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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가 된 ‘18세기 회화’무엇이 새로움을 창조해냈을까
화두가 된 ‘18세기 회화’무엇이 새로움을 창조해냈을까
  •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09.10.2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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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과 그의 시대 조명한 세 미술관의 전시들

전시에 관한 한 올해 한국 전통 미술의 화두는 단연 ‘18세기 회화’다. 특히 겸재 정선(1676~1759)을 필두로 한 진경산수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올해가 정선 서거 250주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이 큰 계기로 작용했다. 이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것이 바로 소장품의 양과 질 면에서 우리 전통미술을 대표하는 세 미술관, 곧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그리고 삼성미술관 리움이다. 서막을 연 것은 지난 봄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겸재화파’展이다. 그리고 올 가을 그 뒤를 잇는 블록버스터급의 전시가 이들 세 미술관에서 개최 중이다.

정선, 「仁王霽色圖」, 종이에 수묵 79.2× 138.2cm
이인문, 「牧羊吹簫」, 종이에 담채, 41.5×30.8. 간송미술관 소장.
15세 때 집을 떠나 신선도를 닦아 40여년이 지난 후에도 15세 때의 양치는 모습으로 있었다는 황초평의 고사를 소재로 했다. 도석인물화를 풍속화풍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18세기의 시대 분위기를 보여준다. 작품은 ‘도석화’展에서 볼 수 있다.

    먼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겸재 정선, 붓으로 펼친 天地造化’(9.8~11.22)를 개최 중이다. 이 전시에는 140여점의 정선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현재 전시 일정에 따라 간송미술관에서 빌려왔던 「청풍계도」와 「금강내산총람도」이 빠진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辛卯年楓嶽圖帖」, 「北園壽會圖帖」 같은 화첩들과 「여산폭포도」같은 중요한 작품들이 망라돼 있어 역시 놓칠 수 없는 전시다. 이 전시에서 주목을 요하는 부분은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미친 중국의 남종문인화법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선은 일찍부터 각종 화보들을 통해 중국 남종화 대가들을 깊이 연구해 미점, 피마준 등의 남종화법과 절파계화풍을 자기 식으로 소화, 재해석해 특유의 관념 산수화풍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전시에서 그의 진경산수뿐만 아니라 관념산수화, 고사인물화 등을 각별히 조망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18세기는 진경산수, 풍속화 등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사실정신에 입각한 화풍이 풍미했던 때이기도 하지만 중기의 절파화풍을 벗어나 寫意를 체현한 남종화풍이 본격적으로 개화했던 때이기도 하다. 정선은 이 방면으로도 중요한 화가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을 감안하면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전’(9.29~11.8)에 선보인 이인문(1745~1821)의 「강산무진도」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문인화풍뿐만 아니라 정선, 김홍도의 독자적 화풍의 흔적이 혼재된 길이 9m에 달하는 이 대작은 18세기를 좀 더 다각적이고 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모방과 답습 탈피한 새로운 시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현재 ‘정선과 18세기화가들’展(9.29~2010.3.28)이 개최중이다. 이 전시에서는 그 유명한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를 볼 수 있다. ‘정선과 18세기화가들’展은 18세기를 모방과 답습으로부터 벗어난 시대로 제시한다.


조선의 산천을 개성적인 필치로 그려낸 정선의 진경산수도 그렇지만, 심사정(1707~1769), 강세황(1713~1791) 등이 화보의 단순한 모방을 벗어나 문인화의 寫意를 깊이 이해해 독특한 화풍으로 전개한 조선 남종문인화도 그렇다.여기에는 김홍도, 김득신 등이 풍속화나 신선도, 화조화 등에서 보여준 새로운 미감도 빠질 수 없다.      


