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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샹들리에·유겐트슈틸 풍에 가려진 ‘역설의 세계’
화려한 샹들리에·유겐트슈틸 풍에 가려진 ‘역설의 세계’
  • 홍지석 미술평론가
  • 승인 2009.09.0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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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의 궁궐들] ‘僞만주국 황궁’에서 창덕궁을 보다

중국 길림성 성도인 長春의 도심 북서쪽에 ‘僞만주국 황궁’이 있다. 일제가 9·18사변(만주사변)을 기점으로 만주 군벌을 무력으로 몰아내고 세운 만주국(1932~1945) 황제 푸이(溥儀)의 황궁이다. 장춘은 만주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이 무렵에는 新京으로 불렸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우리는 일상적으로 만주국과 만주국 황제의 이름 앞에 항상 가짜, 괴뢰, 꼭두각시 같은 단어를 붙인다. 중국에서는 만주국을 지칭하는 공식 용어로 ‘僞만주국’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요컨대 僞만주국 황궁은 괴뢰국가의 꼭두각시 황제가 머물던 가짜 황궁인 것이다.   

가짜 황궁의 아르느보 인테리어
    실제로 만주국은 괴뢰국, 또는 일제의 위성국가였던 것이 사실이다. 패전 후에 공개된 ‘푸이-혼조 비밀협정’(1932. 3)에 따르면 만주국은 국방, 치안유지, 철도, 항만, 수로 등의 관리, 신설을 일본에게 위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군이 필요한 각종 시설을 적극 원조할 의무를 지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일본인을 중앙, 지방 관리로 임명하고 그들의 선임, 해직조차 관동군사령관의 추천, 동의를 구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석정 동아대 교수가 지적한대로 만주국은 외형상 독립국을 표방했음에도 ‘괴뢰주권국가’일 수밖에 없었다. 같은 맥락에서 그 수반이었던 황제 푸이는 실권 없는 꼭두각시 황제였고 그의 황궁은 僞황궁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만주국 황궁을 방문하는 이들은 필경 당혹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가짜 황제가 머물던 가짜 황궁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손에 잡힐 듯 너무나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져서다. 여기에는 현실로 존재했던 인간의 실제 삶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진짜다.

만주국의 僞황궁 내부 전경(왼쪽). 집무실은 근대적 아르느보 인테리어로 치장했다. 가짜였으나 진짜인 세계가 거기 있었다. 창덕궁 희정당 내부 집무실 풍경도 근대적 인테리어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 우리극연구소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해만든 탓인지 이 황궁의 분위기는 매우 어색하다. 낮은 천장과 협소한 복도도 그렇지만, 황제의 방 바로 옆에 있는 그가 매일같이 찾았다는 이발실, 또 그 근처에 자리한 황후 완룽(婉容)이 애용한 흡연실(그녀는 아편중독으로 병사했다)의 분위기는 황궁에 대한 우리의 고정 관념을 바꿔놓기에 충분하다.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화려한 양식 가운데 하나인 아르누보 또는 유겐트슈틸 풍으로 장식된 인테리어다. 이 황궁은 전체가 화려한 샹들리에와 반짝이는 거울, 원색 커튼들과 정성들여 목재를 세공하여 제작된 가구들, 그리고 당초와 꽃으로 빈틈없이 장식된 벽지들로 채워져 있다. 1930년대 이 곳 연회장에서는 서구식 실내악단이 요한 스트라우스를 연주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화려한 모습 이면에서 나는 시종일관 불편하다. 가구나 벽지의 정형화된 틀 속에서 항상 동일하게 배치되는 당초와 꽃들의 모습이 정해진 틀 속에서 동일하고 단순한 행동을 취할 것을 강요받았던 꼭두각시 황제의 처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빛나는 표면은 ‘깊이없음’을 감추기 위해 거기 있다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발언은 바로 이 공간에 꼭 들어맞지 않는가.

    만주국은 일제 괴뢰국이었다는 점에서도 ‘가짜’로 볼 수 있지만 1930년대 동북아시아의 ‘엘도라도’, 곧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들이 몰려든 판타지의 장을 제공한 국가라는 점에서도 가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주국은 ‘五族協和’나 왕도낙토, 신천지 등의 구호를 내세우며 만주땅으로의 이주와 개척을 장려했다.

