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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 미술, 그 무형식성의 무의식
관제 미술, 그 무형식성의 무의식
  • 조은정 한남대 겸임교수·미술사
  • 승인 2009.09.21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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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조은정, 『권력과 미술』(아카넷, 2009)

전시대의 관습과 제도의 틀을 깨고 인간정신 승리의 월계관으로서 예술이 자리하리라 믿었다. 원칙이 고수되는 아카데미즘에 경도된 화단에 반기를 들며 나타난 모더니즘은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어야 했다.  백자, 한복 입은 여인, 고궁풍경 등 전통을 소재로 한 작품은 민족주의의 틀 안에서 이해될 줄 알았다.
수화 김환기는 “조형미를, 민족을, 나는 도자기에서 배웠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모더니즘과 전통 모두 지향점은 한국이라는 국토인식을 바탕으로 한 ‘세계화’에 있었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모더니즘과 전통은 동전의 양면이었던 것이다.

    한국 현대화단을 견인한 미술인들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수상작을 내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아카데미즘’으로 규정했다.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제도로서 ‘國展’의 당선작은 국가가 지명한 위원회인 예술원에서 위촉한 심사위원들에 의해 선정됐다. 심사위원을 선택하는 이들은 국가의 의지를 대신했다고 여겨졌다. ‘국전’이 민간에 이양된 후에도 예술원은 여전히 정원제를 고수하며 만장일치제로 새로운 회원을 영입하고 있는 현실을 보았다. 그리하여 그러한 제도가 시행된 제1공화국의 미술계와 권력의 관계에 대한 가설을 수립하고 증거를 수집했다.

    필자의 『권력과 미술』은 대한민국 제1공화국기 국가권력이 미술을 정책적으로 운용했다는 증거를 들고 이를 해석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연구범위는 1950년대를 중점에 둔 대한민국 제1공화국의 미술현상과 제도이지만 한국 현대미술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틀을 적용시킨 연구이다. 미술작품 모두가 이데올로기나 권력 또는 자본주의만의 결과물은 아니다. 하지만 미술가들은 자신의 역사 속에 위치하며 작품은 사회적 경험을 반영한다. 누구도 사회와 역사 앞에 자유로울 수 없는만큼 심미적인 형식조차 역사적인 경험에서 파생된 것으로 규정했다. 국전, 예술원, 문화인등록 등 수많은 제도를 접하며 제1공화국에서 권력과 미술은 어떤 관계를 형성했는가에 관심이 집중됐다.

 미술계는 국가의 권력을 수용함으로써 무엇을 성취하고자 했는가, 국가나 대통령 이승만 개인은 미술로 무엇을 의도했는가에 대한 의문은 부역미술에 대해 폭넓은 정의를 내릴 수 있게 했다. 제1공화국의 미술제도에 대한 분석은 제도와 법령을 통해 공고히 하려 했던 권력의 속성을 파헤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아래 복속하고 노출된 미술의 양상을 통해현대 한국미술사를 반성적으로 반추하는 데 소정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에 노출된 미술의 비극성


    미술에서 권력은 미술가와 작품에 직·간접적인 강제성이 행해지는 사회의 간섭 내지 통제이다. 제1공화국기의 미술제도는 ‘국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쟁을 겪으면서 양산된 것인 만큼 時局性이 강했다. 미술정책은 강압적인 국가권력에 의해 제도화됐고, 미술인은 그 미술정책 아래 자발적 참여의 형태로 동원됐다.
    한국의 근대화단이 생성된 이후 가장 대규모로 결집한 미술단체가 이 시기에 처음 등장한 것은 미술가들이 사회적 신분에 대한 의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분에 대한 인식은 국민으로서 미술인의 책무를 인식하는 통로이므로 국가 또는 정부 권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다. 미술작품이 관객을 대면하는 전람회가 ‘국전’처럼 권력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됐을 때, 작품 또한 권력의 주체가 의도한 목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회에서 작품의 소통 경로를 손에 쥔 권력에 의해 작품이 선택되고 결국 미술인은 선택적 작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국전’에서 미술작품의 사회에 대한 책무를 강조함으로써 권력에 의해 미술이 통제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음은 주목할 점이다.비상체제에서 국가가 운영한 종군화가단 같은 제도는, 이 제도가 시행되지 않았을 때 예견되는 국가의 강한 보복을 바탕에 둔 것으로서 권력에 봉사하는 미술의 합법성을 제공하는 배경이 됐다. 인민군 치하에서 대통령 이승만과 미군을 괴뢰로 그리던 화가는 국군이 진입했을 때 이승만을 김일성으로, 미군을 소련군으로 바꾸어 그리면 됐다는 사실은 권력 앞에 무기력한 미술의 무형식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더니즘·전통조차 작품생산 구조로 작용

    앞서 제기한 모더니즘과 전통은 이론적 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작품을 생산하는 하나의 구조로도 작용했다. 전쟁의 경험은 공산주의적 미술양식을 사실주의로 규정함으로써 추상주의에 자본주의, 자유주의의 색채를 입혔다.

결국 모더니즘은 기존의 틀인 아카데미즘에 대한 반기, 전통에 대한 아방가르드로서 작용하는 힘이 아니라 반공의 형식이었던 것이다. 반공은 친일에도 면죄부로 작용해 친일미술인으로 규정돼 미술인들 사이에 소외되던 이들을 미술의 주요한 정책 수행자이자 집행자 역할을 하게 했다.

전쟁 후 국가의 보복인 부역자 심판이 친일부역에 대한 심판보다 가혹했던 것이며 결과적으로 미술인사이의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미술의 형식을 규정했다. 전통은 정통성의 증좌로 작용했다. 국가나 정부의 권력이 정치적 의도로 미술작품에 관여될 때 전통을 원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국민국가 만들기의 시기임을 의미한다.

   ‘권력과 미술의 관계’는 어느 지역 어느 시대의 미술사를 고찰하든 보편적으로 검토해야 할 명제다. 그럼에도 제1공화국기 새로운 민주적 국민국가 만들기의 과정에서 발생한 양자의 관계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분단 상황에서 민족의 전통은 반공을 빌미로 왜곡되고 이승만 정권의 독재화에 이용되는 식으로 굴절됐던 점을 밝힌 것처럼 이제 나의 과제는 다음 정권의 미술도 동일한 관점으로 자료를 모으고 분석, 종합하는 일을 진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조은정 한남대 겸임교수·미술사

필자는이화여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구상조각평론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에 『한국조각미의 발견』,『비평으로 본 한국미술』 등이 있고, 공저에는 『김복진의 예술세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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