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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줄고 교수는 떠나고 연구기반도 무너져 … 대학 공멸 위기 심각
학생 줄고 교수는 떠나고 연구기반도 무너져 … 대학 공멸 위기 심각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2.04.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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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또 다시 지방대 위기론인가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실을 그대로 솔직히 인정하자. 단순히 지방대 몇 개가 부실해지고, 문 닫는 정도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방대의 몰락은 결국 수도권 대학의 공멸로 이어진다. 어차피 40%의 수도권 대학은 60%의 지방대로부터 적지 않은 영양분을 흡수해 유지·발전되고 있지 않은가. 지방대 위기는 한국사회의 심각한 징후, 곧 지방의 붕괴를 의미한다.
교수신문이 오해의 여지가 있는 ‘지방’이라는 용어를 고수하는 것은, 이 말 속에 이미 오랜 편견과 차별, 중앙중심주의라는 고약한 엘리트주의가 은폐돼 있다는 판단에서다. 모순을 드러내고, 이를 노출하는 한편, 지방대의 활로를 모색하는 성찰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생도 떠나고, 교수도 떠나고, 연구 환경은 갈수록 위축되는 지방대, 과연 출구는 없는가. 이번 호부터 교수신문은 다시 지방대 위기를 새롭게 조망한다.

① 2002 지방대 세 가지 풍경
② 무엇이 위기인가
③ 푸대접의 현실
④ 지방대에 문제는 없는가
④ 대안과 과제

졸업과 입학의 분주함에 묻혀 지나쳐 버리기는 했지만, 지난 2월23일 대학가에는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이날은 각 대학 합격자들의 등록마감일이었다. 등록마감을 몇 시간 앞두고 대학들은 난리법석을 피웠다. 학생결원을 줄이려는 각 대학은 이날 마지막 추가모집 대상자를 발표하고, 학생유치 전쟁에 돌입했다. 이른바 ‘학생쟁탈전’이었다.

사건은 다음 순서로 전개됐다. 서울대가 정원미달을 막기 위해 연세대에 등록을 마친 학생에게 추가합격을 통보하면, 연세대는 다시 건국대 합격생에게 추가합격 사실을 통보한다. 건국대는 또 다른 대학에 등록한 학생에게 손을 내밀고, 그 대학 역시 다른 대학에 합격한 학생에게 눈을 돌린다. 이를 거듭하다 보면 한 명의 학생이 소속을 바꾼 영향은 도미노 현상으로 번져 종국에는 광풍이 된다.

하지만 학생 수는 한정돼 있고, 대학 정원은 넘쳐난다. 결국 어느 대학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날 수도권에서 일어난 학생이동의 여진은 지방으로 고스란히 전가됐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그 강도는 더해 강진으로 바뀌었고, 학생 정원미달 사태가 속출했다. 상대적으로 싼 등록금으로 느긋했던 지방국립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남대는 입시사상 처음으로 추가모집까지 벌였지만, 3백 여명을 모집하지 못했다. 부산대도 6번에 걸쳐 추가모집을 실시했지만 54명이 구멍났다. 그나마 국립대는 나은 편이었다. 중·소규모 지방 사립대에선 입학정원의 50%를 채우지 못하는 곳이 무더기로 속출했다. 이들 대학은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 알려지는 순간 삼류대학으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입학정원 절반 못채우는 대학 속출

