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幻覺 또는 허무에 맞선 ‘포플라’의 운명
幻覺 또는 허무에 맞선 ‘포플라’의 운명
  •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09.07.14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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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밖 미술비평_ <8>김윤식

글 싣는 차례
<1> 김현 <2> 김화영 <3> 서경식  <4> 김우창 <5> 이가림 <6> 박완서
<7> 박정자와 박홍규
<8> 김윤식(끝)

문학비평가 김윤식과 미술의 인연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하는 책은 그가 1979년에 내놓은 『문학과 미술사이』이다. 이 책은 그의 많은 글쓰기 가운데 한줄기를 이루는 이른바 예술기행 양식의 출발점이다. 이후 그는 『황홀경의 사상』(1984), 『작은 생각의 집짓기』(1985), 『낯선 신을 찾아서』(1988), 『환각을 찾아서』(1992), 『설렘과 황홀의 순간』(1994), 『풍경의 계시』(1995), 『머나먼 울림, 선연한 헛것』(2001) 등으로 이어지는 ‘예술기행’ 모음집을 꾸준히 발표했다. 여기 실린 글들은 대부분 그가 직접 발품을 팔아 작품이 존재하는 현장, 또는 그 작품이 탄생된 공간을 찾아가 거기서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바를 에세이로 정리한 것들이다. 물론 여기에는 문학, 미술, 건축 같은 작품들이 두루 포함된다. 

    그런데 그는 왜 기행을 떠나야 했는가. 1996년 발표된 『김윤식 선집』 6권 해제에 따르면 김윤식의 예술기행은 ‘낯선 풍경과 환각을 향한 그리움’에서 발원한다. 환각(유토피아)을 향한 영원한 동경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이 세계의 무수한 곳을 편력하도록 이끌고 그 흔적을 남기게 만든 결정적인 추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윤식은 환각, 또는 유토피아를 찾아 떠난 나그네다. 그에 따르면 이 환각, 유토피아는 “지상에 존재한 공상 중 가장 황당무계한 것”이지만 그것은 “모든 민족은 이것 없으면 산다는 일을 원치 않을뿐더러 죽는 이조차 불가할 정도”의 열도를 가진 황홀경의 환각이다(동양정신과의 감각적 만남). 인간은 이 ‘황홀경의 환각’ 없이는 살 수 없다. 그것은 김윤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가 환각에 집착하고, 유토피아에 집착하는 것은 남다른 데가 있다. 그는 환각을 그리워해 찾아 나서지만 자신의 환각을 만들고 그 안에 칩거하지
않는다. 그는 환각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환각에 맞선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두려움 또는 유토피아에 집착하기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떠날 때는 언제나 설레였고 돌아올 땐 한결같이 피로하였다. 이 가슴 설렘이란 내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누구나 갖고 있는 그리움이랄까, 에로스적인 것이라 할 수 없을까? …누가 이 장대한 황당무계한 환각 앞에 감히 알몸으로 맞설 수 있으랴. 내 피로함은 이 환각의 너무나 큰 압력에서 왔다. 나는 그 환각 속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어야 했다.” (설렘과 황홀의 순간)

    그렇다면 그는 피로를 무릅쓰고 기행에 나서 어떤 환각들과 만났을까. 가령 그는 중국 서안에서 만난 대안탑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탑이란 무엇인가. 인간 염원의 하나이리라. 그것은 빈공간을 향한 발돋음의 표상이다. 이를 기도하는 자세라 부른다. 그것은 하늘 위로 솟아야 한다. 빈 하늘만 있으면 인간은 참지 못한다. 백지의 공포인 까닭이다. 이 빈 하늘의 아득함에서 그 두려움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의 끝이 마침내 탑을 지어내었던 것. 빈 하늘을 조금이라도 가리고 채우기의 한 가지 방식, 그것이 탑이다.” (풍경의 계시)

    그러니까 탑을 만들어내고, 그 탑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하늘이다. 그런데 이 하늘은 빈 하늘, 곧 허공이다. ‘비어있음’의 공포가 그것을 초극하려는 어떤 집단적 의지를 작동시키고 환각을 만든다. 그 초극 의지가 절박할수록 탑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이렇듯 허공의 공포를 초극하기 위해 환각을 만드는 일은 자기 정체성 찾기와 짝을 이룬다. 김윤식에 따르면 자기 정체성 찾기는 자기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가령 일본 예술의 특질로 ‘사비’라든가 ‘유현’을 소리 높여 외치고 그럼으로써 일본예술을 서양의 그것과 구별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서양의 그것과 끊임없이 ‘닮고자 하는 지향성’을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다(머나먼 울림, 선연한 헛것).