 
경제적 궁핍을 탈피하기 위한(물론 독립운동을 위해 떠난 경우도 있지만) 조선인들의 대규모 만주행 엑소더스가 행해진 것도 이 때다. 1930년대에 60만명 정도였던 在滿조선인의 수는 1944년에는 160만~170만 정도로 확대됐던 것이다. 이러한 만주국의 판타지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것은 수도인신경의 명칭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바, 이른바 ‘하이모던(High Modern)’ 판타지다.    

    만주국, 특히 신경은 첨단의 공장, 철도, 신시가지, 상·하수도, 수세식 화장실 등을 구축하고 있던 일본 근대의 실험장(임성모)이었고 속도와 효율을 내세워 옛 것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그 빈자리를 새 것으로 채운 하이 모던국가(한석정)였던 것이다. 만주국황궁에서 이러한 판타지는 청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의 모습이 일소된, 서구화, 근대화된 푸이 자신의 삶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오늘날 이러한 하이 모던 판타지를 판타지 이상의 것으로 보고 싶은 일부 학자들은 일본이 만주국 13년간 정체된 중국 동북지역을 근대적인 자본주의 사회로 탈바꿈시켰다고 주장한다. 실제 1950년대 만주경제가 중국 공장 생산의 33%를 차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주장은 간단히 일축해버리기 힘든 면이 있다. 한편 일제가 이 무렵 만주에서 유린한 인적, 물적 자원이 1930년대 일본 경제 기적의 기반이었음도 사실이다. 여기서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식민지 수탈론 對 개발론 논쟁이 진행 중인 것이다.

‘하이 모던’ 판타지 그 이상의 것


    괴뢰와 꼭두각시를 그저 단순히 가짜, 판타지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현실의 구체적인 폭력과 직결된다는 점 때문이다. 뉴스위크 기자였던 에드워드 베어의 서술에 따르면 무력감에 시달린 푸이는 황궁 안에서 약한 자들에게 끊임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그는 예산을 대폭 삭감해 시종과 환관을 굶주리게 했고 “아래로 끌고 가 체형을 가하라”는 명령을 매일 같이 반복한 나머지 황궁 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다.

황궁 외부에서 만주국의 이름 아래 숨어 일제 관동군이 가한 폭력은 훨씬 더 엄청나다. 그들은 저항하는 자들을 잔인하게 처단하고 만주를 중일전쟁의 후방기지로 삼아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는 가운데 대량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초래했다. 731부대가 자행한 목불인견의 만행은 그 정점이다. 
    다시 한석정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 만주국은 ‘역설의 세계’다. 이 세계는 잔학한 통치와 첨단의 근대가 교차하며 그 유산은 이후의 동아시아에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계승됐다. 그런 의미에서 만주국은 소멸했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가짜였으나 진짜였다. 그렇다면 僞황궁의 꼭두각시 황제 푸이는 어떤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그에게 너무 동정적이지 않았던가.

마지막 황제의 공간, 그 역사적 비극


    「마지막 황제」를 다시 보면서 나는 조선, 아니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순종이 고종의 뒤를 이어 대한제국 황제에 즉위한 것은 1907년, 그러니까 을사늑약(1905년) 이후의 일이다. 그에게 실권이 있을 리 없었다. 그의 제위 기간 중 韓日新協約이 체결돼 일본인관리 임용이 허용됐고 군대해산조칙이 발표됐으며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이 허가났다. 그 과정에서 순종은 꼭두각시 황제에 불과했다. 1910년 치욕적인 한일병합조약이 그가 머물던 창덕궁 인정전에서 맺어졌다. 그리고 1926년 6월 이 마지막 황제는 창덕궁에서 숨을 거뒀다.

    마지막 황제 순종의 공간은 창덕궁이다. 그는 제위 기간, 그리고 그 이후 내내 창덕궁에 머물고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일제 강점기에 통용됐던 그의 명칭은 ‘창덕궁 이왕’이었다. 그가 이곳에 머물던 기간에 태종 이후로 조선 왕들이 가장 사랑했던 공간이라는 창덕궁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이 기간 중 창덕궁의 주요 공간들은 총독부 관리와 친일 인사의 연회장으로 변했고 자동찻길을 내기 위해 여러 전각들이 헐렸다. 궁궐 건물에 근대식 조명시설과 유리창, 서양식 가구들이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마지막 황제」를 보면서 내가 떠올렸던 것은 그러니까 순종의 공간이었던 창덕궁의 이미지였을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한참 무더웠던, 사연 많았던 지난 8월 29일은 한일병합조약 99년이 되는 날이었다.

홍지석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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