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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5] 냉정한 비판 그러나 후한 점수
[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5] 냉정한 비판 그러나 후한 점수
  •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 승인 2009.12.1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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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여전한 신참내기 교수 입장에서야 영어로 미국인들을 가르친다는 게 늘 부담스럽고, 학생들에게 강의 평가를 받을 즈음이면 며칠동안 소화도 안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세번째 학기를 거의 다 보낸 지금에서는 가르치는 일이 처음만큼 힘들지는 않다.

다만, 여전히 어렵기만한 건 학생들의 과제 등을 평가할 때이다. 학생들에게 중간 고사와 기말 고사를 대신해서 보게 하는 '퀴즈'의 경우에 객관식 문제나 단답형의 문제들을 내니 맞고 틀림이 분명한 편이어서 큰 부담이 없지만, 짧은 에세이식의 문제는 채점을 할 때마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정답은 아니지만 근접한 답을 적어낸 경우는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 지 또, 답이 미진해서 온전한 정답으로는 볼 수 없지만 부분 점수라도 주어야 할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점수가 적절한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시험지를 돌려 받은 학생들이 각자 점수에 수긍을 할 지도 걱정이 된다.
그래서인지 시험지를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나서 혹시나 채점에 이의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할 때마다 겨우 수초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지만, 누군가 손을 번쩍 들어서 점수가 왜 이렇냐고 따지고 들까봐 괜시리 긴장이 되곤 한다.

시험이나 퀴즈의 경우는 그래도 좀 나은데, 아예 정답이란 게 존재하기 힘든 과제물들의 채점은 더욱 더 힘이 든다. 예를 들어, 포토저널리즘 과목의 경우 학생들이 주어진 주제에 맞게 스스로 소재를 찾고 취재를 해서 사진과 캡션 등을 함께 제출해야 하는데, 객관적인 평가를 하려고 무척 애를 쓰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지라, 채점 (Grading)이라기보다는 비평(Critique)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과제물마다 일일이 학생들의 작업에 대한 느낌과 함께 어떤 점은 잘됐고 어떤 부분은 미진한지 상세하게 적어서 돌려 주려고 한다.

다양한 형태의 에세이식 과제로 가득한 대학원 과목의 경우는 한두 주 만에 읽어야 할 과제물들이 수 십 페이지씩 쌓이기 때문에 읽어 보는 것 자체도 만만 찮은데다가 나름대로 내공이 쌓인 박사 과정생들을 섣불리 평을 했다가는 '괜히 헛점을 드러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역시나 부담스럽다.

때로는 그냥 모든 학생들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하면 학생들도 좋아하고 나도 편하지 않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도 해 본다. 실제 미국은 아직도 절대 평가라서 학생 모두에게 A를 주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학생들의 모자란 부분에 대한 철저한 지적과 냉정한 비평이 그들의 발전을 위해서 나에게 주어진 의무란 것도 잘 알기 때문에 최대한 성실하게 제대로 된 비평을 하려고 애쓸 뿐이다. 물론, 맘이 약한 나는 냉정한 비판과는 별개로 점수는 대체로 후하게 주는 편임을 고백해야겠다.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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