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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무한 도전’… 원고지 6만 매로 재탄생한 朝鮮八道 지리정보
8년의‘무한 도전’… 원고지 6만 매로 재탄생한 朝鮮八道 지리정보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9.06.29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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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화제]『여지도서』 완역 과정과 출간 의미

巨帙의 『輿地圖書』가 고전국역 전문 국학기관이 아닌 지방의 한 대학 전주대에서 완역될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복합요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2002년도부터 시작된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의 기초학문 지원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변주승 전주대 교수팀의 끈기 있는 열의다.

『여지도서』 번역 연구팀이 전북 완주에 있는 한국고전문화연구원에서 세미나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변주승 전주대 교수


2002년 5월에 학진에서 공모한 ‘기초학문육성 인문사회분야’의 ‘국학고전’부문에 변 교수팀은 ‘여지도서 번역 및 색인’ 과제(연구책임자: 변주승 전주대 언어문화학부 역사문화콘텐츠전공 교수)로 응모해, 다단계 심사를 거쳐 지원 과제로 최종 선정됐다. 연구 기간은 2002년 8월 1일부터 2004년 7월 31일까지 2년이며, 총 연구비는 약 4억 4천만 원이었다. 번역 연구팀은 2003년 9월 1차년도 연구 성과를 심사한 학진으로부터 최우수연구과제로 선정돼, 인센티브를 지원받기도 했다.

2004년 7월에 사업 기간이 종료된 뒤, 연구팀은 결과보고서를 제출해 출판 적격 판정을 받았고, 이후 연구팀은 번역 원고의 교정·교열 작업을 계속해 왔다. 2007년 12월에 학진에서 『여지도서』 출판비용으로 3억 3천만원을 보조해 출판 통로를 열 수 있었다. 이어 2008년 6월 전주대는 공개 입찰을 통해 전주에 있는 디자인흐름 출판사(사장 한명수)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물론 디자인흐름 출판사에서 3억여 원을 대응 투자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50권 1000세트, 5만권이라는 물량이 세상의 빛을 쬘 수 있었다.

『여지도서』 번역 연구팀에는 연구책임자 변주승 교수를 중심으로 김우철(한중대), 이철성(건양대), 서종태(전남대), 문용식(순천향대) 등 4명의 공동연구원과, 김진소(천주교호남교회사연구소장), 이상식(한국고전문화연구원) 등 전임연구원 2명,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 학과와 대학원의 연구보조원 그리고 자문위원 및 평가위원 등 약 20명의 인원이 참여했다.

漢學 전공자가 아닌 까닭에 이들 번역 연구팀은 개별 번역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번역 수준의 질적 제고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매달 어김없이 3박 4일씩 번역 세미나를 개최했다. 그야말로 마라톤에 비견되는 여정이었다. 장소는 전북 완주의 깊은 산 속에 위치한 한국고전문화연구원이었다.

50권 1천세트 찍은 ‘古典 전주’의 힘
사계의 권위자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호남의 대표적인 한학자인 故 汕巖 변시연 선생과 대전의 아당 이성우 선생, 이향배 충남대 교수(한문학)등으로부터 한시와 기문, 상량문 등 어려운 한문을 자문 받았다. 또한 평생을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에 헌신했던 호남천주교회사연구소 소장 김진소 신부는 이들 연구팀에게 10년 세월 동안 전북 완주군 비월면 천호동에 공간을 마련해 숙식을 제공하는 한편, 연구팀의 번역 작업을 독려하기도 했다.
번역 본문만 200자 원고지 6만 매에 달하고, 책자로 50권에 이르는 국역 『여지도서』, 과연 완역의 의미는 무엇일까.   

연구책임을 맡은 변주승 교수의 기대는 남다르다. 그는 “조선시대 연구자나 향토사 연구자들이 지리지로 참조하는 사료는 『新增東國輿地勝覽』(1968, 민추 번역본)인데, 이는 조선 전기 중종 때 편찬됐다. 반면  『여지도서』는 조선후기에 편찬돼 200년 전의 近世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사료”라고 지적하면서 “완역본 출간은 조선후기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지역사·향토사 연구 기반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의미를 매겼다. 그는 또 “각종 記文과 漢詩의 번역은 국문학 연구에, 특산물·진상품 등의 목록 정리는 관련 지역 특산물의 개발에, 충신·효자·열녀에 관한 번역은 청소년의 교육에 이바지할 것이다. 역사학은 물론이고 국문학 등 인접 학문, 향토사 연구와 문화 관광사업, 청소년 교육 등에 미칠 효과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여지도서』 번역의 주요 성과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고지도의 채색 가공 작업과 지명의 한글 번역이다. 흑백으로 된 여지도서 영인본의 지도 353개를 컬러로 채색하고, 지도에 실린 한자를 한글로 옮겨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변 교수는 “번역 작업에 참여한 공동 연구자들이 모두 한글세대다. 한글세대의 특징을 살려 가능한 한 쉽게 풀어썼다”고 설명한다.


『여지도서』의 모든 항목들은 문화콘텐츠로서 정보화가 가능하다. 국역을 통해서 구축 가능한 정보콘텐츠는 인명정보, 지명정보, 특산물정보, 지리정보, 조선시대 공공기관DB, 조선시대 지방 성씨DB, 조선시대 성(城)DB, 누정정보, 한시DB 등 가히 종합정보시스템의 구축이 가능하다. 특히 북한 지역에 대한 조선시대 종합 지리지 정보는 향후 통일을 대비한 정보망 구축에도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인문지리콘덴츠의 가능성 확인
완역 작업을 선두에서 이끈 변 교수는 고전 번역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그만큼 끈기를 가지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번 성과가 8년만의 결실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학진 과제는 대개 단기 과제다. 박사급 연구자들이 관여하지만, 3년 지원 기간이 종료되면 뿔뿔이 사라진다. 연구는 지속성이 관건인데, 동력이 중단되는 셈이다. 인력도 함께 증발되고 만다”면서 안타까워한다. 변 교수는 “단기적 실용성도 좋지만, 고전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방대 인력의 수월성은 ‘끈기’에 있다. 긴 안목의 지원이 있다면, 지방에서도 풍부한 연구진이 연구다운 연구를 축적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완역본 출간은 이것을 의미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변 교수는 2004년 학진 지원으로 조선시대 審問 기록인 ‘『推案及鞫案』 번역 및 역주 과제’(2004-2007 연구과제)를 진행, 2011년 ‘전주대 고전국역총서2(전100권)’로 출간할 예정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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