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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좌담] 발전노조 파업과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긴급좌담] 발전노조 파업과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4.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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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산업 민영화는 에너지빈곤인구 양산 … 2015년 민영화 늦지 않아”
지난 2월 25일 새벽에 시작된 사상 초유의 발전노조 파업은 결국 공권력 투입으로 끝났다. 파업이 진행되는 한 달 동안 정부가 한 일은 “민영화는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초지일관 유지하는 것이었다. 파업에도 불구하고 전력 수급에는 이상없다는 정부의 장담은 잇따른 발전소 사고로 공신력을 잃었고, 국민의 81%가 발전소의 해외매각을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슬그머니 묻혔다. 대다수의 재벌언론이 ‘공공성을 무시한 파업’에 질타를 가하는 동안, 국가의 미래와 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에 대해 국민적인 합의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발전노조원들의 외침은 보도되지 않았다. 정부가 최후 통첩 기한을 나흘 남긴 시점에서, 우리신문은 발전노조파업에 대한 긴급좌담을 마련했다. 파업의 결과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좌담이지만, 참석자들은 발전노조 파업이 단순히 한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산업구조 개편, 아울러 전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안임을 공감했다.

○ 사회 : 조원희 국민대 교수(경제학과)
○ 참석자 : 김상곤 한신대 교수(경영학과), 박노영 충남대 교수(사회학과), 박태주 산업연구원 연구원
○ 일시 : 2002년 3월 21일
○ 장소 : 교수신문 회의실

사회:‘발전노조 파업’이 매우 중대한 사안임에도 일간지와 방송에서 거의 다루지 않고, 격주간의 한계를 가진 교수신문에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보면서,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선 한 달 넘게 계속되온 발전노조 파업 문제를 짚어보고,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민영화가 적절한 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노조에서는 발전소 매각을 ‘국가기간산업을 초국적자본에 헐값에 넘기는 매국적 행위’라고 주장하고, 정부에서는 파업중인 노동자들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며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선 국가 기간을 이루는 발전노조 파업이 갖는 의미부터 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발전소 민영화 문제는 이 정부가 가진 한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문제입니다. - 조원희

박태주:발전노조의 파업은 ‘민영화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는 데 이의가 있습니다. 민영화가 가져올 사회적 결과와 더불어 민영화 절차의 문제를 돌아보게 만든 것이죠.

박노영:김영삼 정부 때도 줄기차게 민영화 계획을 세웠지만, 큰 실적이 없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민영화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고, 또 상당 부분 실천했습니다. 그 규모 또한 굉장히 커서, 자산 규모 기준으로 전체 공기업의 약 80%가 민영화됐습니다. 그런데 그 민영화 방식이 주로 매각입니다. 우리 사주와 국민주를 활용하겠다고 했지만, 그 비중은 굉장히 작고 재벌, 특히 외국자본에 대한 매각이 대부분입니다. 그나마 내국인한테 판 것은 2조5천억 원에 한국통신 지분 1.2% 정도이고 외국인에게 판 것은 무려 10조83억 정도입니다. 정부가 재벌과 외국자본의 매각 중심으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입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우리나라 경제구조 자체가 종속 신자유주의로 나가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번 발전노조 파업은 한국 자본주의가 종속적 신자유주의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대규모로 나타난 최초의 도전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갖습니다. 민영화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제기하고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성찰해보게 만드느냐의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발전노조 파업, 민영화 성찰 계기 마련

김상곤:저는 현재 이 상황을, 그 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금융, 기업, 공공, 노동 네 부분의 개혁 과정 중 공공부분 개혁에 제동이 걸리는 상황으로 봅니다. 정부는 교육과 의료까지 시장화·사유화하는 구조개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가히 ‘전 영역의 신자유주의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전 파업은 이러한 경제정책과 산업정책에 대해서 노동자들이 정식으로 사회에 문제제기를 하고 대정부 투쟁을 벌인 결정적 사건이라고 봅니다.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뒤에 노동계를 중심으로 국민적 저항이 일어났던 1990년 말과 빗대봤을 때, 그때가 신자유주의를 ‘법제화’하는 과정이었다면 지금은 ‘산업정책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세 분 말씀을 종합해보면, 이번 발전노조 문제는 단지 특정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김영삼 정권 이래로 계속돼온 신자유주의적 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라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사회적 이슈를 노조에서 제기한 최초의 사건이자 사회적 공론화의 계기를 마련한 사건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여기 모인 분들은 발전노조 파업에 큰 의미를 두고 있고, 시민사회단체나 연구자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국제기구조차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왜 유독 한국 언론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은지 궁금합니다.

