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便法으로 일 추진할 때 꾸짖는 말
便法으로 일 추진할 때 꾸짖는 말
  •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09.12.19 0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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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올해의 사자성어 풀이_ 방기곡경은?

곁 방, 갈림길 기, 굽이 곡, 지름길 경.

샛길과 굽은 길로서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큰 길이 아니라는 뜻이다. 방기곡경은 일을 바른 길을 좇아서 정당하고 순탄하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함을 비유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盤溪曲徑(반계곡경)이라는 말도 같은 뜻으로 함께 쓰이고, 또 旁岐(방기)와 曲逕(곡경)의 두 단어로 떨어져서 비슷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이 말은 주로 한국에서 오래전부터 사자성어로 사용돼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올바른 길을 가지 않고 편법을 동원해 사적이고 부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행태를 비유했다. 대표적으로 조선 중기의 유학자 율곡 이이가 여러 차례 사용하여 그러한 행태를 비판했다.

왕도정치의 이상을 설파한 저서 『東湖問答』(동호문답)에서 율곡은 제왕의 정치행위를 조목조목 설명할 때 여덟 번째로 군자와 소인을 가려내는 방법을 설명하였는데 그때 이 성어를 구사했다. 제왕이 사리사욕을 채우고 도학을 싫어하거나, 직언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구태를 묵수하며 고식적으로 지내거나, 외척과 측근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망령되게 기도해 복을 구하려 한다면, 소인배들이 그 틈을 타서 갖가지 ‘방기곡경’의 행태를 자행한다고 지적하고, 그러한 방기곡경의 주목적은 제왕의 귀를 틀어막아 제 이익을 도모하는 데 있다고 했다.

당시는 조정이 동인과 서인으로 극심하게 대립할 때였는데 율곡은 사림의 분열을 막기 위해 송강 정철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서 “公論이 허락하지 않을 때에는 방기곡경의 길을 찾아 억지로 들어가려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사대부들이 옳지 못한 편법을 동원해 과거에 합격하려 하거나 부귀를 구하고 일을 추진하려 할 때 그러한 행위를 비판하는 말로 흔히 사용해왔다.

올해 한국사회를 돌아볼 때 이 사자성어는 주로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비판적 시각과 의구심을 적절하게 표현한 어휘로 선택됐다고 볼 수 있다.

일부 정파와 세력의 이익을 얻기 위해 타협과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편법과 독선이 자행됐다는 점에서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을 가릴 것 없이 이러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정부 여당의 돌연한 행정수도 세종시법의 수정시도, 대운하사업의 4대강 정비사업 전환 의혹, 미디어법의 편법 처리와 같은 문제는 올해 한국 정치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첨예한 갈등을 나은 이슈들이다. 그 정책의 수립과 추진 과정을 지켜보며 지식인들은 한국이 추구해야 할 정당하고 큰 길을 놔두고 샛길로 빠지고, 굽은 길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정치가 올바르고 큰 길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소망까지 반영한 사자성어로 이해할 수 있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연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시화사 연구』, 『고전 산문 산책』 등이 있다. 현재 조선후기 한문학이 온축해온 감성과 사유의 세계를 우리 시대의 보편적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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