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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일본 K교수의 고백
[딸깍발이] 일본 K교수의 고백
  • 최재목 편집기획위원 / 영남대·철학
  • 승인 2009.11.2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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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편집기획위원 / 영남대·철학
일본 출장을 갔다가 김해공항에 내리기만 하면 서글프다. 귀국 수속을 밟고 나오는 마지막 문 위에 걸린 ‘입국 출구’란 문구는 늘 헷갈린다. 잘못 읽으면 入口이고 잘 읽으면 出口다. 국제공항은 우리나라 사람만 드나드는 곳이 아니니 그냥 ‘出口’라 써도 될 것을. 그리고 무거운 짐을 끌고 버스나 택시에 옮겨 귀가할 때까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수수방관하는 한결같은 운전사들의 폼. 아, 이런 나라에 외국인이 찾아온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대학이라고 뭣 하나 다를 게 없다. 권위만을 내세우는 교직원들. 표지판도 행정서비스도 엉성한 곳에 ‘自遠方來’하는 학생들이 있으니 ‘亦樂’할 따름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이메일 한통이 왔다. 일본 N대학에 오래 근무하다 1년간의 안식년을 얻어 가족을 일본에 둔 채 홀로 미국의 유명대학에 가 있는 지인K씨로부터였다. 그는 자신의 장래에 대해 답답한 심정을 고백하고 조언을 구하려 한다. K씨는 1년의 안식년이 짧을 것 같아 1년을 더 휴직해 2년간 미국에 체재할 계획이란다. 그런데 그 내막을 들어보니 이유는 다른 데있었다. 근무하는 대학의 경영 악화로 교수 수를 줄이는 상황이고, 장래가 불투명해 자진해 미국에 와 있긴 하지만 그 1년간 임금을 절반 삭감하는 조건이란다. 심지어 해외에 나간 김에 아예 다른 데 자리를 잡아 돌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눈치란다. 안정된 다른 일자리를 찾기 위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K씨에게 어떤 조언을 해야 할 지 고민이다. 한참 답장을 미루고 있는 나는 우리 대학의 현실과 장래를 돌이켜 본다.

    최근 신종 플루 때문에 학과나 단과대학 별로 단기간 휴강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내심 덩달아 휴강을 하고 쉬고 싶어 하는 부류도 있었겠지만, 정작 휴강하는 교수의 속내는 쉬고 있는데도 맘이 썩 편치 않단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강의가 갑자기 중단된 것에 묵념하며, 우리 미래의 자화상이 슬쩍 휴강이란 거울에 비쳐든 걸 直觀한다.

    이제 대학의 연구도 행정도 경영도 양이 아니다. 질적인 성장과 변화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인한 초중등 폐교 수의 증가는 결국 사립대학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고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강요해댄다. 최근 교과부는 사립대통폐합에 적용되는 새 통폐합 특례 기준을 골자로 한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안을 지난 12일 입법예고 한 바 있다. 사립대 통폐합을 유도하기 위해 내년부터 교원확보율 등 사립대 통폐합 승인 기준이 완화된다는 것이다. 대학 진학자 부족사태는, 한편으론 우리 사회 全人口의 고학력화라는 밝은 전망을, 다른 한편으론 대학의 양적 성장을 억제하고 질적인 전환을 독려해 ‘재활’기회를 가져다준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사실 대학의 질적인 전환은 校內, 校間 동시적으로 진행돼야하나 교내의 자발적 움직임이 우선이다. 최근 나는 오세정 교수(서울대·물리학)가 쓴 ‘학과 벽 허물어야 세계 일류대학 된다’는 어느 時評에 동감한 바 있다. 외국 선진대학에서는 교수를 2개 이상의 학과에 겸직 발령, 학제 간 연구소에 소속시키는 정책으로 ‘대부분 교수가 다수 연구소·학과에 소속되고, 학생도 자유롭게 전공을 넘나들며 학제간 연구를 수행한다’는 내용이다. 오 교수는 ‘우리 대학들은 대학교수가 한 학과에만 소속돼 여러 과에 겸임교수로 근무하며 다양한 분야의 학제 간 교육·연구를 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고’ 교수들 스스로 ‘자기 학문 분야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부족’하고 ‘학과 간 장벽이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런 ‘폐쇄성’은 ‘자기 영역 기득권 지키기’나 ‘지식의 파이를 키우기보다 나누기’에 집요한 관심을 보이게 한다는 것. 학생들은 교수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서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려는 도전 정신·모험정신’‘경계를 뛰어넘는 지적인 용기’를 잃어버리고 있음을 오 교수는 우려한다.

    그렇다. 대학의 새로운 생존 전망이 꼭 대학의 ‘통폐합’에만 있는 것이 아닐 터다. 우선 각 교내의 獨房化된 지식 폐쇄구역, 그 독선과 아집의 철조망부터 걷어치울 생각을 해야 한다.

최재목 편집기획위원 / 영남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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