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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6] 개구리 올챙이 시절
[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6] 개구리 올챙이 시절
  •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 승인 2009.12.29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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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학기가 끝났다. 엊그제 학생들 마지막 성적을 입력했으니 사실상 올 한 해의 공식 업무는 끝난 셈이다. 물론 방학이라기 보다는 약간 긴 연휴랄까, 연말 연시가 지나고 1월 중순이면 다시 개강이니 편히 쉴 수 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맘 한 구석에 약간의 여유가 생김은 감출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2년 전 이 맘 때에 어쩌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그즈음에 지금 몸 담고 있는 켄터키 대학에서 임용 오퍼를 받았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멀쩡한 직장을 때려 치우고 모두가 말리던 유학길을 오른 후부터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과연 나는 박사 학위를 마치고 나면 교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됐으니 글자 그대로 '고진감래'라 할 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대하던 교수의 길이 그다지 '달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위를 받고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대하고 연구실에 앉아서 리서치를 한다고 골머리를 싸매고 있으니, 앞으로 갈 길이 멀기만 하다는 걸 나날이 실감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왠지 학생 시절이 그리워지는 일이 잦아진다. 학생일 때는 '교수님'들이 이런 생각이 든다고 말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그저 뭔가를 이룬 자들의 엄살이겠거니 생각했었다. 

누군가 박사 학위를 '아직도 배움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최소한 혼자서 자기 분야의 연구를 수행할 만하다'는 일종의 자격증이라 했는데, 나는 혼자서 하는 연구가 아직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혼자 리서치를 하다가 뭔가 벽에 부딪히면 조교 사무실 바로 옆의 지도교수 연구실로 쫓아가서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고 조언을 듣는다. 그러다 보면, 뭔가 막힌 부분이 뚫리던 학생 시절이 자꾸 생각난다.

물론 요즘도 지도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리서치도 같이 하지만, 예전 학생 시절만큼 지식이 모자람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편히 질문들을 하기가 어려운 탓일 게다.
교수가 돼 명목상의 연봉은 학생 때 조교하면서 받던 것에 비하면 많이 늘어난 셈이지만, 미국 대학 안에서는 박봉이라 할 만한 인문 사회과학 계열이라서 그런지 막상 월급을 받아도 의료보험이니 세금, 연금이니 하는 것들을 다 떼어버리고 나면 여전히 기대하던 만큼의 경제적 여유는 생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오래된 학교 아파트에 살면서 쥐꼬리만한 조교 월급으로 딸아이가 사달라던 선물 하나 못 사주었지만 '아빠가 교수되면 사 줄게'라고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교수들에게도 동료들은 있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격의없이 이런 저런 얘기들을 편히 할 수 있었던 친구이자 선의의 경쟁자들이었던 동료 학생들이 생각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저녁마다 같이 공부하던 동기나 후배들과 온라인으로 수다를 떨게 되는 것 같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생각 못 한다고 했건만, 나는 가당찮게도 그 올챙이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이렇게 또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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