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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명의 학자들이 ‘왜’,‘어디로’를 물었다
14명의 학자들이 ‘왜’,‘어디로’를 물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9.11.16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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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멋진 신세계와 판도라의 상자』(문학과지성사, 2009)

 

 

미국 코넬대에서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송기원 연세대 교수(생화학과)는 ‘연세 과학기술과 사회 연구포럼’(이하 포럼) 대표다. 그가 속한 포럼에서 내놓은 책 『멋진 신세계와 판도라의 상자』가 흥미롭게 읽힌다. 솔직해서다.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고민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생생하다는 것은 이들의 자의식이 선명하게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송기원 교수의 ‘머리말’ 일부를 보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대학 교육을 받으며 나는 ‘과학은 무엇이고, 왜 과학을 공부하는가’에 대한 대답에 항상 목말라 했던 듯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과학자가 되기 위한 교육이 도리어 과학을 세상과 격리시키고 있다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십여년이 지나 내가 대학의 선생이 된 후에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대학이 지식의 창출과 학문적 성찰이라는 대학 본연의 역할 대신 ‘세계 100대 대학’이니 ‘교육 인증’이니 하는 가시적인 경쟁의 장이 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제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왜’ 또는 ‘어디로’ 등의 근본적인 질문은 설 자리가 없어 졌고, 지식의 창출은 수치로서 환산되는 목표만이 의미를 지니게 됐다.”

이 책은 포럼에 참여하는 14명의 연세대 교수들이 함께 쓰고 엮었다. 이학(강호정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사학(김도형 사학과), 사회학(김왕배 사회학과), 미생물학(김응빈 생물학과), 광고학(김희진 언론홍보영상학부), 경제학(노정녀 경제학과), 환경공학(박준홍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엔지니어링매지니먼트(박희준 정보산업공학과), 철학(방연상 연합신학대학원),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송기원 생화학과), 정책학(이삼열 행정학과), 경영학(이정우 정보대학원), 세라믹공학(조용수 신소재공학과), 인류학(조한혜정 문화인류학과) 분야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책의 구성은 제1부 과학기술과 사회, 제2부 과학 기술을 보는 논리, 제3부 과학 기술과 윤리로 했다. 사실 이런 구성은 눈에 익은 진부한 편성이랄 수 있다. 그러나 질문의 각도를 어떻게 취하냐에 따라 ‘독자’의 시선 확보가 결정된다. 구체적이고,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게 되는 의문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과학기술이 뒤바꾼 인류 역사, 정부가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이유, 과학 기술의 발전과 시장 선택 등과 같은 질문은 살을 붙이면서 좀 더 무거운 이슈로 옮겨간다. 기후 변화, DNA, 정보기술, 먹거리와 환경, 태양과 산소가 사라진 세상, 지식 경영 등과 같은 최신의 토픽이 뒤따른다. 필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윤리’와 ‘소통’의 문제까지 고민하게 한다.

포럼은 2007년 여름 시작됐다. 다양한 전공 교수들이 한데 모여 STS 연구포럼에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 정책, 윤리, 경제 문제를 고민하며 공부했다. 여기서의 고민이 이듬해인 2008년 강좌 ‘과학 기술과 사회’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연구자들만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실제 대학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우리 삶의 현실 한 복판에서 풀어나가야 할 문제점에 초점을 고정한, 소통의 흔적이란 점에서 의미 있는 하나의 모델을 학계와 대학 교육 현장에 던진 셈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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