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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화 전제는 재정자립…교수경쟁만 강조하면 융합 어려워”
“법인화 전제는 재정자립…교수경쟁만 강조하면 융합 어려워”
  • 권형진 기자
  • 승인 2009.06.22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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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호문혁 서울대 신임 교수협의회장

올해 연구년을 맞은 호문혁 서울대 교수(61세, 법학부·사진)는 지난 4월부터 부인과 제주도에서 생활하고 있다. 법대 학장으로 있던 지난해 5월,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본인가를 준비하던 제주대로부터 교류협정 제안을 받은 호 교수는 이를 수락한 것은 물론 직접 총대까지 맸다. 연구년을 맞아 외국에 나가는 대신 1년간 제주대에 머물기로 결심했다. 로스쿨이 1학년 1학기인 점을 감안해 ‘민사법에서 자유의 의미’ 등과 같은 특강과 세미나를 주로 맡았다. 2학기부터는 전공인 ‘민사소송법’ 분야를 강의한다.

서울대 법대 학장과 로스쿨협의회 초대 이사장을 맡아 로스쿨 도입에 기틀을 닦았던 호 교수가 이번에는 서울대 교수협의회(이하 교협) ‘구원투수’로 나섰다.

호 교수는 지난 15일 서울대 교협 정기총회에서 2년 임기의 새 회장에 선임됐다. 후보추천위로부터 단독 추천을 받았다. 호 교수는 “1년 전까지 법대 학장을 했고 연구년이라 1년을 제주대에서 지내려고 했는데 굉장히 고민했다. 서울대가 법인화를 준비하는 시기라 평교수들이 교협의 역할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 부담이 많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서울대 법인화는 ‘발등의 불’이다. 서울대는 이장무 총장의 임기인 2010년 7월까지 법인화를 이룬다는 계획에 따라 지난해 9월 법인화위원회를 공식 발족하고 법인화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의 독자적인 법인화 추진은 다른 국·공립대 총장과 교수들로부터 ‘서울대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법인화 자체에 대한 찬성과 반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어떤 내용으로 법인화를 하느냐를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호 교수는 “서울대만한 여건을 가진 지방 국립대가 없다”며 “법인화의 전제로 재정자립도가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대에 적극적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막연히 정부가 국립대에서 손 터는 식의 법인화는 국립대에 대한 말살에 지나지 않는다.”

교수 승진·정년보장 심사가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는 현실도 호 교수가 교협 회장으로서 풀어야 할 숙제 가운데 하나다. 호 교수도 “방향은 옳다”고 본다. 그러나 “과도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과도하게 제한하면 학문 자유가 침해되는 부분도 검토돼야 한다”는 것이다. 호 교수는 “연구업적 평가도 그렇고 평가기준이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질적 평가보다 양적 평가에 치우쳐 있다. 합리적으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호 교수는 “경쟁 원리를 도입하는 것은 좋지만 대학 경쟁력 강화를 곧 같은 대학 내 교수 사이의 경쟁으로 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며 “새로운 학문적 경향은 융합, 통섭인데 경쟁만 강조하면 융합이 어렵다. 대학 내에서는 협업, 융합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대가 ‘폴리페서 제한 규정’ 초안을 만들었다 보류한 소동에 대해 호 교수는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곳으로 진출해 별도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거나 학생들의 수업, 논문 지도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학문 분야와 연계하더라도 사전에 절차를 정해 학생들이 예측 가능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호 교수는 ‘민사소송법의 대가’로 통한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6년부터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학평의원회 부의장, 총장후보선정위원장, 법대 학장 등을 지냈다. 정년까지 4년 남은 호 교수는 “수순 높은 ‘민사소송법’ 주석서를 편찬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민법은 수준 높은 주석서가 나와 있는데 민사소송법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전체 5~6권을 예상하고 있는데 교협 회장을 맡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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