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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삶의 문제 치유하는 학문 … ‘인간의 문제’ 실종된 오늘, 새로운 가능성 주목”
“철학은 삶의 문제 치유하는 학문 … ‘인간의 문제’ 실종된 오늘, 새로운 가능성 주목”
  • 교수신문
  • 승인 2009.10.0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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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철학 상담 권위자 메리노프 교수 vs 이광래 교수

● 일시: 2009년 9월 20일 오전 11시
● 장소: 강원대 인문대학 교수휴게실
● 사회: 김종미 강원대 교수(영어영문학과)
● 대담자
   - 루 메리노프 교수(City College of New York)
   - 이광래 강원대 교수(철학과)

지난달 18일부터 이틀간 강원대에서 열린 ‘인문치료 국제 학술대회’는 인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한 자리였다. 인문학 위기 현실을 성찰하는 데서 나아가 인문학의 새로운 치유 가능성 모색에 방점을 친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한 철학상담분야의 권위자인 메리노프 교수를 이광래 강원대 교수(철학)가 만났다.

● 루 메리노프 교수
- 뉴욕시립대학 철학과 학과장  쪾미국철학상담가협회 회장  쪾<철학실천> 편집인  쪾2001~2007, <세계경제포럼> 위원  쪾1997~ 신문, 잡지, 라디오, TV를 통한 철학상담 활동  쪾1997~2003. ‘철학자 포럼’(월례, 맨해튼 6번가 Barnes and Noble)

김종미: 최근 들어 철학을 상담이나 치료에 도입하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는데 아직은 생소한 분야이다. 대담을 진행하기 전에 메리노프 교수가 간단한 소개를 해주기를 부탁한다.

메리노프: 철학은 잘 알려져 있듯이 2000년 이상 동안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하는데 종사해왔기 때문에 철학상담이 생소한 분야라고 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아고라(시장)에서 철학실천을 하지 않았는가. 철학은 현대에 들어서도 소크라테스가 했던 것과 동일한 임무를 맡고 있다.

이광래: 메리노프 교수는 기조 발표에서 보쉬의 ‘바보 치유’를 언급하고 있는데 15세기에 많은 화가들이 그러한 종류의 그림을 그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메리노프: 나는 미술사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미술가들은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들이고 따라서 곧 도래할 과학의 시대를 예견하고 그러한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보쉬는 당시 사회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그림을 통해 암흑시기로부터 과학의 시대로의 이행을 예측한 것으로 보인다.

이광래: 보쉬가 그 그림을 그렸을 15세기 당시는 중세로부터 인간중심의 시대인 르네상스로 이행 중이었다. 이성중심의 사회에서는 비이성적 존재에 대해 사회가 어떤 대처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바보(Folly)에 대응하는 독일어 ‘Narr’는 ‘정신이상자’이다. 즉 폴리들은 사회에서 배제돼야 할 존재였다. 바보의 구체적인 지칭대상은 정신이상자다.

보쉬의 그림과 철학의 역할

메리노프: 바보는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한다. 이성중심 사회로 전환하는 것은 그 과정이 직선적이지 않고 여러 우회적인 통로가 있다. 어느 사회에나 바보들은 있기에 그런 사회에서 철학은 분명 어떤 역할을 해 낼 수 있다. 보쉬의 그림이 바로 그 점을 잘 나타낸다.

김종미: 미국에서 철학상담의 위상에 대해 설명해 달라.

메리노프: 나는 철학상담이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다. 우선 철학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철학상담가를 훈련해야 한다. 또한 미국의 경우 정신의학, 심리상담, 철학상담과 같은 전문가 영역 간 경쟁이 치열하다. 그들은 철학상담가를 경쟁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철학상담가 자격증 제도, 의료보험 이용과 같은 제도적 장치들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들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심리치료나 정신치료와 같이 이미 존재하는 치료 영역과 긴장관계에도 불구하고 상호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 이광래 교수
- 고려대에서 박사를 했다. 강원대 철학과와 중국 랴오닝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는 『미셸 푸코-광기의 역사에서 성의 역사까지』,『해체주의란 무엇인가』등이 있으며, 『말과 사물』, 『사유와 운동』등의 역서가 있다.

이광래: 메리노프 교수는 주로 철학상담에 대해 포괄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 연구재단이 지원하는 강원대 인문치료학 사업단과 시각적 차이가 있다. 인문치료 사업단이 하고 있는 문제는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대학이나 사회에서 철학의 새로움을 추구하고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미국과 한국은 동일한 처지에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철학 상담’에 치중하고 한국의 경우 ‘철학 치료’에 치중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김종미: 철학상담이라는 분야가 인문학의 원래 기능에 속하는가, 아니면 기존의 기능을 새롭게 부각한 것인가.

메리노프: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이다. 철학상담은 오랜 전통에 속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리스어로 ‘테라피’는 ‘문제에 관여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지금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다양한 직업, 규칙, 제도 등이 생겨났다. 이러한 복잡성을 갖는 사회는 철학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특히 포스트모던 이후에 사회의 복잡성이 달라졌으므로 그에 대응하는 철학자의 역할도 상당히 달라졌다.

이광래: 나도 그 점에 동의한다. 그러데 2009 인문치료 국제학술대회에서 메리노프 교수는 ‘철학상담’, 나카오카 교수는 ‘임상철학’, 강원대학교 사업단은 ‘철학치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용어상의 차이는 방법과 관점의 차이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 혼동을 야기할 수 있다. 이 문제는 국제회의와 대화를 통해 의견 접근을 해야 한다고 본다.  용어 차이를 좁혀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좋겠다.

