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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3] 논문 마감 벼락치기도 불치병?
[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3] 논문 마감 벼락치기도 불치병?
  •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 승인 2009.11.1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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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닐 때 시험이든지 숙제든지 항상 날짜가 코 앞에 닥쳐서야 겨우 겨우 마무리를 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한바탕 ‘벼락치기’의 곤욕을 치루고 나면 앞으로는 미리미리 준비하리라 다짐을 했지만 다음 번에도 또 ‘벼락치기’를 하는 자신을 늘 발견하곤 했다. 


그러던 버릇이 교수가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니 큰 일이다. 얼마 전, 언론학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국제 언론 학회(International Communication Association)의 원고 제출 마감일이 있었다. 거의 매년 논문을 제출하고 발표도 했으니, 이번에도 진작에 새로운 리서치 준비를 해서 보내 보자고 맘을 먹고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서울에서 열린 적이 있었던 이 학회가 내년 6월에는 싱가폴에서 열린다니, 학회 참석차 싱가폴 가는 길에 여행 계획만 잘 짠다면 유학길 오른 이래로 8년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돌아가 보지 못했던 한국을 들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더욱더 준비에 만전을 기하리라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그런 결연한 각오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벼락치기 버릇은 쉬이 고쳐지지가 않으니 마감인 11월 초가 다 돼 가도록 속만 타들어 갈 뿐 리서치 진도는 영 시원치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마감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을 때, 늘 11월 1일이었던 마감일이 올해부터는 11월 6일로 바뀌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고 그 며칠간의 말미를 잘 이용해서 리서치의 완성도를 높이고 ‘벼락치기’도 피해보자고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건만, 결국, 마감날까지 금요일임에도 학교에 남아서 저녁도 건너뛴 채 막바지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요사이는 온라인으로 원고 제출이 가능하니 몇 년 전처럼 급하게 출력한 원고를 들고서는 우체국으로 허겁지겁 뛰어가지는 않았으니, 그것만이라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듯하다.


주변에서 각자 원고 준비를 하던 동료 교수들도 다들 마지막날 밤 늦게서야 원고를 보냈다니 ‘벼락치기’가 꼭 나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또, 눈 앞에 마감이 닥쳐야지만 집중도가 높아지니 벼락치기 하는 것이 꼭 나쁜 것 만은 아니지 않냐고 애써 합리화해 보곤 한다.


하지만, 동네 길마다 늘어선 형형색색 물든 단풍 나무들을 보면서 동네 근처 산에 단풍이라도 한 번 보러 갔으면 하는 아내와 딸의 소박한 바람을 올해도 실현시켜 주지 못하고 넘어간 셈이다. 미국 안에서도 단풍이 좋기로 알려진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이 불과 두세 시간만 운전해서 가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가장으로서 참 면목없다.


그렇게 다시 한바탕 곤욕을 치루고 나니 이제부터는 정말 벼락치기 안하리라 또 한 번 더 다짐을 해본다. 그런데, 당장 이 칼럼의 원고도 당초 정해진 마감 날짜를 살짝 넘긴 채 이렇게 급하게 적고 있으니 나의 벼락치기 버릇 고치기는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목표일 지도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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