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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두 ‘좌파’교수의 백의종군기
[기자수첩] 두 ‘좌파’교수의 백의종군기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9.09.07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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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 후 지식인 담론에 날선 쟁론적  목소리를 담아 낸 진중권 교수는 미학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다. 서양 미술사처럼 난해한 과목을 재미있고 알기 쉽게 가르쳤다. 중앙대에서 강의한 ‘문화비평’ 강좌는 7년간 꾸준히 인기를 누렸다. 그의 대표저서 『미학 오딧세이』는 2004년, 100명의 전문가들이 꼽은 『90년대를 빛낸 100권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판매부수 50만권을 돌파한 이 미학 입문서는 10년 넘게 애독되고 있다.

그런 진 교수가 올해에만 네 곳에서 짐을 쌌다. 문광부 표적감사의 덫에 걸린 한예종은 결국 진 교수에게 급여 1천700만원을 반환하라고 통보했다. 홍익대에서 이번 학기에 맡기로 한 신설과목 ‘디자인 미학’은 개강 3일 전, 다른 강사로 대체됐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 등의 여파로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과 중앙대 독어독문학과에서도 겸임 교수직을 잃었다.

중앙대는 겸임교수 재임용 탈락을 두고, “진 교수가 굳이 강의를 원한다면 시간강사를 하면 된다”는 선택지를 제시했다. 그러나 진 교수는 “한 달 택시비도 안 되는 시간강사를 왜 하냐”며 특유의 입담으로 받아쳤다.

황지우 전 한예종 총장의 ‘명작 읽기’ 수업은 학생들에게 ‘소문난 명강의’로 꼽힐 만큼 인기가 좋았다. 지난 봄 정치적 외압을 이유로 스스로 총장직을 물러났던 황 전 총장이 새 학기에 강사로 등록했다. 한예종은 교수지위 확인 소송과 이론科 축소·협동과정 조정 등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황 전 총장의 백의종군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황 전 총장이 자진 사퇴를 결행했을 때, 신임교수 임용 절차를 운운하며 교수직 유지의 길을 제시했던 당사자들은 문광부였다. 문광부의 ‘립 서비스’가 100일도 채우지 못한 셈이다. 석 달 만에 전직 총장이 시간강사 임용에서 탈락한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보다 못한 학생들이 나섰다. 지난 3일 중앙대, 한예종, 홍익대 학생들은 진중권, 황지우 교수 복직을 골자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표현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 그리고 학습권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줄곧 대학의 자율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학생들이 체감하는 대학 모습은 ‘정부의 충실한 대변자’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더구나 전문성과 강의력에서 정평이 난 학자들을 대학 바깥으로 내모는 일은 지식 사회로서도 큰 손실이다. ‘강의 경쟁력’있는 교수들에게 ‘괘씸죄’를 걸어 대학 밖으로 내모는 것이 설마 ‘대학 자율성’일까. 지식 사회의 풍경이 우울해졌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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