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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2] 미국 대학가의 주경야독
[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2] 미국 대학가의 주경야독
  •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 승인 2009.11.0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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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의과 대학을 갓 졸업한 신참 의사들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진 빚이 평균 20만 달러에 달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1달러를 단순히 천 원으로 환율을  따져 봐도 2억원이란 거액이 나온다. 그래서 의사들은 고액 연봉을 받더라도 상당 기간 부채 탕감에 골머리를 앓게 된다는 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문을 연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 캠퍼스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의 법과대학은 첫 번째 신입생들을 모집하면서 우수한 학생들을 뽑기 위해 입학생 전원에게 전액 장학금을 제시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2천100명이 넘는 지원자들이 몰렸다고 한다. 그 결과, 총 지원자의 4%에 해당하는 110여 명만 입학 허가를 받아 하버드나 예일 등의 아이비리그 로스쿨들을 제치고 가장 입학하기 힘든 로스쿨이 됐다고 하니, 미국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의 메리트가 얼마나 크게 받아들여지는지 알 만하다.

물론 의대와 로스쿨은 미국 안에서도 등록금이 높기로 정평이 나 있는 전공들이니 이런 경우들은 어느 정도 극단적인 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게 일반화돼 있는 미국의 학부생들에게는 대학 시절 동안 경제적으로 살아남기가 하나의 큰 화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 주당 대여섯 과목의 수업을 들으면서도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학교 안팎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나 역시도 대학 시절 과외 등의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여기 학생들은 주당 스무 시간 혹은 서른 시간씩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등의 고된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나의 어설픈 아르바이트랑은 비교할 수가 없을 듯 하다.

그래서인지 한창 재미있게 학교를 다닐 법한 젊디 젊은 학생들 얼굴에는 늘 피곤함이 가득하다. 특히나 아침 수업 시간이면 더욱더 분위기가 가라앉음을 느낀다. 워낙에 많은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에 매달리다 보니 막상 수업에는 소홀해지게 되고 과제물도 제때 내지 못해 시간을 좀  더 달라고 사정해오는 학생들도 제법 있다. 수업 관련 상담을 하다가 주당 40시간이나 일을 하면서 공부를 따라가자니 너무나 힘겹다며 눈물을 흘리던 학생도 있었다. 맘이 약해서인지, 대개는 학생들의 사정을 헤아려서 그들의 청을 들어주는 편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힘든 사정이 아무리 딱해도 가르치는 선생의 처지로서는 무작정 그들의 입장만 이해하고 가르쳐야 할 것들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강의를 준비하고 과제물을 낼 때마다 혹시나 학생들에게 버거운 짐을 지우는 건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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