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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의 의식·번역행위의 궁극 지향점은 무엇인가
번역가의 의식·번역행위의 궁극 지향점은 무엇인가
  • 교수신문
  • 승인 2009.09.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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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새로운 연구지평 모색한 ‘번역과 비평’ 국제학술대회(9.24~27)

국내외를 막론하고 번역을 중심으로 문학의 수용과 인문학의 전개과정 전반을 성찰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배경에는 문화교류 전반을 바라보는 참신하고도 실질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시대의 요청에 번역학이 부합한다는 이유가 있다. 국내의 번역에 대한 성찰이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동참하고, 고유한 학술적 독창성과 깊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유수 연구자들과 학제적 교류를 모색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의 상호교류를 통해 번역학은 국내에 새로운 연구지평을 제시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문학이 처한 작금의 열악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가 될 수 있기에 그러하다.

고려대 BK21 ‘번역비평가양성사업팀’(팀장 이영훈 교수)과 한국번역비평학회(회장 황현산 교수)가 프랑스문학사학회(Soci´et´e d′Histoire litt´eraire de la France, 회장 마르크 퓌마롤리 교수)와 공동으로 지난 24일부터 나흘동안 고려대에서 서구 근대 최초의 번역이론가인 에티엔 돌레(Etienne Dolet, 1509~1546)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번역과 비평’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것도 바로 이러한 취지를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프랑스, 캐나다, 일본, 중국 등지에서 번역 연구에 매진해온 대표적인 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국제학술대회에 BK21 ‘번역비평가양성사업팀’과 ‘프랑스명작소설번역평가연구단’에 소속된 연구원들이 발표하게 된 것은 국내 번역학 연구의 국제적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제간 학술교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학술대회는 번역의 역사, 번역문학의 쟁점, 번역과 시학, 번역비평 등을 망라하는 총 5개의 세션과 박사과정생의 발표만으로 이루어진 독립 세션으로 구성됐다.

번역사에서 번역철학까지 고루 조명
1부 ‘번역과 비평’ 세션은 르네상스 문학 연구의 대가로 인정받아온 마리 뤼스 드모네투르대 교수가 제기한 돌레의 번역방식에 대한 물음을 필두로, 르네상스 문학의 맥락에서 번역의 자율성이라는 화두를 끄집어낸 손주경 교수(고려대)의 발표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문학의 프랑스 번역에 나타난 특징을 세밀하게 살펴본 토시노리 우에타니 투르대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2부 ‘번역과 수용’ 세션에서는 유석호 연세대 교수가 프랑수아 라블레의 한국어 번역 문제를 다루었고, 이영훈 고려대 교수가 라블레의 작품이 현대프랑스어로 재 번역되는 과정 전반을 점검했다. 아울러 몽테뉴(이선희, 고려대)나 장 폴 사르트르(변광배, 한국외대)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저서들이 번역된 현황과 수용양상을 연구한 발표가 뒤를 이었다.

3부 ‘번역과 시학’ 세션에서는 르네상스 번역과 시의 관련성에 대한 미레이 위숑 소르본대 교수의 발표와 성서의 운율 번역이 드러내는 제반 특징을 다룬 겡고 이토 도시샤대 교수의 발표, 시인과 시인의 시 번역 간의 친밀성을 다룬 크리스틴 롱베즈 낭트대 교수의 발표가 학술대회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
4부 ‘번역과 철학’ 세션에서는 제라르 데송 파리8대 교수가 데카르트의 라틴어 텍스트가 프랑스어로 번역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았으며, 마유코 우에하라 메이지대 교수가 일본 철학서의 문체 번역 전반의 문제점을 짚어주었다.

5부 ‘번역과 이론’ 세션은 시조의 프랑스어와 영어 번역에 드러난 난점과 관건을 다룬 조재룡 고려대 교수의 발표, 번역의 관점에서 신구논쟁을 조명한 신정아 한국외대 교수의 발표, 문화적 다양성 시대 속에서 번역의 역할을 살펴본 쉬 준 난징대 교수와 번역과 타자의 관계를 살펴본 세리 시몽 콩코르디아대 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이외에도 번역학 연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박사과정생들(프랑스, 일본, 한국)이 랭보 작품의 한국어 번역 수용사, 라블레의 일본어 번역의 문제점, 프랑스 희곡작품의 영어 번역과 한국 희곡작품의 프랑스어 번역에 드러난 난점과 관건, 루이스 캐럴의 번역에 나타난 속담번역 문제, 스탕달의 한국어 번역 수용과 재번역의 문제 등을 독립 세션에서 발표했다.

번역을 화두로 르네상스 문학, 번역문학, 시학, 비평, 언어학, 철학, 문화 등을 심도 있게 다룬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번역의 선택과 번역가의 의식, 번역 연구와 문학 연구 사이의 연관성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번역행위의 궁극적 지향점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번역과 철학 세션이 독립된 자리를 차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철학서의 번역을 주제로 삼아 텍스트를 구성하는 ‘내적 힘’을 간파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제라르 데송 교수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데송 교수는 철학텍스트를 번역하는 것은 사상을 번역하는 것이며, 그런 이유로 번역의 시학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모든 번역이 언어작용과 관련돼 있다면, 철학텍스트의 번역은 개념을 내포하고 동시에 그것을 드러내는 언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언어가 제안하는 모든 가능성의 영역을 고찰해야한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런 제안은 돌레의 번역의식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안에서 찾아본 드모네 교수나 롱기누스와 같은 그리스 수사학의 방식에 루이즈 라베의 번역관을 위치시켜 고찰한 위숑 교수의 연구, 그리고 번역을 통한 외국문학 수용 전반을 다루고 있는 여러 발표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번역과 철학의 필연적 연관성을 넘어서서 이른바 ‘번역의 철학’을 정립하기 위한 시도와 그 필요성이 정치하게 환기된 것이 이번 국제학술대회가 이루어낸 커다란 성취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외국문학 수용과 동서 학술교류 가능성
‘번역과 비평’ 국제학술대회는 ‘번역’이라는 매개를 통해 인문학의 새로운 연구지평을 탐색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탐색은 완결되지 않았으며, 어느 한 순간에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비교문학의 방법론과 그 적용의 실천적 무기로서의 번역이라는 화두를 포착해내고 이를 중심으로 ‘번역과 비평’이라는 주제에 접근한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프랑스어권의 번역 연구를 위한 넓은 안목이 필요하며 국제적인 공동 연구를 지속적으로 제안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 주제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과제를 남겨놓았다. 번역이라는 지적운동이 세계문학과 번역학 발전에 끼친 중차대한 영향력을 객관적으로 가늠해보고 그 의의를 다양한 각도에서 점검하기 위해서는 동서양의 학술적 가교를 건설하는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 한국번역비평학회 http://www.translationcriticism.or.kr
>> BK21 번역비평가 양성사업팀   http://bk21.kufra.org

 

손주경  고려대·불어불문학

필자는 프랑스 투르대학에서 ‘르네상스 궁정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르네상스 궁정의 시인 롱사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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