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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무 이식하고 막걸리 뿌려주는 이유
큰 나무 이식하고 막걸리 뿌려주는 이유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09.10.26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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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_ 토양세균

보통은 큰 나무을 옮기고 나면 막걸리를 챙겨놨다가 이내 한가득 뿌려준다. 나무를 移植하고 막걸리를 뿌려주는 것은 나무더러 알코올 먹이느라 그러는 것이 아닐 터다. 뿌리 다 잃은 巨木녀석이 술에 꽉 취해 뒤뚱뒤뚱 흔들거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실은 土壤微生物들이 막걸리를 먹고 무럭무럭 살찌라고 그런다. 이런 유익한 미생물의 번식이 식물의 뿌리 건강에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도통 옮기느라 마구잡이로 잘려 생채기 나고 곪은 뿌리를 낫게 해 주는 일도 이들 토양미생물들의 몫이다.

기름진 흙에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아서 물에 녹지 않는 不溶性인 무기영양소를 잘 풀리게해 흡수를 거들어주니 그것들이 없거나 적은 흙에는 식물이 자리지 못 한다. 거꾸로 식물의 뿌리는 여러 가지 달콤한 유기영양소를 토양미생물들에게 주어서 키우느라 애쓴다. 아니! 식물이 세균을 키운다고? 어리둥절하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그래서 뿌리근방에는 다른 흙보다 50%나 더 많은 토양세균들이 득실득실 꾄다고 한다. 세상에 공짜 없는 법. 이렇게 식물과 토양미생들은 서로 ‘주고받기(共生)’한다. 기막힌 相生이다!  

토양세균 중에는 식물의 도움을 받아 사는 녀석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흙에 들어있는 有機物을 분해해서 산다. 산다는 말은 繁殖을 한다는 말이다. 흙의 유기물을 분해하거나 토양미생물이 죽어 분해하면서 내 놓는 냄새가 바로 흙냄새라 하는데 이 냄새를 지오스민(geosmin)이라한다. 지오스민은 고수한 흙냄새 말고도 역겨운 물비린내나 소나기가 온 다음에 흙에서 풍기는 냄새 따위를 말한다. 흙에 유기물이 적으면 토양세균이 살지 못하기에 고소한 흙냄새가 나지 않는다. 온통 땅심이 돋우어진 흙이라야 냉이냄새랄까 인삼의 사포닌 냄새 비슷한 향기를 내는 것이다. 흙이 고수하면 죽을 날이 가깝다고 했는데…. 어디 세상에 유기물이 없는 메마른 모래에서 흙냄새가 나던가. 사람도 다름없어 土氣로 속 가득 찬 사람에서는 풋풋한 사람냄새가 풍긴다. 떡 하니 쳐다보면 대뜸  뭔가 끌리고 가까이 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 여러 사람을 아우르는 사람냄새가 푹 배인 건 사람이다. 글에서 풍기는 향기를 文香이라 하던가.

“이것 참 재미있는 걸!” 1928년 9월 23일, 한 달 넘게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플레밍이 탄성을 내질렀다. 포도상 구균(Staphylococcus sp., 그리스어로 ‘staphyle’은 포도를, ‘coccus’는 둥글다는 의미임)같은 고름세균(化膿菌) 실험하던 배양접시 하나가 ‘사고’를 친 것. 휴가 가느라 아무렇게나 처박아둔, 뚜껑 열린 배양접시에 같은 건물의 다른 층에서 키우던 푸른곰팡이(Penicillium notatum)의 홀씨(포자)가 바람을 타고 사뿐히 날아와 앉은 것이다. 세균끼리는 물론이고 세균과 곰팡이, 곰팡이와 곰팡이 사이에서도 죽살이치는 다툼이 있는지라 문제의 배양접시에 날아든 푸른곰팡이는 거기 있던 화농균을 죽였다. 푸른곰팡이가 분비한 항생제, 즉 페니실린이 화농균을 자라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위대한 과학업적은 ‘偶然性’이 지배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닳고 닳은 영혼의 눈을 가진 사람이 과학자다. 그들은 과감한 도전정신, 엉뚱한 생각, 무서운 집념과 과단성도 지녀야 한다.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의학적 성과는 첫째가 깨끗한 물과 하수도요, 둘째가 항생제의 발견이라고 했다. 그런데 抗生劑도 흙의 토양세균이나 곰팡이들에서 얻는다. 항생제는 세균이나 곰팡이가 자기(세포)를 보호하고 다른 상대를 죽이 위해 만든 물질이로, 다른 미생물의 세포벽을 합성하는 효소기능을 抑制하거나 세포벽을 파괴하는 효소의 기능을 亢進시키며, 또 핵산(DNA) 복제를 저해하거나 단백질 합성을 억제해 다른 세균을 죽인다. 

암튼 흙은 참 고마운 분이시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을 ‘落地’라 한다면 죽어 묻히는 것을 ‘入地’라 하기도 한다. 흙에 떨어졌다가 흙에 듦!? 含笑入地라, 굳이 웃음을 머금고 죽으리라! 그리고 간곡히 부탁한다, 토양미생물들이여! 차돌같이 살아온 내 주검을 금세, 곱게 썩혀다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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