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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전문대학원의 역설
[대학정론] 전문대학원의 역설
  • 한준상 논설위원 /연세대·교육학
  • 승인 2009.09.2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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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교육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반대학원과 특수대학원, 전문대학원 등으로 갈라져 발전해온 대학원 교육이 언제나 어려움을 느꼈던 것은 ‘질적 수월성’을 보장하는 일이었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기기 전까지 우려했던 논쟁들도 거의 잦아들었다. 대학은 정부의 전문대학원 정책에 반발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적 효과나 학부 운영 등이 문제가 되겠지만 전문대학원에 대한 대학의 입장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대학원의 본래 목적은 각 학문분야에서 새로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학자와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특수대학원은 일반대학원과는 조금 다르게 특정 직무 혹은 직업을 위한 재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돼 있다. 전문대학원은 이들 특수대학원과는 다르게 목적이 더 뚜렷하다. 전문직 종사자를 길러 낸다는 목적에 맞도록 전문대학원은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대되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닌데, 한국 대학원 교육의 파행을 익히 알고 있는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줄 세우기와 부의 재생산이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미 로스쿨 도입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대학들은 전문대학원 유치를 명문대학임을 증명하는 전략 중 하나로 여겼다. 대학마다 시설을 확충하고 교수를 확보하는 데 대학 간 과열경쟁이 이뤄졌지만, 그것이 전문대학원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원하는 학생들은 사설 학원에 다니며 법학적성검사인 LEET를 준비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학교와 학생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돼있다는 것이다.

이점은 얼마 전 2010학년도 로스쿨 입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의 접수 인원이 작년보다도 크게 감소한 수준인 8천428명에 그쳤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아직까지 사법고시가 유효하며 변호사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1년에 2천만 원 내외의 등록금과 3년간의 생활비, 입시 준비 비용으로 인한 교육비 부담 등 경제적 문제가 사람들의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둘째로, 전문대학원의 난립은 정부가 그토록 학을 뗀, 사교육의 원인이 되며 학력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장본인 되지 않을 수 없다. MEET, DEET, LEET, KEET와 같은 시험들은 모두 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해 준비하는 전문시험들이다. 대학교 입학을 위한 사교육 문제처럼 대학원 입학에도 사교육이 크게 개입할 소지가 커질 뿐이다. 전문대학원 정책 발표 이후 많은 사설 학원들은 발 빠르게 대응해 정보를 공유하고 입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대학원 입학생들은 모두 현재 학제보다 더 오랜 기간을 교육받게 된다. 해당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소정의 시험에 통과해야만 한다. 이런 긴 교육 기간이 직업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재 학부 교육에 전문성이 없음을 우회적으로 증거하는 것일 수 있다. 전문 석·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원에서 교육을 받아야 전문성이 향상된다는 논리는 사람들이 학위와 학력상승에 집착하게 함으로써 학력 인플레이션을 끝없이 부추길 것이 뻔하다. 그런 학력의 인플레이션은 끝내 사회문제의 한 원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문대학원 교육이 제 길을 가지 못하면, 대학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기 십상이다. 대학이 상업적인 목적에만 탐닉한다면 학문본연의 이상향은 사라진다. 대학교육의 정상화 역시 거리가 멀게 될 뿐이다. 이미 본 것처럼, 2008학년도 대학 입시 일정에서, 로스쿨 유치가 기대되는 대학의 법학과 경쟁률은 낮아지고 철학과나 국문학과의 평균 경쟁률이 상승한 바 있는데, 이것은 철학과나 국문학과가 LEET에 도움이 된다는 예상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의·치학전문대학원 진학에 유리하다고 해서 생물학 등의 자연계열의 입학 점수가 높아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해야 한다. 직업을 얻는 데 필요한 실용적 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학생들은 순수학문을 전공으로 선택해 이를 수단화하려고 할뿐이다. 대학 교육이 대학원 진학을 위한 입시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대목에 이른 것이다.

대학원 교육의 질적 수월성과 대학원 교육이 사회발전과 학문의 발전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총체적으로 점검해보는 일을 한번 해볼 때가 된 것 같다. 대학교육이 부실하고서는 대학원 교육 역시 부실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준상 논설위원 /연세대·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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