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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대학 평가’ 괴담
[딸깍발이] ‘대학 평가’ 괴담
  • 최재목 편집기획위원 / 영남대·철학
  • 승인 2009.07.0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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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국립대학 퇴출이란 말은 들리지 않지만, 부실 사립대학 퇴출 작업이 시작됐다는 소식이다. 3~4년 내 학생수 감소로 인한 대학경영 위기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에 정부도 독자 생존이 가능한 대학은 경영 개선을 유도하고 부실대학은 합병이나 폐교 등 구조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고객(학생)이 없어 장사(돈벌이)가 잘 안 되는 대학은 자기 발로 물러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 쫓아낸다는 말이다. 퇴출은 갈 곳을 정해두고 쫓는 것이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가 집 개(喪家狗)’ 신세가 될 황망한 풍경이 그려진다.

 
    사회 다방면에선 구조조정ㆍ퇴출ㆍ해고와 같은 ‘도마뱀 꼬리 자르기’ 전술을 위한 ‘평가’를 한다. 이것은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 전제된 제로섬 게임이다. 나름의 ‘기준’으로 평가해 ‘줄’을 세운 뒤 불필요한 꼬리는 자른다. 누구나 절대 평가 받길 원하지만 줄 세우기는 상대에 따라 나의 위치가 달라지는 평가다.

    우리는 남과 비교되는 걸 원하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외쳐대지만 현실은 의존적이다. 이런 의존의 현실을 거부하지 않고 인정한다면 마음의 ‘고통’도 사라질 것 아닌가. 하지만 의존으로 인한 ‘불편’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버텨대는 날선 생각을 ‘내려놓는’ 覺悟는 수행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레토릭이다.

    최근 우리 대학들도 퇴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특히 지방 사립대학들은 더 하다. 국내시장에서 세계시장으로 고객(학생)을 찾기 위해 눈을 돌린다. 가만히 있어도 장사가 되는 시절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대학이나 총장의 미덕은 ‘경영능력’으로 인식되며, 장사를 잘 해 흑자를 남길 CEO에게 표를 던진다. 원래 장사란 ‘이득’을 위해 물건을 사거나 파는 것이다. 대학 또한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고 또 그들을 제대로 취업시키지 못하면 평판도가 낮아져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이득’을 제대로 챙길 줄 아는 대학은 학생들을 고객으로 모셔 口味에 맞는 음식을 대접하는 의전에 능하다. 신상품 개발, 마케팅 전략에도 민감하다. 그래서 대학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국 대학 중 ‘톱 10’ 혹은 ‘20위권’ 등등의 폼 나는 요란한 문구를 얻어 플랜카드로 걸고 싶어 한다. 신입생 유치를 위한 홍보 효과의 극대화는 각종 미디어 활용에 있다. 투자한 만큼 실효를 거둔다.   

    이처럼 ‘누가 누가 잘 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대한민국 대학들의 절박한 심리를 약점으로 이용해 최근 국내 언론사들도 대학 평가 ‘사업’에 뛰어들어 장사를 시작했단다. 대학은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광고 협조를 통해 언론사의 눈에 벗어나지 않도록 충심을 표현한단다. 그래서 최근 <교수신문>에서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대해 ‘대학 간에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 광고수익을 챙긴다’고 보도한 내용은  대학의 어두운 현실을 잘 摘示해준다. 언론사가 가뜩이나 어려운 대학들을 줄 세우고, 평가에 주눅 든 대학의 심리를 약점 삼아 돈벌이에 활용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대학도 이제 심사숙고 해볼 점들이 있다.

    먼저, 언론사의 평가가 공정한지를 견제하거나 감시할 ‘공정한 제3자’로서 ‘평가를 평가하는 기관’을 고려해야한다. 케이크를 자르는 자가 케이크를 취해선 안 된다. 평가를 미끼로 대학을 뜯어먹는 일을 견제·감시할 공정한 제3자를 찾자.

    다음으로, 각 영역별 평가를 합산해 순위를 정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개별 영역 평가를 보다 적극적으로 부각시킬 섬세한 지표와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이미 기반이 갖춰졌고 돈 많은 대학들은 다방면에서 평균 이상을 보이기에, 합산을 할 경우 이래 저래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각 영역별 평가를 중시하면, 중하위권 대학도 장기적 목표 없이 단기적 노력·변신으로 평가에 골몰 않고 독자적인 장기 비전을 세워
특성화해 갈 수 있다. 

    언론사들이 대학평가를 돈벌이에 활용한다면, 결국 가진 자들의 명패를 닦아주거나 유명 브랜드에 기생·협력하며 약소 대학들의 야윈 살점을 뜯어먹는 꼴이 될 것이다. 평가 결과가 피드백 돼 우리나라 대학의 취약점이 보완돼 국제적 경쟁력을 지니도록 협력하는 이른바 ‘지성의 비판적 지지자’가 돼야 마땅하다.

최재목 편집기획위원 / 영남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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