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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4] 나는 몽상가인가?
[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4] 나는 몽상가인가?
  •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 승인 2009.11.30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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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에서 여러 차례 밝힌 적이 있지만, 나는 사진기자였다. 사진기라곤 제대로 한 번 만져보지 못했고 학부 시절 전공도 사진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법학이었지만, 기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발을 디딘 학보사 구석 암실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던 선배가 사진을 인화하는 것을 본 후, 나는 사진기자란 직업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사실,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를 때도 석사 과정 동안 포토 저널리즘은 물론이고 저널리즘 전반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자 생각했을 뿐 다시 사진 기자로 돌아가리라는 마음에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실제 다니던 신문사도 휴직을 한 상태로 유학을 나왔으니 학위 취득 후에는 당연히 돌아갔어야 했다.

세상 일은 장담할 수가 없다더니, 석사 학위를 위해서 저널리즘을 이론적으로 공부하고 현장에서 일을 할 때 가졌던 많은 질문들을 답할 수 있는 리서치도 하면서 슬슬 '다른 생각'을 품게 됐다. 결국, 천직임을 추호도 의심없이 믿었던 사진 기자 일을 스스로 그만두고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박사 학위 과정 동안, 매스컴 이론에 대한 과목들과 여러 가지 연구 방법론에 관한 수업들을 듣고 조교 노릇도 해가면서 부지런히 리서치를 해서 학회에도 가고 저널에도 기고를 하며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보니 딸아이 사진 좀 찍으라는 아내의 성화가 아니면 카메라를 잡을 일도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나중에 교수가 되고 나면, 그 옛날의 나처럼 사진 기자를 꿈꾸는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 기회가 있으리라  믿었었다.

결국 교수가 됐고, 학교에서도 포토 저널리즘 과목을 가르치도록 배려해왔다. 매학기 기초 포토 저널리즘 과목을 가르쳤고, 나머지도 고급 포토 저널리즘이거나 대학원생들을 위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이론 강의이다. 꿈꾸던 대로 포토 저널리즘 수업을 가르치건만 워낙에 연구 업적에 대한 부담이 크다 보니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바라던 만큼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도 항상 리서치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사진 기자를 꿈꾸는 학생들과 좀 더 개인적인 교류를 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 학기에 기초 포토 저널리즘 대신 다른 과목을 가르칠 수 있냐는 제의가 왔다. 웹 디자인을 가르치는 과목에 학생들이 많이 몰려서 분반을 하나 더 개설해야 하는데 그 과목을 맡으라는 얘기다. 세부 전공 분야를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및 멀티 미디어라고 스스로 내세우고 있으니 웹 디자인도 당연히 나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이고 또, 학과에서 사정을 하니 내 입장만 내세울 수도 없어서 결국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웹 디자인 과목 외의 나머지 하나는 여전히 고급 포토 저널리즘이고 이번에 취소되는 기초 과목은 다음 가을 학기에 다시 열게 될 것이다. 티칭 포토 폴리오를 다양화한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새로운 과목을 가르치게 된 것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잘 안다. 하지만, 내가 현실 감각이 부족한 몽상가라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맘 한 구석이 이상하게 허전하다.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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