대구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대구대 기획처장. 민교협 공동의장. 한국사회과학교육학회장. 2000년 대구대 7대 총장 취임. 현재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 대구·경북지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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