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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만들어 온 인간지성의 발달사 … 과학의 윤리는 무엇인가
문화를 만들어 온 인간지성의 발달사 … 과학의 윤리는 무엇인가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9.10.12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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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 『인간등정의 발자취』·『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인간등정의 발자취』 제이콥 브로노우스키 지음│김은국·김현숙 옮김│바다출판사│2009 개정판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존 벡워드 지음│이영희·김동광·정명진 옮김│그린비│2009

한 권은 번역 신간이지만, 다른 한 권은 몇 번의 출간을 거친 개정판이다. 문명과 과학, 과학과 현실을 오가는 깊은 시선은 우리의 삶이 나아가는 방향, 철학적 좌표를 늘 되묻게 만드는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다. 제이콥 브로노우스키의 너무나도 이름난 책 『인간등정의 발자취』(김은국·김현숙 옮김, 송상용 감수, 바다출판사)와 하버드대 의대 유전학 교수인 존 벡워드의 열정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이영희·김동광·정명진 옮김, 용어 감수 전방욱, 그린비)가 그런 책이다.

    브로노우스키의 책은 1976년 삼성문화문고본 『인간역사』로 이종구가 번역 소개했지만, 문고본 형태라 상당한 축약을 거친 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1985년 재미작가 김은국이 번역해 원서의 높은 문학적 향기를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은 바로 그 번역자 김은국과 그의 번역을 도와준 김현숙이 함께 작업해 2004년 출간했던 양장판을 격식과 무게를 쏙 빼서 보급판으로 개정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 제이콥 브로노우스키는 시인 블레이크의 권위자로, 과학과 문학 두 문화에 걸친 해박한 지성으로 정평 있는 인물이다. 브르노우스키의 이 책은 1973년 출간됐다(『The Ascent of Man』).

생물학적 진화? 문화적인 진화!
    워낙 유명해진『종의 기원』에 묻혀 빛바랜 다윈의『인간의 유래』가 인간이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임을 주장했다면, 브로노우스키의 『인간등정의 발자취』는 문명이라는 꽃을 피워낸 인간의 탁월성을 강조하면서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이 일련의 발명을 통해 자기 환경을 개조해온 것은 일종의 다른 종류의 진화, 즉 생물학적 진화가 아니라 문화적인 진화인 것이다. 나는 그 문화적 산봉우리의 연속을 ‘인간의 등정’이라 부른다”고 피력한 부분을 조목조목 보여주고 있다.

    감수를 맡은 송상용 교수는 “이 책은 인류의 문화적 진화의 원동력인 인간 지성의 발달사이다. 예술, 문학, 종교, 건축 등 광범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과학사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역사라기보다는 철학, 과학보다는 현대판 ‘자연철학’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설명한다. 수학자, 생물학자, 시인, 비평가이자 과학해설자, 행정가를 겸한 그의 삶이 말해주듯 그는 가히 ‘현대의 르네상스인’으로 불림직하다. 책의 구성 역시 그의 ‘르네상스인’으로서의 면모를 잘 드러낸다.

첫 장의 제목이 ‘천사 아래 있는 존재’로 시작해서 마지막 장 ‘긴 유년 시대’에서 막을 내렸는데, 의미심장한 명명이 아닐 수 없다. 곁들인 칼라 도판,사진들도 흥미를 돋우어준다.

    존 벡워드는 어쩌면 책보다 그의 삶의 이력이 더 흥미로울 수 있다. 책의 부제는 ‘68에서 게놈프로젝트까지’인데, 찰스 다윈과 다른 곳에 브로노우스키가 서 있는 것처럼, 존 벡워드 또한 브로노우스키와 다른 곳에 서 있다. 옮긴이들이 설명했듯, 『과학과 운동 사이에서』는 제목 그대로, 그리고 부제가 환기하는 것처럼, 한 과학자의 치열한 현실과의 싸움을 그대로 노출한다. 옮긴이들의 말을 들어보자.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과 유럽에서 조성됐던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과학자 사회에 어떻게 투영됐는지, (……) 특히 1960년대 미국과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 몰아닥친 혁명의 분위기가 개개인들의 미시적인 삶의 양식을 어떻게 변모시켰는가에 대한 묘사는 마치 영화나 소설을 보는 것처럼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인간의 겸손과 삶의 좌표
이 진보적 사회운동가는 과학 영역에서 사유하며 살았지만, 그의 두 발은 대지 위에 견고하게 서 있었음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사례에 해당한다. 생화학과 유전학을 전공한 그는 1969년 대장균 박테리아에서 유전자를 분리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성공은 그러나 그에게 새로운 불안을 제공하고 말았다. 유전자 치료를 통한 질병 극복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지만, 유전자가 개인에 대한 통제와 차별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예상되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 기자회견은 동료들로부터 그를 ‘과학의 반역자, 배신자’라는 손가락질을 당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존 벡워드는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길을 갔다. 쿠바 미사일 사태에 대한 미국 정부의 호전적 태도에 항의하는 시위 속에 걸어들어갔으며, 핵무기에 반대하는 대규모 국제적 시위행진에도 참가했으며, 동료 연구들과 함께 미 대사관을 방문해 베트남전 개입에 항의하기도 했다.

    하버드 의대 교수로 보스턴에 돌아왔을 때도 그는 결코 조용하게 지내지 않았다. 흑인 학생들이 더 많이 하버드 의대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학장과 동료 교수들을 설득했다. 에드워드 윌슨에 의해 주창된 사회생물학에 곱지 않은 시선을 가졌다. ‘사회생물학그룹’을 만들어 사회생물학이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이런 각성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노력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살아온 과학자이자 현실의 한 고뇌하는 인간의 삶이 녹아있는 ‘자전적 과학 에세이’다.

    책은 ‘메추라기 농부와 과학자’를 첫 장으로 해서, ‘과학자와 메추라기 농부’를 끝 장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브로노우스키와 또 다른 그의 면모가 있다. 세계사의 무대 정상에 오른 인간 등정의 힘보다는 인간의 겸손을 강조한 부분 말이다. “나는 우리 과학자들이 하는 일을 사랑하며 이 점에서 과학이 뭔가 줄 것이 있다고 믿지만, 과학의 힘에 대해서는 덜 오만한 태도를 선호한다. 우리는 과학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좀더 겸손해야 하며, 과학의 객관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과학을 사회문제들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선언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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