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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새만금에 가다
[현장취재] 새만금에 가다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4.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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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06 10:42:04

“노령산맥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부안에 이르러, 서해 가운데로 쑥 들어간다. 서쪽과 남쪽, 북쪽은 모두 큰 바다다. 산 안에는 많은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산마루, 평평한 땅이나 비스듬한 벼랑을 막론하고 모두 큰 소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나서 햇빛을 가리고 있다. 골짜기 바깥은 모두 소금 굽고 고기 잡는 사람의 집들이지만, 산중에는 좋고 기름진 밭들이 많다. 주민들이 산에 올라 나무를 하고, 산에서 내려오면 고기잡이와 소금 굽는 것을 업으로 하여, 땔나무와 조개 따위는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는 대목이다. 찬거리 걱정 없고, 땔나무와 조개 따위는 돈주고 사지 않아도 되는 곳. 옛부터 산과 들과 바다와 갯벌이 골고루 축복을 내리던 전라도 부안땅이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광기의 현장으로 간다

첫째날, 새만금으로 가는 여정에는 새만금 생명학회 회장인 고철환 서울대 교수, 이병혁 서울시립대 교수, 김재묵 충남대 교수와 고려대에서 ‘환경사회학’ 강의를 듣는 학생 30여명이 함께 했다. 부안으로 달리는 관광버스 안, 저마다의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한 학생은 이런 말을 던졌다. “중국의 만리장성 같은 거대한 건축물들을 보면, ‘광기’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 무모한 광기를 멈출 수 있을까요”
부안에 도착해 제일 먼저 만난 곳은 새만금 전시관. 홍보관은 온통 장미빛 환상으로 가득 차있었다. 농지, 첨단 산업단지, 관광단지까지 지상에 좋은 곳이란 죄 새만금에 옮겨놓은 듯한 구상도가 버젓이 걸려있다. 그러나 애초 전북 도민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던 첨단 산업단지는 물 건너간 지 오래고, 남은 건 달랑 농지뿐이다. 작년에도 남은 쌀을 처리 못해 끙끙 앓던 정부가 새만금 강행 이유로 내건 것이 식량부족이었다니, 누가 믿을 것인가.

전시관을 나와 우리는 광기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방조제로 향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새만금 방조제의 길이는 33.479km, 지금까지 20km를 막았다. 끝간 데 없이 이어진 방조제와, 기중기들이 이뤄내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탄식과 분노의 뇌까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조제는 바다 가운데를 떡 하니 가로막고, 사채업자처럼 버티고 누웠다.

갯벌색 밤이 이윽한데, 짐을 풀고 자리한 부안 원광대 수련원에 귀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새만금 주민들이다. 노곤한 갯일과 농사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어야 할 이들이 밤 열시에 득달같이 달려온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새만금을 보겠다고 찾아온 학생들이 고마운 것이다. 갯벌을 기는 칠게라도 붙잡고 그 답답한 속을 털어놓고 싶은 이들이 아니던가.

김봉수씨는 1963년 계화도가 간척될 때 자기 손으로 돌덩이를 날랐다. 논 몇 마지기씩 갖게 해준다기에 신이 나서 직접 바다에 돌덩이를 집어던졌다. 그렇게 바다를 메우고 났는데 ‘이상하게’ 먹고살기가 팍팍해졌다. 손에 익지 않은 농사일은 빚만 남고,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취직을 했다. 발전소에서 두어 달을 버티다 갯냄새를 도저히 못잊어 고향에 돌아온 그는, 계화도 간척 1세대였다가 지금은 새만금 간척 반대 투사가 됐다. 계화리 청년회 일을 보고 있는 고은식씨는 나고 자라기까지 한 번도 계화도를 떠나 본 적 없는 토박이다. “어민들에게는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개념이 없습니다. 돈의 개념이 뭍사람들하고는 달라요. 당장 오늘 먹을 끼니가 없어도 우리는 걱정 안해요. 바구니 하나 들고 갯벌에 나가면 오늘 먹을거리가 생기니까요. 우리들한테는 갯벌이 논이고 갯벌이 은행이니까요.”

보릿고개 기억 없고, 배곯아본 기억 없고, 급한 돈에 발 동동거린 기억 없던 새만금 갯벌이다. 사시사철 나락 열린 황금논이고, 돈이 마르지 않는 은행이었던 갯벌이 어떻게 변했을까. 3, 4개월 동안 3천 만원 넘는 돈을 벌어주었던 실뱀장어 씨가 마른 지는 이미 오래이다.

“왜 우리가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보상금이랍시고 그 돈 몇 푼에 눈이 멀어 왜 갯벌 막는 일을 막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뿐입니다. 나눠 쓰고 양보하고도 넉넉했던 어민공동체가 완전히 박살났습니다. 새만금이 막은 것은 갯벌이 아니라, 어민들 삶입니다.”

