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23:45 (화)
[출판 트렌드] 새것이 좋으나 더러는 옛것도 … ‘20세기 고전의 재출간’ 재론
[출판 트렌드] 새것이 좋으나 더러는 옛것도 … ‘20세기 고전의 재출간’ 재론
  • 최성일 출판평론가
  • 승인 2009.06.29 13: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호의 제국』롤랑 바르트 지음│김주환·한은경 옮김│산책자│2008년 9월
『아메리카』장 보드리야르 지음│주은우 옮김│산책자│2009년 3월
『정글』이업톤 싱글레어 지음│채광석 옮김│페이퍼로이드│ 2009년 3월
『다윈 이후』스티븐 J. 굴드 지음│홍동선·홍욱희 옮김│사이언스북스 │2009년 1월

나는 5년 전에 ‘20세기 고전적 저작의 재출간 풍경’을 스케치한 바 있다(<교수신문> 제318호, 2004년 6월 21일자 5면 참조). 이번은 그때와는 다른 각도로 20세기 고전의 재출간에 접근하고자 한다. 헌책보다 새 책이 낫다는 것이다. 물론 새것이 늘 좋지만은 않다. 볼테르의 작품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단지 풍자적인 간명한 소설’(슈테판 츠바이크)의 제법 두툼한 새로운 번역판은 예전의 얄팍한 번역판만 못하다. 이런 경우는 예외라 할 수 있다. 재번역 여부와는 별개로, 고전일수록 새로 나온 책을 읽는 게 알맞다. 신판은 구판에 견줘 나아진 점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새로 출간한 고전을 읽는 묘미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김주환·한은경 옮김, 2008) 번역문은 초역과 그리 다르지 않다.“1997년 민음사에서 같은 제목으로 출간됐다가 이번에 산책자에서 다시 다듬어 펴내게 됐다.”(‘옮긴이의 말’) ‘옮긴이 주’ 1에선 작지 않은 변화가 보인다. “이상은 1997년 출간된 민음사 판의 옮긴이 주다. 이 옮긴이 주를 보고 많은 독자들이 여러 가지를 제보해주었으나 확인 결과 유용한 제보는 없었다. 당시에는 인터넷 검색을 해도 가라바니에 대해서는 유용한 정보를 찾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면서 가라바니는 벨기에 태생의 작가 겸 화가 앙리 미쇼의 연작소설 제목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요 근래의 인터넷 검색 결과를 덧붙인다.    

본문편집에서도 호의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변형판형의 1997년판은 다소 번들거리는 본문용지와 판면을 꽉 채운 사진들이 부담스러웠다. 독자에게 약간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2008년판의 판형과 본문용지는 적절하다. 사진 또한 무난하게 앉혔다. 이제 보니 덴푸라는 튀김을 뜻한다(37쪽). 어묵이 아니다. 브레히트의 극작법 ‘낯설게 하기’는 이화효과라는 낯선 표현보다 상대적으로 친숙한 소격효과로 옮기는 게 어땠을까(72쪽).

    편집이 다소 촌스럽고 영역본의 重譯이긴 해도 그런대로 읽을 만했던 장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주은우 옮김, 문예마당, 1994)는 번역에 문제가 없지 않았다. “스냅 사진들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열기와 음악까지 포함하여 현실의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여행에 관한 한편의 영화 전체가 필요할 것이다.”(36쪽) 이 대목의 2009년판 번역은 이렇다. “스냅사진들로는 충분치 않다. 주행경로의, 실시간의 완전 영화(le film total)가 필요할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열기와 음악까지도 포함한 것으로 말이다.”(산책자, 10쪽) 하여 번역자는 그가 옮겼던 우리말 번역문과 프랑스어판을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그 결과 기존 『아메리카』의 단순한 재출간이 아니라 새로운 번역에 가까운 ‘완전 개역판’을 내놓게” 된다.

    2009년판 『아메리카』는 유진 리처즈의 사진을 작가의 허락을 얻어 싣고 있다. 평원을 가로지른 왕복 2차선 도로 사진은 1994년판에 실려 있는 것과 같은 사진으로도 보인다.

빛 바랜 책등의 제목, 여전히 듬직한 위용


    업튼 싱클레어의 장편소설 『정글』(채광석 옮김, 페이퍼로드, 2009)은 나의 해묵은 착시를 교정했다.나는 2009년판을 읽기 전까지 내가 지닌 1982년판의 제목이 ‘전진하는 삶의 길목에서’인 줄 알았다. 실제로는 『전전하는 삶의 길목에서』(동녘)다. 이 표제는 25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1982년판은 앞표지와 책등에 원제목을 부제목처럼 달아놨는데 ‘쟝글’이라는 표기법은 흘러간 짧지 않은 세월을 대변한달지. 또한 1982년판은 내용의 일부를 생략했다. 채광석 시인은 ‘옮긴이의 말’을 빌려 소설의 마지막 세 장을 생략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본 역서의 1~28장까지 드러난 유르기스의 고난과 처참함이 유르기스 본인의 어떠한 결의와 행동에 의해 극복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나 싶기도 했다.” 시대 상황의 변화와 도식적인 결론을 생략의 이유로 들지만 내가 보기에는 검열의 화살을 피하려는 목적이 더 크게 작용한 듯싶다.

    2009년판은 나머지 세 장을 모두 되살렸다. 나는 2009년판 『정글』을 읽으며 소설이 그려낸 적나라한 진실성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현재적이다. 그런데 『정글』에는 현재적인 게 또 하나 있다. 1906년 출간된 소설의 저작권이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업튼 싱클레어는 1968년 세상을 떴다.

    내가 다윈 다음으로 널리 알려진 고생물학자라는 스티븐 제이 굴드를 일찍 알게 된 것은 그의 『다윈 이후』(홍동선·홍욱희 옮김, 범양사출판부, 1988)를 통해서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몰라도 책이 나온 그해 2월 11일 부평역 인근의 오성서림에서 책을 사서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굴드가 개진한 ‘생물학 사상의 현대적 해석’과, 이에 걸맞은 유려한 번역이 한데 어우러져 무지한 독자는 지적 충일감을 만끽한다. 아쉽게도 『다윈 이후』는 한동안 절판 상태였다. 새로 나온 사이언스북스판 『다윈 이후』(2009)는 금박을 입힌 제목과 양장본의 호사를 누린다.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이제는 빛에 바래 책등의 제목이 흐릿해졌어도 범양사출판부판의 듬직함은 2009년판의 ‘위용’에 전혀 안 꿀린다.

최성일 출판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