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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창립과 주변 반응
[쟁점]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창립과 주변 반응
  • 교수신문
  • 승인 2002.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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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09 10:57:19
지난 3월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가 창립총회를 갖고 정식으로 발족했다. 이 단체에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 등의 정관계 인사, 이석연 전 경실련 사무총장 등 시민운동 관련자도 참여했지만,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행정학), 송병락 서울대 교수(경제학), 유재천 한림대 교수(신문방송학), 송복 연세대 교수(사회학), 신용하 서울대 교수(사회학), 이영조 경희대 교수(정치학) 등 NGO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학계 인사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김석준 교수와 이영조 교수는 각각 공동대표와 사무총장을 맡아 전체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이 단체에 참가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면면이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표방 이념을 보면 작년 4월에 출범한 ‘비전@한국’이라는 시민단체와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비전@한국은 중도지향의 지식인 모임이지만 시민회의는 중산층 중심의 시민단체”라는 김 교수의 설명대로 이 단체의 창립은 진보 성향이 아닌 지식인들이 직접 시민사회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유별나다.

중도 표방 중산층 시민운동, 실험대 서다

시민단체들은 보수냐 진보냐의 구분을 떠나서 ‘일단 환영’의 의사를 보이고 있다. 사회진보연대와 참여연대에서 각각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는 박진도 충남대 교수(경제학)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진보든 보수든 시민사회 내에서 투명하게 활동하는데 대해서는 원론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영조 교수도 “일반회원 회비 중심 운영, 독립채산제, 예산 집행사항의 홈페이지 공개, 정당이나 정부 등 거대집단과의 거리두기 등 시민운동의 틀 내에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회의는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련을 위시한 2세대 시민운동이 권위주의와 정경 유착 등 과거의 부정적 요소를 탈각시키는 긍정적 역할을 한 반면 점차 진보세력과 연계를 맺어가면서 중산층과는 멀어져 조직노동자나 일부 진보세력 등 소수의 목소리를 ‘과잉대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시민회의 스스로가 주창하는 것은 ‘바른 사회’, 즉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말없는 다수의 대변자’ 역할론이다. 김석준 교수는 “해방직후부터 반민족, 친재벌,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에 의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오용됐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말없는 다수’에 대한 질문에 김 교수는 “조직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진 노동운동이 대변하지 못하는 미취업노동자, 청년실업자도 될 수 있고 다수의 진보와 일부 극우만이 펼쳐져 있는 시민사회가 미처 끌어안지 못하는 다수의 중산층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대로만 적용한다면 특정한 계층보다는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과 같은 시민운동 공간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연합 자체를 염두에 둔 셈.
이렇게 ‘잘 다뤄지지 않고 모호한’ 지지계층은, 시민회의의 운용방향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던져준다. 아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 단체의 활동은 9명의 상근간사를 제외한다면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영조 교수는 “최근 며칠 사이에 회원이 천명이 넘게 가입했다”며 “일반인에 대해서는 당분간은 온라인 위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석준 교수는 “언론플레이 위주의 시민운동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중도 혹은 온건보수를 지향하는 시민들의 모임으로 오프라인에서까지 활성화될 지 여부는 앞으로 두고 보아야 할 듯하다.

떨쳐버리지 못한 ‘이념의 시선’

시민회의의 관련자들은 한결 같이 자신들을 특별한 이념의 눈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주문한다. 지난 시절의 이데올로기 지형으로 자신들의 활동을 섣불리 재단하지말고 실사구시와 실용주의의 모습을 평가해 달라는 것이다. ‘예산 소비자인 납세자의 입장에서 정부의 예산 과정을 감시하겠다’는 ‘납세자 운동’이 전형적인 예다.
하지만 이 단체에는 과거 권위주의와 관치경제가 횡행했던 시절, 정권에 직접 참여했던 정관계 인사 상당수가 참여하고 있고 상식적인 중도나 보수로 여기기 힘든 수구적 인사까지 들어있어 과연 스스로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체성을 지킬 수 있겠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시민단체에 깊게 참여하고 있는 한 교수는 “정부나 정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솔직히 기업이나 거대보수언론과 결탁해 기득권의 정서를 대변하는 단체로 들러리를 서게 될까봐 걱정”이라며 “이미 거대언론이 ‘중도’로 포장하고 부각시키는 현상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박진도 교수 역시 “정체성부터 확실하게 만들어 지지계층을 밝혀야 스스로 활동하기에도 힘이 붙을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영조 교수는 “정치색을 배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실 사회운동을 비판하면서도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간 시민회의가 넘어야할 파고가 만만치 않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시민회의가 과연 일부 지식인들의 권력추구 공간이나 중도를 표방하는 기득권 옹호 단체로 흐르지 않고 시민운동의 올곧은 성숙을 이루는 주춧돌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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