2월 말, 지방대는 또 하나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학생들의 서울이동에 이어 교수들도 하나둘씩 서울로 빠져나갔다. 경북의 K대학 김 아무개 교수, 철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학기초만 되면 안절부절못한다. 교수들이 보따리를 싸 하나둘씩 서울소재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학과 교수 5명 중 3명이 서울로 떠났다. 김 교수는 “교과목을 배분하고, 좀더 나은 교육을 위해 머리를 모아야 할 때에 ‘그만두겠다’는 교수들의 통보는 힘을 쭉 빠지게 한다”며 “옮기는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야속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우리신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방대 교수들의 서울이동은 올 들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지난 학기 서울로 자리를 옮긴 지방대 교수는 90여명에 불과했지만, 이번 학기 들어서는 파악된 수만 2백50여명, 파악되지 않은 수까지 감안한다면 3백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로 옮긴 지방대 교수들의 자리는 시간강사로 대체된다. 그렇지만 2~3년씩 학생들과 한솥밭을 먹었던 교수들에 비해 교육효과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교수들의 서울이동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그 피해는 대학원생들에게 더하다. 법학박사 학위를 목표로 대학원에 입학했던 장 아무개 씨(33세)는 얼마 전 학업을 그만두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지도교수가 서울 소재 대학으로 옮겨간 것이 장씨가 학업을 중단하게 된 이유이다. “석사과정을 시작한 지 6개월만에 지도교수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원 과정을 밟게 된 것이 순전히 지도교수 때문이었는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경희 가야대 총장, 그는 수 년째 대학총장들 모임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는다. 교육부장관과의 간담회 시간, 다른 총장들이 주눅들어 있을 때도 용감하게 먼저 운을 뗀다. 수 년째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변함이 없다. 지방대의 어려움에 대한 눈물겨운 호소다. “지방대라도 다 같은 지방대가 아니다. 지방에서도 도시에 위치한 대학은 그래도 형편이 낫다. 우리대학 같이 소규모 대학은 정말 죽을 맛이다. 서울 소재 대학은 물론 전문대에도 학생을 빼앗긴다. 학생들이 편입학을 통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능력있는 교수를 키워놓으면 다른 대학에서 쏙쏙 뽑아간다. 중소 지방대는 잘 나가는 대학의 학생과 교수를 조달하는 창구 내지는 교육징검다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이 발언은 매번 한 대학 총장의 푸념 정도로 취급받는다.

지방대가 겪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좀 더 근원적이다. 학생과 교수들이 서울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지방대의 연구기반은 이미 여러 곳에서 구멍이 나고 있다. IT·BT 등 근래 호황을 누리고 있는 첨단학문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가 이들 분야에 수 조원의 예산을 퍼붓고 있지만, 지방대 교수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충남의 H대학 박 아무개 교수는 최근 몇 년째 연구다운 연구를 진행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막상 함께 할 수 있는 석·박사인력이 부족해서다. 그의 전공은 요즈음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IT계열의 인공지능 분야. 그렇다 해도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은 ‘가물에 콩나듯’ 한다. 그와 함께하고 있는 연구인력은 박사과정생 1명, 석사과정생 2명이 전부다. 이 인원으로는 연구실(LAB) 실험장비를 돌보기에도 벅차다. 그는 “심지어 학과 연구조교조차 부족해 학부의 실험실습 수업을 진행하기도 어렵다. 실습장비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과목은 조교를 다른 학과로부터 빌려와야 한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나마 자리를 지키던 석·박사 인력들은 두뇌한국(BK)21사업이 시작된 이후 서울로 떠나버렸다. 떠나는 제자들을 박 교수는 붙잡지 않았다. 자신의 잇속을 챙기자면 그들이 함께 해 주었으면 했지만, 그들의 장래를 생각할 때는 막을 수 없었다. 지방대란 딱지가 학자의 삶을 살아갈 그들에게는 또 다른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울대와 ‘서울상대’

지방대의 스산한 풍경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학기중에도 반복된다. 편입학으로 인한 학생유출, 반복되는 국고의 편중지원, 졸업생들의 취업난, 기업의 기부금 지원 등이 그것이다. 사실 지방대 위기 담론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 십 년째 반복되고 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지방대의 위기론이 커질수록 어려움은 더 가중되는 형국이다. 문제는 지금의 위기를 과거의 위기와 똑같이 볼 수 있는가이다. 이에 대한 지방대 교수들의 대답은 명확히 “아니올시다”이다. 이제환 부산대 교수(문헌정보학과)는 지방대의 위기는 과거와 달리 더 복합적이고 구조적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지방대의 어려움을 재정난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구조적 모순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대 위기론에도 무시 못할 지방대에 대한 차별이 깔려있다. 그 속에서 지방대 학생과 교수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허덕이고 있다.”

언제부턴가 학생들 사이에는 두 가지 종류의 대학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대’와 ‘서울상대’이다. 서울대는 서울에 있는 대학이고, 서울상대는 ‘서울에서 상당히 먼 대학’이다. 농담조의 이 구분은 지방대의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언제부턴가 대학의 우열은 지리적 위치가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저 깊은 인식의 바닥에서부터.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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