방조제가 막혀 실뱀장어, 백합, 바지락들이 알 낳으러 오는 길을 잃었다. 알을 낳지 않으니 줄어든다. 그러나, 바다를 생계로 살아가는 어민들의 수는 똑같다. 내가 먼저, 내가 하나라도 더 걷어올리기 위해서, 눈이 벌개져서 남의 그물을 끊고 다니는 현실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훤히 그려지는 절망적인 그림이다.

새만금을 막아 생기는 땅덩이는 1억 2천만평, 여의도 만한 땅덩이 1백 40개다. 그러나, 한살이를 다해도 여의도에 가볼 일 없는 어민들에게 여의도 운운하는 것부터가 이미 폭력이다. 철저하게 서울 집중적인 이 사고방식. 부안 주민들에게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죽은 땅보다 호미질 한 번에 갯생명들 줄줄이 딸려나오는 갯흙 한줌이 더 귀하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제 깜냥으로 귀하고 비싼 것을 가늠하는 천박함이 애초에 새만금을 죽이는 머리를 서슴없이 굴리게 한 것이다.

둘째날, 드디어 갯벌이다. 물도 아니고 뭍도 아닌 갯벌의 생경한 풍경 앞에 처음 선 사람들은 적잖이 놀라고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은 너무도 낯설고, 낯선 것 앞에서 절로 겸손해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수평선, 아니 지평선이 가뭇없을 정도로 물 빠진 갯벌은 넓다. 하나 둘 바지를 걷어올리고 갯벌로 들어섰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린다. 땅과 오랫동안 떨어져서 야생을 잃어버린 발바닥에 힘을 실어 걸어도걸어도 갯벌은 끝이 없다.

그때 갯벌에서 만난 생명붙이들은 누구누구였을까. 길어서 길게, 콩알만해서 콩게, 칠칠해서 칠게들이 갯벌을 휘젓고 다녔다. 산 것보다는 껍질로 많이 만났지만 동죽과 맛조개, 백합과 가무락들이 있었다. 비틀이 고둥과 삼엽충을 닮은 갯지렁이, 맑은 웅덩이를 제집 삼아 헤엄치는 망둥이 새끼들도 갯벌에서 마주친 생명들이다. 마주친 이들이 그 정도일 뿐, 갯벌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지 우리로서는 짐작도 못할 노릇이었다.

갯벌에서 만난 눈물과 한숨의 백합죽

서른 명이 넘은 탐사팀은 한 무더기씩 무리 지어 한 시간을 꼬박 갯벌을 걸었다. 걷다가 지친 학생들이 “도대체 바다는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렇게 네 시간을 걸어야 바다를 만난다고 했다. 생각해보시라, 네 시간 걸음의 그 너른 갯벌을 막아보겠다고 덤비는 그 무모한 용기를. 상상을 뛰어넘도록 어리석은 그 발상을.

그렇게 뻘밭을 걷고 나오니 마침 끼니때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부안 주민들이 들통 2개에 가득 끓여온 백합죽이었다. 주민들이 백합에 품고 있는 사랑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해주는 고마운 존재 이상이다. 껍질 둘레가 1백mm라서 백합이라고도 하고, 껍질에 백가지 무늬와 색을 띠고 있다고 해서 백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도 하지만, 주민들은 백합을 ‘아름다운 조개’로 부른다. 백합은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 가운데 80%가 새만금에서 난다. 어릴 적에는 보릿고개를 모르게 해준 양식이 되고, 어른이 돼서는 아이들 학비가 되고, 늙어서는 손주들 용돈이 되어주며 평생을 함께 한 백합은 부안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식구나 다름없다. ‘개펄 반, 조개 반’이던 시절, 계화도에서만 하루 15톤의 백합이 나왔다. 그러니 갯벌이 보물창고가 아니고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그 천금같은 백합이 방조제 건설 이후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예전의 30% 밖에 나지 않는다.

오직 백합만을 바라보고 있는 주민들이 끓여온 백합죽. 서른 명이 두 그릇씩 먹어도 넉넉히 끓인 그 아까운 백합죽에 담긴 것은 다름아닌 주민들의 한숨과 눈물, 바람과 염원일 것이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 처음이라며 입맛을 다시는 학생들은 뒤에 쌀쌀한 갯바람을 맞으며 갯가에 철퍼덕 주저앉아 먹던 백합죽의 맛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방조제 공사가 모두 끝나고 갯벌이 완전히 막힌 훗날, 그들은 그렇게 말할 것인가. 새만금 갯벌이 완전히 죽기 전에, 그 갯벌에서 마지막 백합죽을 먹어보았노라고.

‘公有水面을 매립하여 효율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공공이익을 증진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간척사업이 증진하는 공공이익은 어떤 것이고, 이바지하겠다는 국민경제의 실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 “특히 한국은 간만의 차가 심한 서남해안 일대에 천연적으로 간석지가 발달되어 있어 간척사업을 이룩하는 데 천혜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언제쯤이면, 이 철저하게 기능적인 백과사전의 문구를 바꿀 수 있을까. 생각의 뿌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아직도 너무 많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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