김상곤:아시다시피 언론은 그 동안 정치와의 유착관계 속에서 성장해왔고, 그 과정에서 최대의 수혜를 받아온 집단입니다. 따라서 민영화 정책이 언론에 수혜를 줄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을까요.
사회:그 동안 보여준 전반적인 언론의 한계와 정경유착 관계로 이해할 수 있겠군요.

박노영:이번 파업을 보도하는 언론 자료를 검토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 김대중 정부 들어서 추진한 모든 개혁에 대해 ‘한겨레’만 찬성하고 다른 언론에서는 다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민영화와 관련해서는 한겨레만 반정부고, 모든 언론은 친정부의 양상을 띠더군요. 결국 그 언론이 자본과 어떤 거리에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 한국 자본주의가 종속적 신자유주의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최초의 도전입니다.- 박노영

전력사용 빈부격차 불보듯 뻔해

사회:제일 중요한 이슈는 ‘민영화의 타당성’일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대통령이 명백한 실언을 했죠. “전력산업의 비효율적인 적자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서 민영화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지 않습니까.

김상곤:정부에서 민영화를 방침으로 정한 1998년 7월 전까지 나온 보고서에는 한전의 재무상태가 좋다고 나왔습니다. 수익성에서도 뒤떨어지지 않고, 투자 손실 등을 감안해도 한전의 전반적인 경영상태는 좋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급속도로 매각을 추진하려고 하는 이유에 경제 외적인, 경영 외적인 다른 요소가 있지 않느냐는 의구심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박노영:정부쪽 자료를 보면, 공기업 가운데 적자기업이 별로 없습니다. 영국은 민영화 당시 공기업들의 재정적자가 심각했지만 우리 나라 기업들은 다릅니다. 흑자 규모도 가장 크고, 고객만족도 조사에서도 1위를 기록한 기업이 바로 한전입니다. 한전은 한전기술, 한전기공, 한전정보네트워크, 한전원자력 등등 백퍼센트 출자한 자회사들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재벌기업들처럼 문어발식 확장이 아니라, 사업관련성이 상당히 높은 기업들입니다.

사회:한전에 경영상 문제가 없고, 오히려 튼실한 기업이라는 데 모두 동의하시는군요. 정부에서는 민영화를 하게 되면 효율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주장대로라면 민영화가 정당화될 수 있겠는데, 5개 발전사가 민영화되면 가격이 내려가고 제대로 된 경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김상곤:민영화를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문제가 있는 공기업 체제를 사기업 체제로 전환시켜서 여러 가지 장점들을 국민적으로 확산시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운영상 문제가 없는데도 굳이 민영화를 강행할 때는, 소비자에게 여러 가지 이점들이 있어야 합니다. 경쟁과 시장을 통해 값이 싸진다든가, 양질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야겠지요. 하지만 민영화가 됐을 때 전력가격이 싸질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지금 전력 요금은 국제 가격의 70%밖에 안됩니다. 민영화를 하면 지금의 전력가격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정부에서도 인정한 부분입니다. 전력은 설비 자본 중심 산업이기 때문에 제대로 공급되려면 수요에 맞춰서 설비가 늘어나야 하는데, 과연 시설투자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투자보수율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자본의 설비투자는 어렵습니다. 전기 자체의 질도 중요하지만, 전력 공급면에서 산간오지, 농어촌에도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가의 문제도 포함됩니다.

박태주:지적하셨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값싼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전력 도매시장의 가격입니다. 정부 계획이 소매시장의 가격은 규제하고, 도매시장은 경쟁에 붙여버리겠다는 것인데, 소비자 가격을 규제하는 방침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투자보수율을 규제하는 것이고, 둘째는 가격 상한제 실시입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영국식 가격상한제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2002년도 현재 가격을 기준으로 가격 상한제를 실시하면, 가격은 내려갈 수 있지만, 정부는 절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발전소를 팔지 못하기 때문이죠. 가격상한제를 실시한다 하더라도 공급 상황이 불안정하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것은, 지난번 미국 캘리포니아 사태가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전력은 대체재가 없는 생활 필수품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가격이 폭등하게 돼있습니다. 발전업자들이 담합을 통해 전력공급을 의도적으로 줄이면서 나타난 것이 캘리포니아 사태입니다. 전력산업은 워낙 규모가 커서 대재벌이나 외국 자본 말고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시장 자체가 벌써 자본 안에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 농민들에게 값싼 전기를 공급했던 한전의 공공성이 민영화 이후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 박태주

사회:가격상한가를 실시하면 우선 발전소를 살 사람이 없고, 업자들은 느긋하게 가격 오르는 것을 기다리지 투자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가격 탄력성이 높기 때문에, 담합 가능성이 없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몇 번의 파동이 올 것인지 예측할 수 없겠습니다.

