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1:45 (목)
법인화 핵심은 지배구조 변경 … 재정문제는 아무 연관 없다
법인화 핵심은 지배구조 변경 … 재정문제는 아무 연관 없다
  • 최갑수 서울대·서양사학과
  • 승인 2009.09.21 15: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대 법인화법, 이렇게 본다]반 대

대학본부는 법인화의 명분으로 자율권의 확보와 획기적인 재정확충을 제시한다.
법인화는 과연 대학의 자치를 보듬어줄 것인가? 법인화의 핵심은 대학지배구조의 변경이다. 서울대는 지금까지 국립대로서 국가의 영조물이었던 반면에, 이제 법안을 통해 독자적인 법인격을 부여받고 이사회를 주체로 하는 법인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따라서 법안이 말하는 자율성의 주체는 국립대학법인, 이사회, 이사장, 총장으로 이루어진 운영상의 주체를 뜻할 뿐, 대학의 고유기능인 교육과 연구를 행하는 그 구성원들을 포괄하지 않는다. 법안은 진정한 의미의 자율성, 곧 대학의 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점에서 현행 국립대체제 역시 미비하나, 국립대는 존재 자체가 대학의 사단법인적 성격을 일정하게 반영한다. 법인화가 이뤄지면 교육과 연구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대학의 공동체성을 보듬을 수 있게 훨씬 세심한 배려가 뒤따라야 하는데, 법인화와 얼마든지 양립 가능한 총장직선제마저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이사회의 구성을 보면, 정부의 입김이 오히려 더 드세질 전망이다. 따라서 법인화를 통해 서울대는 이전처럼 정부의 통제를 계속 받으면서 총장의 내부 권한이 극대화되는 가운데 그나마 남아있던 대학의 공동체성이 급격히 약화될 것이다.

    다음으로 서울대는 법인화로 대학재정의 대폭 확충을 꾀할 수 있을까? 법인화는 지배구조의 변경이 핵심이며, 재정문제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법인화와 관계없이 현재의 열악한 재정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 추진 측에서 법인화가 재정 확충의 유일한 방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을뿐더러 재정 지원과 법인화를 맞바꾸는 정치적 거래의 의혹마저 풍긴다. 실제로는 어떻게 될까. 두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법안이 대학본부가 고대하는 재정적 특혜를 보장하는 경우다. 서울대몰아주기가 내부의 지지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OECD 국가 가운데 최악의 고등교육재정에서 지방 국립대의 붕괴를 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부의 법인화 추진 목적이 대학발전이기는커녕 대학을 시장 논리에 내맡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 고등교육의 예산요구액이 올해의 예산보다 도리어 줄어들었다.

법안을 믿고 법인화가 이뤄지면, 정부의 지원이 평년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수익사업이나 기부금모집에 목을 맬 것이며 결국 손쉬운 해결책인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결과 교육과 연구에서 공공성과 시장논리 간의 균형이 결정적으로 깨져, 대학은 교육과 연구, 비판적 성찰력의 함양이라는 본령을 놓치게 될 것이다.

    법안의 작성과정과 내용은 무엇보다도 서울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결여한다. 서울대가 지난 60여 년간 국립대로서 국내 최고의 대학으로 성장했다면, 마땅히 국립대의 위상과 구실은 무엇이고 다른 국립대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며 사립대를 포함한 고등교육 전체,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서울대의 존재성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치열한 성찰이 있어야 하는데, 서울대 특권의식 이외에 진정한 개혁의지를 찾기 어렵다.

    우리는 현재의 서울대가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정한 개혁이지 개혁을 가장한 시장주의, 서울대 이기주의, 교육당국의 무능과 제몫 챙기기가 아니다. 진정한 개혁이란 서울대의 뼈를 깎는 자기혁신과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말하며, 교육과 연구의 발전에 기여해 우리 대학체계가 독자적인 학문재생산의 토대를 갖추는 것이다. 서울대와 교육당국은 국·공립대와 사립대, 수도권대와 지방대,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균형발전을 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고민하고 내놓아야 한다. 우리사회의 성장은 대학의 도약을 요청하며 물적 기반도 만들어냈다. 이제는 정부가 고등교육을 방기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진정한 국가발전대계를 꾀할 때이다.

 

최갑수 서울대·서양사학과

한국서양사학회장, 한국프랑스사학회장 등을 지냈고,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전국교수노조 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