   ‘비어있음’에 대한 공포는 환각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실 그 환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 그대로 ‘幻覺’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본적인 것’도 ‘조선적인 것’도 ‘서양적인 것’도 모두가 환각이다. 그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朝鮮美論를 이렇게 평한다. “조선의 미란 실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일본)이 멋대로 창출해 낸 헛것에 지나지 않는 것. 실제와는 상관없이 일본(서양)인 야나기가 멋대로 자기 취향에 맞게 조선의 미를 線으로 창출해 낸 것일 따름.”(머나먼…) ‘허공’에의 공포는 결코 초극될 수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러나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외면할 것이다.

에세이 정신과 ‘여로형’ 글쓰기
“성현의 학문을 머리에 이고 하늘의 별을 바라본 집단”으로서 젊은 집현전 학사들이 그렸던 유토피아, 곧  「몽유도원도」는 텅 비어있지만 아름답다. 그러나 분열을 경험한 자는 다시는 그런 종류의 아름다운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이렇게 분열을 경험한 자가 ‘허무와의 대결’을 통해 순도 높은 고통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김윤식이 생각하는 예술이다(동양정신과의…).

    허무와 대결한다는 것은 ‘환각’을, 달리 말해 유토피아가 환각임을 알지만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그것은 김윤식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표지화로 건 『문학과 미술 사이』의 머리글에서 그는 일찍이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철들면서 먼 도회지로 끊임없이 떠나고 싶었다. 그것은 생각컨대 근대적인 것에의 지향성이었으리라. 그 근대적인 것이 노예나 시녀의 길이었음을 깨닫고 황망히 돌아서려 하자 나의 들길은 근대적인 것이 통째로 삼켜 버리고 아무데도 없었다. 허무가 앞뒤를 가로막아 나아갈 길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허무의 안개 저편에 솟아오르는 선명한 이미지가 있었다. 포플라의 모습이 바로 그것… 포플라는 줄지어 섰든 혼자 서있든 모습은 외로움이었다. 그러기에 포플라의 이미지는 내겐 릴케의 용담화이고 고호의 삼나무이다. … 포플라는 고독의 표상이기보다 고독 자체였다. 예술이나 문학이란 내게는 이와 같은 표상의 추구일 따름이리라.”

    『문학과 미술 사이』에서 김윤식은 이 그림을 이렇게 묘사한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곳, 그러기에 태양도 달도 11개의 별도 함께 출석한 곳. 하늘엔 이것뿐이다. 이 무게 중심에 ‘나’가 놓여 있다. 그것은 실상 나가 아니라 꿈틀거리는 은하수이다. 별도 달도 태양도 이 성운에 휘말려 있다. 아니다. 성운이 별을, 달을 태양을 낳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세계의 자궁 속, 胎 내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을 뿐이다.”이렇게 포플라의 이미지를 곁에 두고 그는 집을 떠난다. 이렇게 집을 떠난 상태란 ‘여로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데 그 여로는 “뚜렷한 목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방랑도 아닌 여로”다. 그의 예술기행의 근간을 이루는 에세이 정신은 그러한 접점에 깃드는 정신이다. 그 접점에 정신이 깃들 때 “세상과 사물은 본래의 자리에 놓인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이렇게 그는, 발레리의 표현을 빌면, 이질적인 것을 동시에 수용하는 모더니스트다. 따라서 그에게 문학에 대한 논의가 미술에 대한 논의와 겹치고 공존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이다. 아니 필연적이다. 이 모습은 어쩐지 모더니스트 이상의 그것과 닮아 있다.

    김윤식은 화가로서의 이상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기괴하기 짝이 없는 병들이 카페를 둘러싸고 자라고 있었는데 이러한 병들을 가장 통렬하게 앓아본 사람은 오직 이상뿐이었다. 그 많은 정신질환을 이상은 사랑하고 한 몸에 그들을 감쌌다. 그러기에 그는 아달린과 아스피린을 수없이 장만하고 그 알약들을 보석처럼 『날개』의 삽화에 그려넣었던 것이다. 그가 그의 죽음조차 초월할 수 있는 방식은 오직 이러한 길뿐이었던 것이다.” (김윤식 선집 5)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라고 (젊은 시절 김윤식을 매료시켰던) 루카치는 말했다. 그러나 이 복된 시대가 아니라(내적)분열의 시대에 김윤식은 산다. 그는 복된 시대를 꿈꾸나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하여 그가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자유는 “뚜렷한 목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방랑도 아닌 여로”에 나서는 일이다. 이 여로에 나서는 일은 그 자신에게나 그것을 지켜보는 자에게 똑같이 고통스러운 일, 권태롭고 피로한 일이다. 그러나 고통, 그 권태, 그 피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치열하게 구축한 개개의 유토피아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설령 그것이 곧
무너질 운명에 놓여있다 해도 말이다.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75@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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