박태주: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나라 전력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민간에 맡겨놓았을 때 전력파동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최소한의 전력파동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력의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른 2015년 이후에 민영화를 논의해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죠.

사회:민영화가 원론적으로는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시기상으로 적절하지 않고, 시기를 조금이라도 당기고 싶다면 적절한 대처 방법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공기업의 공익성은 어떻게 유지돼야 하겠습니까.

박태주:전력산업의 공공성은 우리 사회 최하계층에게 어떻게 봉사하느냐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산간벽지의 전기요금을 정부가 부담하고 있는 현실에서, 용도별 요금 체계가 폐지되면 가장 큰 희생자는 원가대비 60%로 전기를 공급받는 농민입니다. 민영화가 되면 저소득층이 에너지빈곤인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총수입의 10% 이상을 에너지비용으로 쓰는 사람들을 ‘에너지빈곤인구’로 칭합니다. 영국은 소득도 우리의 두 배이고, 사회복지도 잘돼있지만, 에너지빈곤인구가 98년 현재 650만명입니다. 영국 인구의 10% 이상이 에너지빈곤인구라는 말이죠. 프랑스는 아무리 가난해도 최소한의 전기는 국가에서 대줍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같은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없기 때문에 앞으로 에너지 공급이 민간에게 맡겨졌을 때 에너지빈곤인구의 양산을 막을 장치는 전혀 없습니다. 농민들에게 값싼 전기를 공급했던 한전의 공공성이 민영화 이후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박노영:산업용 전기도 정책적으로 값싸게 공급해 온 걸로 알고 있는데, 산업용 전기값이 올라가면서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박태주:현재 산업용은 원가 대비 80% 가격입니다. 민영화되면 1만 kw 이상의 수요자는 발전회사와 직거래가 가능합니다. 직거래를 통하면 가격을 내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기사용을 통해 이익을 보는 계층과 손해를 보는 계층이 생겨납니다. 대기업은 직거래와 장기계약을 통해 이익을 보고, 그 차액을 보존해주는 중소기업과 일반 가정용 수요자들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김상곤:전기 사용에서 부익부 빈익빈, 분배의 불균형이 심화되겠군요.

사회:공공성과 효율성 두 측면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에 대한 정부의 대비책에 대해서 전혀 신뢰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민영화 찬성론자 중에도 지금 민영화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은데, 정부가 민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합의를 거쳤다고 보십니까.

공공성을 포기할 것인가

박태주:2000년 10월 한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갤럽 설문조사를 진행했을 때, 무려 89.7%가 한전의 민영화 과정에서 직원과 노동조합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들조차 논의과정에서 소외된 것입니다. “외국자본은 제 1주주나 대표자가 될 수 없다”고 밝힌 지 불과 40일 만인 99년 1월에 산업자원부가 스스로 안을 철회하고 해외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뒤로 국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모든 일들이 엄청나게 빨리 진행됐습니다.

사회:정부에서는 전력노조와 충분히 합의했다고 말하고 있던데요.

김상곤: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98년 4월경까지 전력 민영화에 대한 언급 자체가 아예 없었습니다. 단지 어떤 형태로든 개편이 필요하다는 논의만 되고 있던 상태입니다. 그러다가 98년 7월에 갑자기 민영화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99년 1월에 민영화 방침을 안으로 정하면서, 그 해에 민영화 관련 추진법과 전력산업구조개편법을 개정·통과시키고 2000년부터 민영화 작업을 시작한다는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전력노조에서조차 2000년 들어와서야 비로소 정부가 추진하려는 개혁이 민영화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한전은 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법의 내용에 대해 ‘분할‘에 관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민영화 문제는 노조의 의견을 묻겠다고 분명히 말한 바 있습니다. 노조의 요구는 ‘민영화까지 동의한다’, 혹은 ‘묵인한다’가 아니었습니다. 분할해서 일하면 효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선까지 동의한다는 것이었죠.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법은 예비입법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분할에 대한 내용을 개정안으로 담고 있고 부칙에 민영화는 1년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에 검토한다고 돼있습니다. 그것은 민영화법이 아니라 예비입법인데 한전에서는 그것이 바로 민영화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법 개정과정에서도 직접 당사자인 노조와 공식적이고 본격적인 협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한전 노조는 민영화 반대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 전력의 공익성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공기업의 내부효율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 김상곤

사회:사태의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만약 정부가 좀더 부드럽게 나와서 민영화를 철회하거나, 실질적인 검토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어떤 대안이 있겠습니까.