메리노프: 우리는 현재 혁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심리학의 경우를 보면 무려 300여 가지의 학파가 있다. 또한 이 교수는 명칭 문제가 일반인들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철학 상담의 토양이 다르면 그 열매도 다를 것이고 명칭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경험으로 알고 있듯 명칭 문제는 회의를 통해 결정될 문제도 아니다.

이광래: 여기에는 용어의 선점성도 개입돼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과학 분야에서는 한동안 선점된 용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므로 용어 선점에 비중을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 영역 간에서 그 문제는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클리닉’이나 ‘테라피’는 의학 용어이므로 철학상담가들이 그 용어를 사용한다면 의학 분야에서의 반발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메리노프: 나는 용어의 의미 문제는 선험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했듯 용어의 의미는 사용을 통하여 결정된다. 이러한 점에서 철학상담의 경우 실천에 비해 이론은 덜 중요하다. ‘practice’나 ‘service’가 더 중요하다. C. P. 스노우는 자신의 저서 『두 문화』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간극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뉴턴이나 보일은 과학자가 아니라 자연철학자라고 불리었다. 우리는 그 간극을 극복해 두 영역을 다시 연결해야 하는데, 그 단서는 ‘인간’에 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고, 인간적 가치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통하여 그러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김종미: 철학상담과 일본 오사카 대학의 나카오카 교수가 제기한 임상철학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광래: 나카오카 교수가 제시한 임상철학은 현장중심이 아닌 것 같다. 종이 안에서의 클리닉에 대한 이론인 듯 싶다. 토론의 쟁점 역시 인문치료나 철학치료와 사회적 관계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방법을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일본에서는 아직 간접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단계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강원대 인문치료 사업단은 실천중심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실천에서 출발해 이론으로 나아가는 방식과 이론에서 출발하여 실천으로 나아가는 방식이 있다. 각각의 방식은 장단점이 있겠지만 사회적 관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첫 번 째가 더 효과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메리노프: 과학과 마찬가지로 철학상담도 이론과 실천은 상호 의존적이다. 철학상담가 중에는 내담자와 상담 한 번 하지 않고 이론화에 치중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로 내담자를 많이 만나지만 이론적 측면에 약한 사람도 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 철학상담가협회는 간호사, 의료종사자, 운동치료사, 미술치료사, 사회복지사 등에게 철학상담 이론을 교육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광래: 그러한 활동은 현 시대에서 철학이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을 반영하긴 하지만 너무 교육적이고 간접적이다. 새로운 관계를 고려한다면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메리노프: ‘교육적’이라는 것과 ‘간접적’이라는 말의 차이는 무엇인가. ‘직접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이광래: 메리노프 교수는 기조 발표에서 마리나와 게리와 같은 상담 사례를 제시했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서비스는 부모나 친척, 친구와 같은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간접적이다. 그것을 꼭 치료적 상담이라고 할 수 없다. 제시된 사례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적극적 방법이 필요하다. 또한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종사자들을 교육시켜 그들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치유하게 만드는 방법은 교육적이면서도 간접적이다.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을 만나서 그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심리치료를 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교도소나 군대를 찾아가든지, 초중고 학생들을 직접적으로 만나 구체적으로 심각한 삶의 문제에 빠진 상대들을 만나고 또 그 치유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적 요소 회복과 ‘다리이론’

메리노프: 그 차이를 지적해 줘서 고맙다. 여기에는 미국적 상황이 개입돼 있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사례가 제시된 것이다. 현대사회는 계속 발전해 왔지만, 정작 인간의 문제는 실종됐다. 많은 종류의 테라피가 있지만, 인간적인 부분은 많이 빠져있다. 철학 상담이 그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21세기 인문학의 방향도 인간성의 회복이 올바른 방향이지 않겠는가. 철학 상담이나 치료 실험 역시 인간성을 회복하고 그들 스스로가 자신이 인간적인 가치가 있다고 여기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김종미: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이다. 간단히 철학상담이 유행하게 된 계기와 전망 등에 대해 말해 달라.

메리노프: 의학이 진보하면서 모든 정신 문제가 ‘의학적 문제화’되고 있으며 인간적 요소가 실종되고 있다. 이 점에서 철학상담은 실종돼 가는 인간적 요소를 회복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 나는 철학상담이 이전 시대에 비해 21세기에 더 유행할 것이라고 본다.

이광래: 조금 추상적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최근 몇 년간 내가 주장하는 이론 중에 하나가 다리이론이다. 다리가 가진 역할은 이쪽과 저쪽의 연결이다. 철학 상담이든 철학 테라피이든 중요한 것은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철학의 중요한 새로운 역할 중의 하나가 위안 받고 싶고 공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다리가 돼 주는 것이다. 21세기 인문학의 과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그동안 우리 문제는 실제 세계에서 이뤄지는 것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사이버 세계에 들어와 있다. 특히 어린 학생은 하루의 절반 이상을 그곳에서 보내고 있으며 앞으로 그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실제 세계와 사이버 세계 간의 다리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인문학의 과제가 될 것이다. 즉, 실제 세계와 가상세계가 항상 공유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 앞에 떨어진 과제가 될 것이다. 인문학이 21세기 상황에 맞는 새로운 타입들을 만들어낸다면 대단히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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