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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실] 칼바람 치는 연구 공간
[나의 연구실] 칼바람 치는 연구 공간
  • 교수신문
  • 승인 2009.10.0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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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신위원(석사과정), 양승범(석사과정), 박창근 교수, 김현우(석사과정)
사진제공: 관동대 토목공학과
지방 사립대학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졸업생들이 수도권에 있는 대학원 진학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입학시험 보다 상대적으로 대학원의 입학이 쉽고, 같은 값이면 수도권에 있는 집 가까운 대학에 진학하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거기다가 수도권이라는 지역적 유리함이 더해져 있으니 출신대학을 등지고 떠나가는 제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최근 수도권 규제완화 바람까지 보태져 지방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고 지자체의 분권화는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

필자의 전공은 토목공학에서 하천정비, 댐건설, 지하수 등 물과 관련된 분야에 해당한다.  물이라는 전공 특성 덕분에 2007년 대선과정에서부터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었던 한반도 대운하 논란에 깊숙히 관여하게 됐다. 운하반대 전국교수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리나라에서 운하를 건설하는 것은 공학적 입장에서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 후 정부는 2008년 말 운하의 연장선상에서 4대강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고, 6개월이란 짧은 연구과정을 거쳐 지난 6월 8일 22조원의 대형국책사업이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드러냈다. 필자는 하천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학제간의 연구를 수행하는 ‘생명의강 연구단’에 참여해 4대강 사업이 가지고 있는 공학적 문제점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현장을 보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범한 진리에 근거해 낙동강, 한강, 영산강, 금강 등 4대강을 직접 현장조사했다.

지난 2월 25일 아침 8시부터 3박 4일간 진행된 낙동강 현장조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무려 60여명이 참여했고 필자가 조사단장을 맡았다. 낙동강 하구언에서 시작된 조사는 270km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 낙동강과 내성천이 합류하는 삼강주막에 이르러서야 끝났다. 2월,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살을 에는 듯하고, 달리는 배에서 튀는 물과 얼굴을 때리는 바람은 말 그대로 ‘칼바람’이다. 필자는 달리는 배위에서 지도와 현지지형을 비교하면서 관측지점을 찾느라 칼바람에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관측지점에서 배가 멈추면 대학원생들이 나선다. 유속을 측정하고 하천바닥의 토양을 채취하고 용존산소를 측정해 물을 시료통에 담는다. 수심이 얕으면 고무 옷을 입고 직접 하천에 들어가 현장조사를 수행한다. 몰아치는 바람과 차가운 물이 전달하는 냉기로 학생들은 겨울의 끝자락을 원 없이 끌어 안았을 것이다.

4대강 현장조사의 목적이 무엇이며 무엇을 관측할 것인지에 대해 사전에 설명을 했지만 필자도 현장조사의 당위성을 확연히 인지 못한 상태인데, 대학원생들이야 오죽했으랴. 선생 잘못 만나 방학이 끝나기 직전에 이 무슨 생고생을 하는지 마음 속으로 원망도 했으리라. 개학하자 주말만 되면 영산강으로 금강으로 그리고 울산 태화강으로 현장조사를 하러 떠난다. 학교가 강릉에 위치한 관계로 영산강에서 관측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출발하면 새벽녘이나 돼야 강릉에 도착한다. 다음 날 수업은 그대로 진행되고 리포트 역시 기다리고 있다. 중간고사 기간에 진행된 한강조사는 마지막 조사였는데, 4월 21일 몰아친 세찬 비바람은 우산과 비옷을 뚫고 속옷까지 적셨다. 일정을 더 늦출 수 없기 때문에 해질녘까지 강행한 현장조사에서 추위와 피로감에 말을 잊고 기계처럼 관측을 하던 학생들의 애처로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선생으로서 별로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묵묵히 현장조사를 수행하고 실험실에서 분석을 성실히 한 학생들이 고맙기만 하다. 그것도 별다른 보수 없이 공짜로(!).
잘못된 논리로 4대강 사업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왠지 허망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나라 하천을 살리는 올바른 길도 현장에서 배웠을 것이다.

박창근 관동대·토목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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