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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1]‘테뉴어 시계’ 멈추기
[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21]‘테뉴어 시계’ 멈추기
  •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 승인 2009.10.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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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몸 담고 있는 단과대학에 소속된 조교수들이 한 학기에 한 번씩 학교 밖에서 만나는 모임이 있다. 아직 테뉴어를 받지 못한, 그래서 테뉴어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앞으로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인 신참 교수들이 모이는 자리이니만큼, 딱히 정해진 주제는 없지만, 항상 테뉴어 심사의 절차나 기준 등과 관련된 정보가 화제가 되거나 테뉴어 걱정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하소연하는 자리가 되고 만다.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집단이 '대학의 조교수'라는, 그냥 웃어 넘길 수는 없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조교수들이 느끼는 테뉴어에 대한 부담은 상당하다.
    이번 학기에 가까이 지내는 한국인 교수들이 세 명이나 테뉴어 심사를 신청해서 그분들의 준비 과정을 옆에서 지켜 보게 됐는데, '도시에'(dossier)라고 불리는 테뉴어 신청 서류가 백과 사전 두께의 바인더로 세 권 분량이나 되는 걸 보고는 벌써부터 긴장이 된다.


    미국 대학의 경우는 임용된 후 만 5년을 재직하고 6년차가 되는 첫 학기에 테뉴 심사를 신청하게 된다. 실제 준비 기간은 5년 남짓 주어지는 셈이다. 흔히, 일단 임용이 되고 나면 테뉴어 시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을 많이 한다. 5년이라는 세월이 그다지 짧은 시간은 아닌데, 부담감이 커서 그런지 다들 임용되는 그 순간부터 시계 초침이 째각거림을 느끼는 모양이다. 


    가는 세월, 그 누가 잡을 수가 있냐고, 내가 좋아하는 서유석이라는 가수는 구슬프게 읊조렸지만 신기하게도 테뉴어 시계는 멈출 방법이 있다. 교수의 가정이나 건강상에 중요한 변수가 생기면 테뉴어 시계를 일 년 정도 멈출 수가 있고, 따라서 테뉴어 심사를 일 년 늦게 신청할 수 있다는 게다. 앞서 말했듯이 건강상의 문제로 테뉴어 시계를 멈출 수도 있지만, 가장 흔한 경우는 출산이다. 여자 교수 본인이 아이를 출산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남자 교수들도 배우자가 아이를 낳으면 똑같이 테뉴어 시계가 멈춘다. 그래서 이미 열 살 짜리 딸아이를 두고 있고 둘째 생각이 없지만, 둘째를 가져야 하는 사태가 올 지도 모른다고 집사람에게 농담반 진담반의 경고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에 서울대 여교수회에서 여교수들의 임신, 출산의 경우에 테뉴어 시계를 멈출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자고 대학 측에 제안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한국에서야 미국처럼 남자 교수들도 배우자가 출산을 하면 테뉴어 시계가 멈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여자 교수들은 그런 혜택을 받고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 대학가에서는 서로 앞다투어 테뉴어 심사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는데, 강화된 테뉴어 심사에 상응하는 여러 가지 보완제도도 확충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테뉴어 시계 멈춤 제도'도 하루 속히 도입되기를 바란다.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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