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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 월드컵 뒤집어보기
[문화비평] : 월드컵 뒤집어보기
  • 주완수 한예종
  • 승인 2002.04.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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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06 10:11:47

주완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큰 잔치인 월드컵 행사를 코앞에 두고 그것에 관한 작은 것을 이야기하려 하면서 이렇게 이상한 제목이 만들어진 것은, 순전히 좀 별난 아내를 둔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그 경험은 외국 손님을 맞는 우리의 습관에 관한 것이고, 그 중 특히 일본 사람을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흔한 바보짓에 관한 것이다.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아내가 아주 별난 사람은 아니다. 생긴 것은 맘씨 좋은 충청도 아줌마 같고 몸매는 항아리 같은데, 세련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서 길에서 맞부딪쳐도 전혀 눈길이 갈 리 없는 흔한 타입이다. 술도 잘 먹고 놀기도 좋아한다. 한번 술을 마시면 술집과 노래방을 오가며 끝까지(?) 가서, 그런 날은 집까지 데려 오는 일이 만만치 않다. 그래도 보통 때는 보기만 해도 푸근한 부여 정림사지의 돌부처 같다. 그런데 너무나 한국적인 이 여자가 일본 사람이다(나는 아내의 먼 조상은 분명히 백제 유민일 거라고 믿고 있다).

아내가 일본 사람이다 보니 자연히 일본도 자주 가고, 이런저런 일로 일본 사람도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많은 일본 사람을 알고 지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에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만을 조금 알고 있다. 이 일본 사람들을 만날 때는 큰 문제가 없다. 워낙 염치를 잘 차리는 사람들이라, 뒤에 숨겨진 무슨 꿍꿍이가 있나 의심이 갈 정도로 상대를 배려한다. 문제는 항상 내가 아내와, 혹은 아내에게 놀러 온 일본 사람들과 같이 한국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 생긴다.

아내는 한국에 유학 오기 전부터 한국어 공부를 해서 일본 현지의 한국어 학원에서 만난 일본인들을 많이 알고 있다. 대부분이 한국에 관심이 많고, 한국을 좋아하며, 조금씩은 한국말을 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다. 연세대 어학당을 다녔기 때문에 재일교포 3세 친구도 많다.(교포들의 자기 정체성 문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객지에 왔으니 어지간한 일은 참을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런데도 민망한 일은 일어난다.

상대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는 훈련이 전혀 안된 듯한 이야기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고, 나를 지치게 한다. 거의 매번 그렇다. 아무리 누워서 침 뱉기라도 그렇지. 못난 친구놈들, 저것들이 교수고, 사장이고, 예술가야. 이 글의 제목처럼 돈 들여 염불을 시켰으면 차린 잿밥은 자기도 먹고 손님에게도 내야지, 거기에 재를 뿌려서 아무도 못 먹게 만들어. 꿩 저만 추운 꼴이지.

별 이야기도 아니다. 제발 엉뚱한 질문으로 상대 좀 당황하게 하지 말란 이야기이다. 아래는 그런 질문 목록이다. 나는 매번 얼굴이 붉어진다. 어찌 보면 나라 망신이기도 하다. 월드컵 때만이라도 일본 손님들에게 이런 질문해서 돈 쓰고 욕먹지 말기를.

1.“Can you speak English?”(그냥 한국말로 해라. 어지간한 건 통역이 된다. 상대가 손을 휘저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A little! 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너는 그 말 밖에 모르잖아)

2.(아내의 친구에게) 한국 축구와 일본 축구, 어느 쪽이 더 세냐.(아내에게)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면 어디를 응원하느냐.(아내의 친구: 우리는 브라질보다 약하다. 아내: 당신이 만약 미국에 살게 되면 한국과 미국이 축구할 때 미국을 응원할 거냐)

3.김치가 기무치를 이기고 국제 표준이 된 것 아느냐.(그럼 너는 회초밥이 스시를 제치고 국제 표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냐)

4.언제쯤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을 것 같으냐.(너는 언제 너희 집에 전세 사는 아저씨가 너희 집을 사서 정리해고 당한 너를 지금 쓰는 전세방에 내몰지 아느냐) 혹은 (내가 언제 널 때릴지 아느냐)

5.백제가 야만족였던 너희에게 한 수 가르친 것 아느냐.(지금은 우리가 너희를 가르치고 있으니, 너희는 야만족이냐)

6.일본 여자는 헤프다는데.(한국 여자가 더 화끈(?)하더라!)

7.한국 여자가 더 이쁘지.(징그럽다. 왜 그렇게 전부 화장이 진하고, 얼굴에 칼을 댔냐)

8.나라는 부자라도 개인은 가난하다는데.(그래도 너보다는 잘산다.)

9.전부 이중 인격자라는데.(한국에서는 겸손하면 이중 인격자가 되느냐? 또 설령 이중 인격자라고 해도, 그래서 너처럼 무례한은 아니다.)

10.(어지간히 분탕질하고 나서 헤어질 무렵의 필수 코스) 일본 여자들이 한국 남자를 좋아한다는데, 여자친구 한 명만 소개시켜 줘요. (도대체 그런 헛소문 어디서 들었길래 처음 만나는 유부남마다 같은 부탁을 해. 한국에서도 안 되는 주제에. 생각 있으면 일본어 공부 먼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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