    앞의 두 전시가 전반적으로 18세기 진경산수화를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그와 연관을 맺고 동시에 전개된 다른 경향들(특히 남종문인화풍)의 시대적 의의 또한 강조하는 접근방식을 취한다면, 간송미술관의 ‘道釋畵’展(10월 18일~11월 1일)은 그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도석화는 ‘道家와 釋家의 그림’이란 뜻으로, 감상을 위해 그려진 도교와 불교 관련 그림을 지칭한다. 주로 禪僧, 道士, 신선 등을 그린다. 따라서 도석화는 태생적으로 관념적인 성향을 갖는다. 전시는 김시, 이정 등 조선 초기 화가로부터 시작해 이징, 김명국, 한시각 등 중기화가에서 정선, 조영석, 김홍도, 이인문, 신윤복 등 후기화가로, 그리고 장승업, 조석진, 안중식, 김은호, 노수현으로 이어지는 우리 도석화의 전개를 보여준다.    


    특히 주목을 요하는 것은 전시가 조선도석화의 흐름을 중국풍의 기괴한 용모가 친근한 우리 얼굴로 변하는 과정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18세기다. 전영우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의 표현을 빌자면 “조선성리학이 주도 이념이 돼 우리 산천과 우리 생활풍속을 그려내는 진경풍속화풍이 겸재 정선에 의해 대성되자 도석화의 인물표현도 우리 풍속을 그대로 반영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성취는 19세기 오원 장승업(1843~1897)과 그 후대에 무분별한 중국풍의 모방 풍조에 따라 기괴한 신선이 다시 그려지면서 쇠퇴하게 된다. 요컨대 ‘도석화’展에서 핵심은 18세기다. 그렇다면 그 전대는 18세기를 위한 준비시대요, 그 후대는 18세기 화풍을 계승하거나 져버린 시대가 된다.


    18세기에 초점을 맞춘 세 전시에서 우리는 조선후기에 해당하는 18세기의 독특하고 복잡한 문맥과 만나게 된다. 18세기 미술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먼저 작고한 역사학자 변태섭의 경우처럼 18세기 미술이 동시대 양반 문화가 세속화하고 서민문화에 침식돼 가는 과정을 반영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정선의 진경산수는 관념에 치우친 지배층의 현학적인 시각이 민중의 현실적인 시각으로 교체되는 과정을 반영하는 사례가 된다. 한편 정선의 진경산수를 병자호란 이후 노론의 세계관, 곧 조선중화주의 내지는 조선성리학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입장도 있다. 유봉학 한신대 교수에 의하면 조선중화주의는 조선의 독자적 문화가 긍정되고, 여기에 조선의 독자적 현실이 그 어느 때보다 사실적으로 인식될 기반을 제공했다. 이러한 기반 하에서 조선의 자연, 인물과 풍물, 풍속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실적인 예술이 꽃을 피우게 됐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정선의 진경산수이고, 김홍도의 풍속화다.

진경산수는 국제질서의 변화 산물
    또 이와는 다소 다른 맥락에서 18세기 미술을 병자호란 이후 동북아시아의 국제적 질서의 변화 속에서 생긴 새로운 문화적 자극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논자도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자면 진경산수란 明이라는 강력한 문화 중심지가 소멸된 지점에서, 조선의 지배 계층이 자기 자신의 문화를 되돌아보게 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 홍선표 이화여대 교수는 정선의 진경산수를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일국주의의 좁은 시야에서 볼 것이 아니라 17~18세기 동북아시아라는 보다 거시적인 맥락에서 볼 것을 요청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진경산수는 중국, 일본, 그리고 조선 모두에서 일어난 국제적 현상이다. 예컨대 그는 정선의 진경산수를 명나라 말기에 유행한 「명승유람도」와 연관시켜 이해한다.  


    세 전시는 18세기를 되돌아보게 한다. 18세기의 미술은 ‘세계화’라는 구호와 ‘우리 것’이라는 구호가 교차하며 혼란상을 빚고 있는 오늘 우리 문화계를 반추하는 거울이다. 다행스럽게도(?) 전시들이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조명되지는 않은 터라 특히 평일 낮에 방문한다면 느긋하게 작품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인왕제색도」와 단 둘이서 같이 보내는 10분. 이 정도면  발품 팔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75@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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