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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개의 담론으로 탐색한 빅토리아시대 미시사
아홉개의 담론으로 탐색한 빅토리아시대 미시사
  • 이영석 광주대·서양사
  • 승인 2009.11.02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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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이영석, 『영국, 제국의 초상』(푸른역사, 2009)

이 책은 주로 1880~90년대 영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사회 구조나 계급관계 같은 거시적 측면보다는 당대 문필가들의 논설을 정독해 민주주의, 경제 불황, 빈곤, 인종, 여성 문제, 교육, 신앙, 과학 지식 등 미시적인 주제들을 탐색하려고 한다. 특정한 시대의 전체 사회상을 되살리는 것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그 대신 사회의 여러 측면을 소재로 삼아 선택적으로 재배치하는 방식을 따른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사회적 풍경’이라고나 할까. 인과 분석에 매달리기보다는 한 시대의 사회적 단면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묘사하려는 것이다.  

역사가는 자신이 선택한 시대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다. 문제는 그 시대의 사회 모습을 독자 앞에 어떻게 인상 깊은 이미지로 드러낼 수 있는가에 있다.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내가 제안하는 방식은 마치 한 시대의 사회를 스케치하듯이 되살리는 일이다. 스케치에서 반드시 전체 풍경을 담을 필요는 없다. 그는 능력의 한계 때문에 어찌할 수 없이 서술 대상의 한계를 긋는다. 특정한 시대의 모든 자료를 다 망라할 수 없으므로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만을 사진 찍듯이 되살린다는 뜻에서 ‘사회적 풍경’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같은 서술은 근래 사회사의 위기에 대한 내 나름의 대응 방식이다. 오늘날 사회사는 역사 연구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사실 사회사가 사회과학의 방법을 적극 받아들여 분석적 서술을 지향하면 할수록 그 위기는 예견된 것이었다. 사회사가들은 역사 서술에서 실증과 분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점을 간과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사회사가 문학적 역사를 하나의 대안으로 추구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술 의도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한다. 역사가는 눈앞에 펼쳐진 과거라는 무수한 잔상들 가운데 어느 것인가에 주목하고 눈길을 맞추며 그것을 끄집어낸다. 이러한 작업 하나하나가 사회적 풍경을 재현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이다. 나는 역사가가 사회적 풍경을 그린다면 풍경 사진이나 스케치보다는 훨씬 더 그럴듯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역사가는 동시에 여러 시점과 여러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 과거를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풍경화가와 사진작가는 이런 작업을 할 수 없다. 역사가가 재현한 사회적 풍경은 여러 시점에서 바라보고 또 여러 각도와 장소에서 바라보았을 때 나타났음직한 것들로 구성된다.

왜 19세기 말 영국인가
빅토리아 시대 후기에도 영제국은 계속해서 번영을 누렸지만, 그 이면에는 쇠퇴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 시기의 영국은 국내 정치면에서는 아일랜드의 농민 소요로 진통을 겪었고, 경제적으로도 경제 불황이 계속 이어졌다. 도시화가 진척되면서 일반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지리적 양극화와 함께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었다. 전통적 지배세력 또한 농업공황의 타격을 받아 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에드워드 카는 1890년대를 가리켜 “신념과 낙관주의가 가득했던 위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한낮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저녁노을의 시기”라고 회상했다.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이 저녁노을 같은 ‘쇠락’의 징후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이 책에서 19세기 말의 시기를 주목하는 것은 이런 문제 제기에서 비롯한다.

평론지 논설에서 드러난 사회적 풍경들
그렇다면 어떤 주제들을 선별해 이 시기의 사회에 접근할 것인가. 이 책은 당대의 주요 평론지(review)에서 논란이 된 문제들을 선별하는 방식을 따랐다. 19세기는 평론지의 전성기였다. 유명한 문필가에서 성직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식인들이 평론지에 글을 썼으며, 주로 중간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독자층이 이들의 글을 읽었다. 사실 19세기 후반에는 과학과 사회와 역사에 관한 지식이 새롭게 축적되고 전파됐다.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에 갈증을 느꼈고 평론지에서 그 갈증을 풀려고 했다. 평론지에서 주목을 받거나 논란이 된 주제들이야말로 그 시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주목했던 대상이 아니었겠는가.

나는 당시 널리 알려진 평론지 가운데,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을 보여주는 <19세기>, <웨스트민스터 리뷰>, <에든버러 리뷰>, <당대평론>, <국민평론>, <계간평론> 등 6종의 평론지에 집중했다. 1880~90년대에 간행된 위 평론지 논설 가운데 여러 기고자들이 참여해 논쟁하거나 관심을 표명한 주제들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1884년 선거권 확대를 전후해 영국 헌정과 민주주의 전통에 관해 논란이 있었다. 경제 문제에 관해서는 그 시대의 불황을 다룬 실태 보고서나 또는 불황 극복책으로서 복본위제 채택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일었다. 이와 함께 1880년대 불황기에는 경제적 양극화가 더 심화됐고, 그에 따라 런던 동부 슬럼지역이 커다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평론지에는 유대인 혐오증을 다룬 논설들 또한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밖에도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 시기에 여성 문제를 다룬 문필가들도 있었다. 1880년대에는 특이하게 교육, 그 중에서도 시험 제도의 부작용을 다룬 논설들과 이에 대한 반론이 자주 게재됐다. 이밖에 당대에 저명한 과학 지식인들이 태양계 우주, 다윈주의 등에 관한 대중적인 논설을 썼다. 이밖에 영국 국교회의 위기를 경고하는 글들이 자주 실렸다.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에 관한 논설들도 드물게 지면을 장식했다.

나는 이런 주제들을 중심으로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세계를 치밀하게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물론 여기에는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한 주제들이 상당수 빠져 있다. 이들을 첨가해야 더 충실한 풍경화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회화에서도 눈앞에 보이는 전체 경관을 담아낼 경우에만 그럴듯한 풍경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 시가지 전체를 그린 그림도 중요하지만, 남대문 주변이나 종로 거리를 재현한 풍경이 더 친근하게 서울의 이미지를 나타낼 수 있다. 중요한 소재들을 다 망라하지도 못하고 각각의 소재들이 서로 연관성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실마리 삼아 그린 풍경이 빅토리아 시대 후기 영국 사회로 독자들을 안내해주리라고 믿는다.

이영석 광주대·서양사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학위를 했다. 케임브리지대 클레어홀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서양사학회 회장으로 있다. 저역서에 『산업혁명과 노동정책』, 『잉글랜드풍경의 형성』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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