박태주:발전 산업 구조에는 몇 가지 체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공기업 독점 체제’입니다. 예전의 ‘한전’과 프랑스의 EDF가 대표적인 경우죠. 두 번째 모델은 ‘공기업 경쟁 체제’입니다.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와,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 주가 그렇습니다. 또 다른 모델로 우리가 가려고 하는 ‘사기업 경쟁모델’은 영국이 대표적입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경우, 대부분의 발전회사를 국가나 지방단체가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철저하게 자율경영을 인정합니다. 담합을 하거나 설비투자를 게을리 하는 등 공익에 위배되는 활동은 국가가 규제하지만, 나머지는 자유롭게 놓아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입니다. 자율성을 인정하되 공익성을 담보로 하는 최소한의 책임 경영이 북유럽 모델의 특성인 것이죠. 전력을 파는 사람은 자회사고, 사는 사람은 모회사인 우리나라 발전 자회사 시스템에서 경쟁은 ‘무늬만 경쟁’입니다. 경쟁의 효과를 살리면서 최소한의 공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공기업 경쟁체제’입니다. 기존의 한전 자회사를 독립된 공기업으로 전환시키고 이 공기업들 사이에서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라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사회:자율적인 경영을 하기 위한 공기업의 지배구조는 확보돼야 하겠군요. 기업 지배구조 논의도 따라야죠.

김상곤:전력 특성상 공익성을 버려서 안됩니다. 공공부문으로서의 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통신 민영화 때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국민들이 인정할 수 있는 시민단체 전문가, 당사자가 참여하는 지배구조를 만들어서 그런 지배 구조 아래서 전문적인 책임 자율경영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수직적인 통합방식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내부경쟁을 유도할 것인가, 기본적으로는 공기업 형태를 유지하고 공기업 내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내부경쟁을 어떻게 도입할지 검토해야 합니다.

사회:기본적으로 수익성과 공익성 모든 것을 검토해봤을 때 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는 조건 아래서 내부 개혁을 수행하면 충분한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의견에 대체로 동의하고 계십니다. 발전소 매각 뿐 아니라 앞으로 국가기간산업 전 영역에 걸쳐 민영화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현 사태에 대해 정부에 하실 말씀이 많은 듯 합니다.

박노영: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뚜렷한 ‘공기업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기업 존립이유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는데, 현 정부는 관점 자체가 아예 없습니다. 공기업의 수익성이 왜 그렇게 많이 강조돼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공기업은 기업 외적인 공익 기능을 많이 갖고 있고, 심지어 적자를 낸다 해도 상당 부분 ‘계획된 적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공기업을 수익성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담론 중에서는 그런 부분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대통령 스스로의 생각이 너무 신자유주의 일변도입니다. 한국공기업이 대처 시절 영국공기업과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데, 그것도 별로 고려되지 않은 듯 합니다. 수익성이라는 좁은 관점에서 문제를 보면서 민영화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사고 자체를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용불안은 교섭대상, ‘불법’ 규정 고쳐야

박태주:정부의 국정지표가 민주주의와 시장의 균등발전입니다. 시장을 발전시키되 민주적으로 하겠다는 것인데, 시장이 민주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있어야 하고, 시장의 주체들이 참여해야 하는데, 국민들은 정보도 없고 참여도 못합니다. 사회당사자간의 합의를 통한 변화를 추구해가는 정부의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민영화를 하든 안 하든 말이지요. 구조개편의 열쇠는 결국 정부가 쥐고 있습니다다.

김상곤:영국과 미국의 노동법령을 보면 고용을 비롯해 근로조건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협상과 교섭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발전노조원들이 민영화 문제로 파업 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타당합니다. 무조건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부터 정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권은 한정적이지만, 산업이나 국민의 삶은 지속됩니다. 통일 한반도의 미래까지 생각하면서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합니다. 현재 추진되고있는 민영화 정책을 일단 유보하고 사회적인 토론과 논의를 전개해야 합니다.

사회:김대중 정부가 그 동안 많은 잘못과 한계를 보였지만, 발전소 민영화 문제는 이 정부의 한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이성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행·정리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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