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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당신들의 이중적 태도
[문화비평] 당신들의 이중적 태도
  • 조영일 문학평론가
  • 승인 2009.06.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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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학계에서 화제가 된 사건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이른바 ‘황석영 변절’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가들(‘젊은 작가들 모임’과 ‘한국작가회의’)의 시국선언이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나도 지인으로부터 선언참가를 여러 번 권유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끝내 참가를 고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떤 막연한 위화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가선언문’과 여기에 참가한 189명의 작가들이 쓴 ‘한 줄 선언문’을 보고 그와 같은 위화감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한 시인이 용산참사를 용산‘학살’로 표현한 시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시인 중에는 과장을 시의 본질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기에, 또 표현의 정도야 어쨌든지 간에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창작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뭐 그럴 수도 있지 생각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표현을 ‘작가선언문’에서 발견했을 때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을 느꼈다. 현재의 한국이 아우슈비츠나 마찬가지라는. 물론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가진 비장함에 공감이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나로서는 그것이 상상력의 빈곤에서 나온 어설픈 비유로밖에는 생각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동업자들의 집단적인 사회행동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탐탁지 않은 작업이다. 그들 전부를 적으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문제삼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억압하고 있는 진짜 문제들을 동업자로서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내가 생각하기에 작가선언문에 이름 석 자를 올리고 대충 ‘한 줄 선언문’을 작성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이제 와서 이렇게 도마에 올리는 것은 그들의 선언행위를 냉소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도리어 그것이 가진 의미를 증폭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는 젊은 작가들이 ‘6·9 작가선언’으로 일단 할 일은 다 했다고 보는 사고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작가들의 시국선언이 있기 얼마 전, <한겨레 21>(5월 29일자)은 ‘황석영 변절 맞습니까’라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황석영 논란과 관련해그동안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한 작가 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이중 12명은 응답을 회피하고 설문조사에 응한 18명 중 7명은 노코멘트로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11명 중에서도 “변절이 아니다”가 7명, “지켜봐야 한다”가 2명, “변절이다”는 겨우 2명에 불과했다. 여기서 나는 이 설문조사결과가 가진 의미를 집요하게 추궁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런 질문만큼은 던지고 싶다. “현재 한국작가들이 취하는 이중적 태도(국민을 학살하고 이 땅을 아우슈비츠로 만든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급진적 태도’와 그런 정부를 옹호한 선배작가에 대한 ‘관대한 태도’)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만약 오늘날 한국의 작가들이 함께 해결해가야 할 중요한 과제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순 자체가아닐까.

    한국문학의 이율배반은 이렇다. 정명제: 문학은 국가에 의해 보호돼야 한다. 반대명제: 문학은 국가와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나의 해결방식은 이렇다. “문학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문학 자신뿐이다.” 승자독식문단에서 몇몇 소수 작가의 성공은 엄밀히 말해 그들의 문학적 능력이나 재능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즉 그들은 한국문학시스템 덕에 그들이 들인 노력 이상으로 문학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당연 그들은 자신들이 거둔 수입의 일부를 한국문학에 환원할 의무가 있다. 더구나 그들이 한국문학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중견/원로 문학인으로 자처한다면 더욱 그렇다.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10만부 이상 판매될 경우 작가 인세의 1%를, 30만부 이상은 2%, 50만부 이상은 3%를 적립해(출판사도 작가와 비슷한 비율로 적립에 참여한다) 자체적으로 ‘문학기금’을 만들면 어떨까. 만약 이와 같은 제도에 대한 합의만 문학계에서 이루어진다면, 反 이명박을 외치면서 親 이명박을 외친 선배작가를 옹호하고 뒤로는 여전히 문학지원금 수혜를 갈구하는(그리고 실제로 받는) 자기모순만큼은 적어도 피할 수 있겠고, 그런 후에 이뤄지는 작가선언은 지금보다 훨씬 강한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조영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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